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내려와 바쁜 와중에 추석이 다가오며 조금 긴장했었다.
나는 정식 며느리는 아니다. 그러나 내 식으로 아주 얄밑게 이야기하면 한국식 며느리의 의무 혹은 고통을 비껴갈 수 있는 그런 위치라는 거다.
그런 내 명확함때문에 남친이랑 가끔 싸우지만 나는 그의 섭섭함과달리 그의 어머니를 시어머니라 생각한다. 시어머니가 별건가.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 나랑 같이 사는 남자의 엄마면 시어머니인거지. 그것도 내겐 너무나 생소한 한국인 시어머니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있겠냐만 그의 어머니는 참 특이한 분이다.
내가 예전에도 연애를 하고 어쩐다하는 글에 썼지만 아들이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 당신옆에 재운 그때고 그리고 그 여자가 모든 짐을 싸들고 이 곳에 내려온 이 후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
짐을 싸들고 내려와 처음 함께 식사한 적이 있던 때
그가 갑자기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를 만났단 이야길 했다
어머니, 뭐라시던?
그, 잘 살라고
어머니, 또 뭐라시던?
그, 서로 아껴주라고.
복잡하기가 이를데 없는 나, 어머님이 뭔가 다른 말을 하셔서 내가 보충설명을 하길 기대했건만 그걸로 그 대화는 끝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
그저 내 느낌이긴해도 그냥 우리 둘이 잘 사는것에 만족하시고 잘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
그리고 나는 그런 그 분이 그 것만으로도 눈물나게 고맙다
어떤 일꾼이 섞여 밥을 먹을때 내게 황당한 질문을 쏟아냈는데 그때도 그 어머님은 그러셨다
남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고..
그냥 조용히 말씀하셨을 뿐이고 그 물은 상대가 그걸 이해할 폭이 되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그 남자의 계속되는 질문이 하나도 어지럽지 않을만큼 그 어머님의 말씀은 내게 위엄있고 단호했다.
남친이야 내가 예전 시어머니처럼 그 분과 친구가 되길 바라지만 그건 마음이 아니라 세월이 해결하는 것.
그리고 좋고 나쁨을 떠나 뭐든 익숙하지 않는 것들은 불편한 법이다.
그러나 불편은 불행도 불만도 아닌 그저 시간이 필요한 나와 다른 그 무엇일 뿐.
이번 추석도 그랬다.
미리미리 오라거나 아님 안와도 된다거나 그런 걸 알 수 없는 상황 어떻게 행동해야하는 건지 나 나름 많이 걱정하고 긴장했다.
나는 늘 갑작스러운 일보단 예정된 일이 좋은 관계로 남친을 채근해 알아본 결과 미리는 아니고 추석 아침은 와 먹으라 하셨다는데 나야 혼자 좋아 어머 어떻해? 손님이 오실건데..ㅎㅎ
그래 추석에 가을바람님이 오셨었다. 내게 추석이란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 아니니 그냥 내겐 오시니 좋다였는데 가을바람님은 식혜며 쑥떡이며 강정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나타나셨다.
사실 식혜는 나도 할 생각이라 엿기름도 사놓았지만(결국 못했다..ㅎㅎ) 오셔서 뭐가 또 집에 있냐며 멸치볶음이며 잡채며 수정과며 시집간 딸내미집에 오신 것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하시는 데 기분이 묘했다.
그래 남들은 다 이렇게 사는걸까. 친정엄마가 오면 이렇게 먹고 싶은 건 또 있냐며 분주히 움직여 맛있는 것들을 줄줄히 내어놓는 걸까.
안타깝게도 가을바람님은 당신딸에게 나는 내 엄마에게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냥 내 기분은 그랬다.
그러니까 나말고 당신들은 이렇게 사는구나...어쩌면 좀 억울한 마음.
내 엄마는 독일에 삼주나 와서도 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는 만두를 단지 사위가 안 좋아한다는 이유로 죽어도 만들지 않으셨으니까..
전남편이야 추석이란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 작년엔 돌아와 내 상황이 그랬고 ..
이번엔 남친과 함께 만나고 싶었던 식구들
그런데 단 아무도 너 추석에 올거니는 커녕 개무시하는 식구들
이건 따로 써야할 문제이긴 해도 요즘 내 가족들을 보면 절절히 느낀다
저 인간들에게조차 믿음을 주지 못했다니 나 인생 잘못살았구나....라면 내 인생이 훨 편하겠지만
아니 나는 저 인간들마저도 나를 이렇게 이해못하면 내 인생은 어차피 외로운 인생이구나
내가 맞았구나. 나도 개무시로 맞선다, 이렇게 반응한다지..ㅎㅎ
어쨌든 그렇게 추석전날 함께 장보고 음식만들고 명절 분위기내며 이렇게 저렇게 보내는데 그의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남친이 미리 말을 전했다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즐거워하시면서 그 분께 잘해드리란 말씀만 하고 끊으신다.
