벌써 보일러를 돌려야할만큼 싸늘한 날들이다.
뉴스를 안본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빗겨가기 힘든 많은 소식들에 우울한 날들이기도하다.
사야는 그냥 맑고 투명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햇살에 빛나는 들풀에 감탄사나 연발하며 버텨내는 시간들
특별히 계획했던 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살 생각도 아니었는데
마흔 세살, 이젠 건강에도 미래에도 자신이 없어지는데 나 그냥 이렇게 늙어가도 되는 걸까
이리 아름다운 강변을 날마다 산책할 수 있는 건 대단한 복이라고 내 인생이 아름다운 건 작은 것에 감동하는 마음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이렇게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가네..
정말 지랄맞은 2009년이다.
작년 가을 장성에 다녀가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던 홍콩에서 알고 지냈다던 언니가 지난 오일 결국 떠났단 이야길 어제야 들었다.
간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작년에 봤을땐 좋아보였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다니
아니 소식을 듣자마자 울음이 터져나왔던건 어쩌면 나는 언니의 죽음을 염두에 두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리도 다녀가라던 제주도에 가지 않은 건지..
내게 남겨진 시간은 늘 이렇게 제한적인데 바보같이..
후회로 터질것같은 속에 시뻘건 포도주를 털어놓고 목놓아운다.
이 지랄맞는 해에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내 휴대폰에 번호가 저장된 유일한 이의 죽음. 술에 취해 문자메시지를 찍고 지우기를 몇 번.
투병중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만큼 늘 에너지로 넘치던 언니는 어찌 눈을 감았을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란 것과 더이상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몇 억 광년의 거리만큼이나 막막하다.
그렇게 술에 취해 마침 내리던 가을비에 주인이 흐느적거리는 동안 남친말대로 효녀인 울 바리 꼬박 열다섯시간의 진통끝에 네 마리의 새끼를 순산했다.
출산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팔개월된 강아지가 진통을 겪고 있는 걸 보니 안절부절 뭘해줘야는 지를 모르겠더라지.
우리집에 올때부터 새끼를 밴 상태였다는 거니 그 상태로 개장수에게 팔려갔더라면, 하는 생각에 또 울컥
어린 놈이 안쓰러워 속이 탈 즈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놀래깨어보니 새벽 세시가 가까와오는데 새끼들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산통이 길어 걱정했는데 무사한듯해 미리 만들어놓은 영양식만 넣어주고 아침에 다시 들여다보니 이렇게 새끼들 젖을 먹이고 있고 총 네마리더라.
애비는 하얀색이고 어미는 저런데 어디서 까만놈이 하나 나왔는 지 넘 신기하고 남친은 또 까만개가 로망이었다며 혼자 좋아죽는다.
전혀 예상밖의 일이었던지라 당황스러웠고 지금도 젖먹이느라 애쓰는 바리를 보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또 새 생명들이 우리에게 왔다.
바리바리 복을 가져올거라고 했더니 정말 바리바리 귀여운 새끼들을 품고 왔었네.
보너스.
여전히 개구리는 저 곳에 살고있다.
저 끝에 놓인 저 화분인데 도대체 어떻게 올라가는 건지 아님 왜 자꾸 오는 건지 도대체 뭘 먹고 사는 건지 궁금하기 이를데없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가끔씩 들여다보며 안부나 묻고 있다.
어쨌든 이젠 가을이다.
2009.9.28. 여주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