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슬픈 소식..

史野 2004. 12. 2. 11:37

시아버님이 많이 아프시답니다

 

어제 저녁에 전화가 왔는데 정신이 없으시고 머리가 너무 아프시다고 해서 병원에 실려가셨다네요

어머님은 혹시 명을 달리하시는건 아닐까하고 놀래셔서 그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뵈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하신겁니다.

 

그런데 저희가 얘기를 잘 들어보니 그게 아닌것 같아요

아무래도 치매인 것 같습니다.

 

삼년전에 암때문에 수술받으시고 또 재발하셨다고 해서 계속 치료를 받으셨었지요

여름에 많이 변하신거보고 혹시 하면서도 그래도 치료때문에 그러신가보다했는데 그게 아닌거 같아요

어머님은 지금 그 병은 아예 상상도 못하시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네요

 

언젠가 한 번 아버님에 대한 칼럼을 쓰고 싶었지요

 

친정아버님이 중2때 돌아가셨기에 제겐 아빠가 살아돌아오신 것처럼 친정아버님같은 분이거든요

어머님이랑은 친구같지만 아버님은 그냥 진짜 아버님처럼요..

 

그런 병이 뭐 사람을 골라찾아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생각할 수록 황당하고 억울하고 그렇습니다

 

소시민적이시고 너무 검소하셔서 가끔 제 열도 받게 하시지만 선하시고 유머감각도 뛰어나시고 한 평생을 정말 성실히 살아오신 분이시거든요

 

아버님도 전쟁세대라서 진짜 힘들게 공부를 하셨답니다

전쟁후니까 건축수요가 많을 것 같아 건축을 전공하시고 타 대학 세미나에 갔다가 한 건축과교수님의 딸을 알게 되어 첫눈에 반하셨더라지요

 

저희 어머님이십니다.

너무 아름다와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며  지금도 수줍게 말씀하시구요

 

그래서 건축은 당신에게 밥줄도 제공하고 사랑하는 아내도 선물했다고 늘 흐믓해하시며 그래도 이제 당신은 설계는 못하신다고 건물파괴쪽이 더 빠를거라고 농담을 하시는 분.

 

약혼을 하신 어머님이 다 늦게 공부를 하신다고  다른 여자만나라고 했다는데 7년을 기다리셨대요
네 시아버지 그때 불쌍해서 못봐줄 정도였다는 얘기를 작은 아버님은 아직도 하시지요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아직도 어머님이 너무 이뻐서 가슴이 떨리신다는 그런 순정파시기도 하구요

 

수십년을 자전거로 출퇴근하시고 은퇴하신 후에 컴퓨터도 배우시고 온 방에 영어단어를 붙여놓고 외우시는 분이라 정말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실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늘 싼표를 골라 한국에 가는 며느리에게 외환위기때는 비싸도 대한항공을 타고 가라시던 분이셨는데..

저희 결혼때 한국에 다녀가신후 꼭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다시 설악산에도 가고 싶고 경복궁도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맛있는 건 자식들 어떻게든지 먹이려 그러시고 남아야 드셔서 저희가 궁상좀 그만 떠시라고 구박을해도 얘들아 난 전형적인 소시민 공무원으로 평생을 산 사람아니니 하시며 그냥 웃으시는 분..

 

그런 아버님이 올 여름에 십년도 넘게 탄 차를 바꾸시면서 BMW를 사셨다는 겁니다.
남편은 그냥  좋아했는데 전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잠이 안왔답니다.

 

한 푼을 아끼시려고 얼마나 애쓰시는 분인데 혹시 당신이 얼마 살지 못하시리라고 생각하고 어머님을 위해 좋은 차를 구입하신건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구요.

 

이 바보가 그 불안감을 못참고는 어머님께 여쭤봤었지요

어머님은 아니라고 새 차 주문해놓고 소년처럼 좋아하셨다는데 당신의 일을 미리 아셨던게 아닐까요.

 

두 분다 일흔중반이신데 자식들은 다  멀리있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실 아버님과 그 옆에서 맘고생하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어쨋든 그래서 제가 내일 먼저 독일에 갑니다. 

세상엔 이보다 더 안좋은 일도 많겠지만 그래도 제겐 지금 가장 막막하고 절망적인 일입니다

 

근데 마음을 다잡아 먹고 이젠 그만 울고 정신차릴려구요

당장 어머님이나 남편 시누이보다는 그래도 제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또 하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요

가서도 바보같이 안울고 그냥 어머님 옆에서 씩씩하게 있다가 성탄절지나고 오겠습니다.

 

fotos

 

여름에 저랑 불피우시던 아버님입니다

이런 날이 다시 올까요.

함께 기도 좀 해주세요

그래도 혹시 좋아지셔서 사시는 동안 그냥 별 일없이 그렇게 지내실 수 있도록요..

 

 

 


2004.12.02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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