손님까지 모셔다놓은 추석날 아침 늘어지게 다른 손님이 와 가을바람님이 깨워주실 때까지 잔 사야..ㅎㅎ
서둘러 일어나 씻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날 사온 송편과 과일로 간단히 우리가 모시고 있는 관세음보살님께 예를 드렸다.
토란국은 없어도 가을바람님이 해주신 이런 저런 요리와함께 그, 나,가을바람님 그리고 간신히 모셔온 그의 친척형님과함께 우리들만의 나름 추석아침을 근사히 먹었다.
식사후 그 분은 가시고 우리 셋은 담양의 어머님께로..
차와 송편을 놓고 큰 스님과 가을바람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님앞에 잠시 앉아 인사를 드렸는데 며느리도 아닌 며느리지만 그렇게 바람지나가듯 다녀가는 모습에 섭섭해하는 기색 하나없으시니 정말 좋더라.
어머님은 진심으로 가을바람님이 오신 것을 그리고 어머님도 아끼는 그 친척분이 우리집에서 함께 식사한 것을 좋아하시더라는 것.
기분좋게 나와 가을바람님과 둘만 (남친은 걷는 걸 싫어하므로..ㅎㅎ) 추석 날 한적한 메타 세쿼이야길을 걷고 어딜 또 가시고 싶냐는 내 물음에 집에 가시고 싶다네.
다음 날 가시기로 했기에 아 잘 못 모셨나 불편하신 가 순간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세상 천지에 자기 집만큼 편한 곳은 없는 법이니 당장 동의..ㅎㅎ
집으로 돌아와 짐을 꾸리고 정읍가는 길을 넘는다. 이건 예전에도 썼지만 내가 최초로 넘었다는 그 국립공원 산길.
운전이야 남친이 했지만 어쨌든 몇 번 넘어본 길이니 그 길 옆 그 유명한 내장사에도 가야지.
웬수같은 남친은( 그 날 우리 엄청 싸웠다지..ㅎㅎ) 절을 하도 많이 다녀 절에대한 감각자체를 상실했지만 우리야 모르는,특히 유명한 절은 들려가고 싶지
툴툴대는 남친을 끌고 간 절 내장사는 정.말. 좋았다.
우선 절터가 좋았고 절을 둘러싼 산세도 좋았고 계획한 듯 놓은 듯한 절세도 좋았다.
그 연세에도 탐구심이 너무나 뛰어나신 가을바람님을 도저히 뒤따를 수 없는 나는 그저 벌 담벼락을 돌며 카메라가 있었다면..ㅎㅎ 그런 생각이나 했지만 정갈한 절, 아니 속으로 숨은 절(?)이 맞다는 느낌
여러번 와보고 일로 와보고 어쩌고 툴툴하던 남친이 심심해 들려준 소식이라면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인가 단풍나무가 백팔개라더라
인위적인 것에 점수를 별 주지 않는 나지만 내장산을 보고나니 그런 인위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추석을 지냈다
그리고 어제 남친의 아는 동생이(그러니까 그 고기공놈 파티에 왔던 그 놈이..ㅎㅎ) 다녀갔는데 자랑스럽게 수정과냐 식혜냐 물었다지.
그 후배 웃으며 예전에 이 집에 오면 물만 마시고 갔다던데..
그래 이렇게 노란대문집은 이제 사람사는 꼴이 갖줘지고 있다.
너무나 다른 삶이라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래지만 그래도 , 아 이래서 사는구나.란 생각을 하게하는 그런 생활
그렇게 이 곳의 첫 명절을 보낸다.
2008.09.17 장성에서..사야
가을바람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쟤가 왜 저러냐 이러지 마시고..ㅎㅎ
위에도 썼지만 감사하단 감정보단
처음엔 그냥 부럽고 놀랐어요
가을바람님 그러셨잖아요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으면서도
뭐가 먹고 싶냐고
내가 다 해줄 수 있다고
저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다른 사람인생에서 그게 부러웠어요
남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런 엄마들도 있구나겠지요..^^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그 엄마와 딸
제 경우가 그런 것처럼 그런걸거예요
어쩌면
서로 상대에게 내 보인 것 이상으로
그 마음까지 읽어주길 바라는 그 것..
그런데 그 마음이 서로 미묘해서 읽어내리기 힘들지도..
어쨌든
정말 그랬어요
내 엄마가 이렇게 와서 너 뭐 먹고 싶니?
이렇게 편하게 요리를 했줬다면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가을바람님이 수정과를 만드시던 그 순간에 했답니다..
'2. 노란대문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집 야생화 (0) | 2008.09.25 |
---|---|
그간의 사진일상..ㅎㅎ (0) | 2008.09.20 |
추석인사 (0) | 2008.09.13 |
새로운 취미, 새로운 외국어 (0) | 2008.09.05 |
메타세쿼이야길 (0) | 2008.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