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지 두 달이 이제 넘었고 고향에 돌아왔다고 하지만 내 고향이 어딘 지 나는 잘 모르겠다.
태어나기야 예전에도 썼지만 경기도 어느 산골. 만 두 살인가 이태원에 왔고 거기서 이사온게 이 동네. 그럼 과연 이 동네는 내 고향인가? 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지인이 내게 어딜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내가 한 이야기는 두 곳. 종로서적과 북한산이었다. 종로서적이야 없어졌고 북한산이야 변할 수는 있어도 없어질 수는 없는 곳.
오늘 그 북한산 백운대에 소라님과 올랐다.
역시 언급했지만 나를 한국에 돌아와 미치게(!) 만드는 건 산이다.
산을 좋아했고 산행에 길들여졌고 산에 가면 난다 ( 물론 오늘은 여러 조건상 그건 아니었다만)
등산복이 준비되길 했나 등산화가 있길 했나 어제 컨디션이 좋길했나
아 혼자 산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드럽게 아프고 서러웠던 어제.
오늘 나름 악조건으로 출발한 산행이었지만 그 가고 싶던 북한산에 다시 오른다니 감동
날씨 좋고 분위기 좋고, 요즘 담배를 하루 두갑이나 피건만 산에가면 그저 행복한 인간인 나는 역시나 산에서 내 템포를 환상적으로 유지해주는 소라님과 구파발쪽으로 백운대에 올랐다.
중3때 그 가파른 바위산을 오른 뒤로 수도 없이는 아니지만 늘 가까이 접하던 산.
오늘도 소라님께 내내 이야기했지만 바라만 봐도 가슴이 벅차오는 그 산에 오른 건 얼마만인지..마침 가을이고 단풍나무는 불타오르고 낙엽 혹은 떨어진 꽃내음은 왜 이리도 나를 미치게 하던지..
오른 길은 낯설었지만 또 그 길을 오르다보니 아 이 길이 낯선 건 아니었구나하는 느낌. 내려오던 길은 내가 자주도 들락거리던 그 길.
늘 강조하지만 잊고 있었던 기억들. 그 길을 함께 오르건 하던 그들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왔다면 너무 오버일까.
내가 산에 다닐때는 밥하는 게 가능했기에 그래 저기서 물을 뜨러 갔었지 혹은 저기서 버너를 붙이느라 힘이 들었었지 하는 자잘하지만 내 삶속의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던 그래 참 오랫만의 산행.
아 젠장 이런 산행마저도 얼마나 그리웠는 지 말이야.
내가 살았던 도시 어느 곳에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은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고 처음 나는 그 산에 다녀왔다..
다시 오르고 싶었던 산, 내게 내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가장 강력하게 해주는 그 산에..
나야 백운대를 몇 번 올랐지만 백운대를 처음 오른다는, 그런데도 이런 산꾼인 나를 기죽일 만큼 산을 잘 타는 소라님
내려와 술 한 잔 마시다가 이차로 온 우리집
드럽게 행복했는 데 역시 드럽게 행복하게 술마시다가 엄마 전화를 받았다지.
그리고 드럽게 행복한 김에 소라님앞에서 내가 할 말을 다했다지.
아 젠장 인생 드럽게 아름답다니까. 나름 나 약올려가며 할 말 다했다니까..
전투는 시작했다. 그녀가 이길 지 내가 이길 지는 아무도 모른다지..ㅎㅎ
어쨌든 나는 백만년만에 백운대에 다시 올랐다.
드럽게 아름다왔고 여전히 야산(?)이 아니면서도 야산인 그 곳에 올랐다는 감동이 있었고
그래 나는 변했는데 너는 이대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구나란 그 강렬한 느낌....
나와 오늘 산에 함께 올라 준 당신 고맙다
내겐 너무 간절한 일이었다지
그래 그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모르고 걱정했다니 오버였네
그래도 그 덕에 산에서 그 맛있는 국이랑 밥도 얻어먹고
같이 오르는 사람 전혀 신경쓰지 않으면서 산에도 편히 오르고
이십년 전 추억도 더듬고..
가파른 그 정상
올라가지 말까 했었지만
내가 간절히 오르고 싶었다지
그래 그랬어
그 산에 간절히 오르고 싶었어
내가 내려 본 풍경은 너무도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그 백운대에 올라서
드럽게 행복하다지..
2007.11 01.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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