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物語

東京이야기

史野 2004. 11. 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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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스야스지로의 영화이름이 아니다.

처음에 불안한 마음으로 여행가방 하나 달랑들고 편도티켓으로 동경에 와 일년을 지낸 사야의 동경이야기이다.

 

일년이란 시간이 너무 정신없고 빨리 지나가버려서 사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더 늦기전에 나름대로 동경생활을 정리해보고 싶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난 이제 지쳤다.

 

동경으로 오기전부터 동경일로 바빴던 내 남자는 일년이 지난 지금도 일에 치여 정신을 못 차리고 일에 치인 남자 조금이라도 맘편하게 해줄까 뒷바라지하고 방긋방긋 웃어주는 것도 일년이 한계다 싶다.

 

거기다 결혼생활은 오래했어도 지금처럼 전적으로 모든 집안일을 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서 어찌나 모든게 암담하고 스트레스가 되는지 모른다.

일은 태어나서 제일 많이 하는데 여전히 집안은 엉망이고 먹을 건 하나도 없고.

 

정말 나같은 분위기파가 식탁에 제대로 차려놓고 음식 먹은지가 손으로 꼽을 지경이고 남들 음식 해먹이는게 취미였던 사람이 손님 온다고 하면 머리부터 찌근거린다

 

애들까지 키워가며 집안 일을 도맡아하는 모든 가정주부들에게 경의로움과 존경을 보냄과 동시에 나의 무능함에 기가죽기도 한 시간들.

 

다른 언어보다 훨씬 쉬워서 금방 늘 것 같던 일본어는 쓰고 살 일이 거의 없다보니 일년이 지난 지금도 간신히 물건이나 사는 수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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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리큐정원의 찻집)

 

물론 동경은 장점이 많은 곳이다.

내가 살았던 적지 않은 도시중 나는 동경이 가장 편하다.


첫째 이유야 물론 내가 입만 열지 않으면 나를 아무도 외국인으로 봐주지 않는다는 거다.

살고 있는 곳에서 눈에 띈다는거 참 피곤한 일이다. 난 원래 한국에서는 진짜 눈에 띄게 하고 댕겼는데 유럽에서 하도 눈에 띄며 살다보니 아무도 나를 안쳐다보는 게 너무 좋다.

 

역설적이게도 유럽에서는 어차피 눈에 띄니 개량한복도 입고 짝짝 스타킹도 잘도 신고 다녔는데 여기 동경에 와선 최대한 수수하게 아무도 안쳐다보는 이 자유를 즐기고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요즘 입성에 신경 안쓰는 게으른 나에 대한 변명이고 어차피 동경사람들은 뭘 어떻게 하고 다녀도 별 신경 안쓴다.

그게 내가 동경을 좋아하는 이유인데 정말 맘대로들 하고 다니고 진짜 멋쟁이들이 많다.

 

각자 어울리는 옷들을 잘 챙겨입고 다니는데다가 특히 긴자에 나가보면 디자이너 옷들을 잘 소화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기가 좋다.

 

이 도시의 자유로움 다양함, 그리고 그리 튀지 않는 세련됨..

 

이 곳은 그리고 사람들도 넘치지 않을 만큼 친절해서 좋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까지는 관심없다. 그냥 그렇게 적당한 예의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내겐 편하다.

 

어디를 가나 사람대접을 받는 다는 느낌.

서양인도 동양인도 동등한 곳..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로운 도시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그 중엔 물론 기모노차림도 보는 즐거움에 한 몫을 한다

 

다른 동양권의 도시와 달리 보통사람인 우리가 보통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누누히(?) 강조했지만 별다섯개짜리 호텔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알 필요도 별로 없는 이런 생활이 내겐 어울리고 또 나가돌아다녀도 나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 이런 곳이 난 편하다.

 

물론 한국과 가깝고 시차도 없어 심리적으로 편안한데다가 아무래도 왔다갔다하는 사람도 많고 배송료도 싸서 한국책을 읽지도 못할 만큼 소유할 수 있다는 것도 강력한 장점이다.

 

자꾸 읽지 않는 책이 늘어가서 주저했는데 가까이살때 훗날을 위해 책을 비축해놓는게 좋겠단 생각이 번뜩 들어서 몇일 전에도 13권이나 주문했다..^^(독일가봐라 한국에서 놀러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지만 배송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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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프랑스식당에서 보졸레누보를 마시던 날..^^)

 

어쨋든 주재원마누라 생활도 8년째 접어든다

 

이젠 나도 내 집이 있어서 못도 맘대로 박고 가구를 간신히 구겨넣는게 아니라 집에 어울리는 가구를 구입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기도 한 반면 주재원수당에 길들여져서 평범한 회사원의 마누라로 살아가는 것에 자신이 없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벌써 동경집의 크기가 짜증스러워 넓은 집에 살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겠다란 말을 뱉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이, 딱 지금이 억지로가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독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경계인것 같기도 하다.

 

작년 남편을 갑자기 독일로 불러다 기회니 어쩌니 하며 동경으로 보낸 남자가 이번 주 동경에 온다.

웃기게도 이 사람이 남편하고만 따로 만나 저녁을 먹자고 했다는 거다.

 

그냥 별일 아닐지도 모르는데 난 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뛴다.

어쩜 착한 마누라컴플렉스에 시달리다 지친 내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올지도 모르니까..


 

 

2004.11.22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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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뽕기 스타벅스 노천카페)

 


Alone in Kyoto-Air in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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