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그래 드디어 서른 아홉이 되었다

史野 2005. 2. 11. 01:27

 



 

 

설날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 설날인데 뭐 나한테 할 말없냐고 물었다.

 

있지 생일축하한다..하하하

 

내가 아는 서양사람들은 우리가 동시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사실을 무지 재밌어한다.

나도 분위기탓인지 오랜시간 만나이를 따지고 살았는데 왠지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좋아 올해는 아무 부담없이(?) 두 살이나 더 먹기로한다.(그래서 죽어도 자긴 서른아홉이라고 우기는 남편이랑 나랑은 동갑이다..ㅎㅎ)

 

명절이다보니 여기저기서 멜도 날라오는데 난 이젠  한국명절이 아무 의미가 없는 강심장이 되어버려 그런 걱정이 되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런 날마다 찾아올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한 향수며 그리움이 없으니 어차피 나와사는 내겐 다행인가.

 

이렇게 서른 아홉이 될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른 일곱 여덟정도에는 그래도 엄마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가보다.

 

애도 없고 직업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심지어 그 흔한 손전화도 없고 여전히 불확실성속에서 떠도는 인생.

있는거라면 내게 주어진 자유일까.

 

여전히 술담배에 쩔어살고 그저 낙이라고는 책읽는거 음악듣는거 백만 번 사전뒤적이다 한 단어 외우면 감동하는거..(정말 너덜너덜해진 사전들을 보면 그 노력에 눈물이 날 정도다...-_-;;)

 

큰 소원이 있다면 파리에서 혼자 육개월만 살아보는거 작은 소원이 있다면 역시 혼자 인도를 일주일만 가보는거..

 

그런 마누라를 여전히 이뻐죽겠다는 남자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진짜 이뻐죽겠는건지 아님 자기도 그렇게 믿고 싶어 죽어라 주문을 외는 건지 내 알바아니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러니 저러니해도 내 앙큼한 속셈은 나랑 오랜 시간 함께한 추억을 곱씹으며 더이상 그리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과 늙어가는 거다 (물론 내 남자는 너처럼 살면 이혼아니라도 자기 혼자 늙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제발 건강에 좀 신경쓰라고 빌지만..ㅜㅜ)

 

일이 힘들때마다 더 일찍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내 남자처럼 나도 가끔  더 일찍 다른 종류의 인간과 세월쌓기를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하 지만

최선을 선택하지 않았거나 못했을땐 차선이라도 감사해야하는 건 삶의 진리.

 

하긴 뭐 가보지 않은 길이니 최선의 선택이 있었을까 아님 앞으로 있을까도 자신없으니 생각 안기로 한다.

 

늘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힘들고 피터지게 살았다.

 

뭐가 그렇게  불만족이고 부정적이고 회의적이었는지

어쨋든 올해들어 내가 수도 없이 강조하듯이 이만 달라져야할거 같다.

 

그 놈의 독일어 좀 못하면 어떠냐. 내가 독일사람도 아니고 거기다 독일떠난지 벌써 8년째인데 안틀리고 말하고 모르는 단어 없으면 그게 비정상이지.(이건 정말 기립박수를 받아도 시원찮은 맞는 말 아닌가? ㅎㅎ )

 

일본어 엉망인것도 이젠 내 알바 아니기로 한다. 내가 일본어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것도 아니고 말 안통하면 영어 못하는 니네 탓이지 내 탓은 아니다..^^

 

일안하고 좀 놀고 먹으면 어떠냐. 돈벌어다주는 사람 있고 쓰는 돈 뭐라안하니 그만한 행복이 있냐.

 

남편이 좀 오래 일하면 어떠냐?

어차피 수입이라고는 남편월급밖에 없는데 일 없어서 놀고 있으면 중동건설현장이라도 몇 년 다녀오기를 바랄 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거기다 먹고 살기 위해 나라면 못 참을 드러운꼴 대신 보고 참아준다지 않냐..

 

그리고 좀 무식하면 어떠냐? 그나마 지금이라도 무식한 걸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제라도 조금씩 공부해가면 되는 거 아니겠냔 말이다.

 

회사구조조정 어부지리로 혹 승진을 할지도 모르는 내 남자

누구맘대로 은근슬쩍 승진?

남편은 얼굴보기도 힘든데 이왕 이런 상황 돈이나 실컷 써볼테니 연봉을 왕창 올려달라고 마누라가 생X랄을 떨더라 전하라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얘기하며 협박(?)했다.

 

돈문제에 관한한  자기 마누라를 백치로 알고 캡 무시하는 내 남자가 갑자기 약을 먹었나 네가 시키는데로 다 그대로 전했노라며 비장한 얼굴로 돌아왔다.

 

돈버는 애들에겐 천문학적인 연봉이나 보너스가 오고가는 회사에서 돈을 아껴야 살아남는 내 남자는 그나마 싼값(?)에 우직하게 일하는게 트레이드마크인만큼 우리에겐 도박이다.

(나는 그렇다고 치고 쓰는데만 관심있는 마누라가 버는데도 관심을 갖는데 감동한 이 남자 오버했나보다..-_-;;)

 

아무것도 확실한 상황이 아니라 대박은 커녕 피박을 쓸 수도 있겠으나 그러고 나니 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안되면 독일로 돌아가 덜 벌고 덜 쓰고 그대신 안정되게 사는거고 아님 또 죽어라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그마나 돈번다고 참아 볼 생각이다.

 

 

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한 생기지 않을것 같은데

 

내 애도 자신없는 난 입양은 전혀 생각없고 친정쪽으로 조카 여섯 독일에 대자 둘 이럼 충분하지 않을까.

 

늙어 내 자식이란게 없으면 정말 그렇게 외로울까 .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냥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미친 척 시도해봐야하는건 아닐까

아직 늙지 않았으니  그 심각성을 모르는건가.-_-;;

 

어쨋든 이렇게 난 서른 아홉이 되었다.

 

 

뭐가 잘 해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잘 해내고 싶다..

 

 

 

 


2005.2.10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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