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견뎌내는 데는 술만 마시는 건 아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들어 지난 5월초처럼 여기다 다른 사이트에 올렸었다는 리뷰를 끝도 없이 복사해다 놓던 그 때도 나는 미치도록 힘들 때였다. 밤새 내장이 쏟아지도록, 그것도 신랑이 깰까봐, 걱정할까봐 방문을 닫고 거실문도 닫고 그것도 모잘라 쿠션까지 입에 물고 울던 때.
견디다 견디다 어느 순간 자기 연민이 극에 달하는 때가 있는 데 그 때가 그랬었다. 신경을 안정시킨다는 마른 라벤다를 주머니에 넣어 또 그 위에 라벤다기름을 가득 떨어뜨리고 하루종일 그 주머니를 달고 있던 시간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어쩌고 해도 내 스스로가 통제가 되지 않아 미칠 것 같던 날들.
그 사이트를 닫은 건 훨씬 오래 전 일인데 반복되는 복사, 붙이기 작업을 통해 내 신경줄이 조금은 잠잠해지기를 아니 내 공포가 사라지기를 탑돌이를 하는 심정으로 빌었던 것 같다.
요즘이야 꼭 그 신경줄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러가지로 내가 헤매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오래된 편지들을 읽는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두통때문에 학교도 갈 수 없었던 그 때부터 정확히 23년의 세월.
그 기간의 세월을 나는 어떻게 견뎌왔는 지 아니 어떤 모습이었는 지 궁금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친구놈이랑 20년 세월 어쩌고 이유도 있고 중1때 친구이야기를 올리면서 당시의 나를 생각해 본 이유도 있고 말이다.
초딩때는 방과후 집에가기 싫어 친구들과 무작정 떠돌거나
중학교때는 힘들었던 시간을 종점에서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떠돌거나 지하철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을 짝사랑해서 환승역에서 그의 하교시간을 기다리거나 뭐 그렇게 보냈더랬고
더 힘들었던 고딩때는 교회에 올인을 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아빠 산소를 들락거리거나 종로에 나가 친구를 만나거나 수업시간을 땡땡이 치거나 그랬더랬다.
내가 기억하는 결혼하기 전까지의 이십대도 술이나 마시고 연애나 한 게 말하자면 전부였는데 막상 예전의 편지들을 읽다보면 그러니까 그들이 묘사하는 당시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편지속에 그들이 묘사하는 나는...
이야기했듯이 나는 고딩때도 연애(?)를 했는데 의외로 그 친구의 편지도 많더라.
내 편지야 내게 없으니 뭐라 썼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 편지를 읽어보니 우리는 어찌 그리 고민이 많은지 어찌 그리 진지한 지 공부에 대한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정체성을 찾기위한 노력. 덧붙여 신과의 관계까지..세상에나 고딩때도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들을 했었나 싶은 기분.
거기다 나는 그 때 너무나 절망적인 상태였는데 그 친구가 내게 보낸 84년인가의 첫 편지에는, 내가 모든 일에 너무나 적극적인데다 특히 인상적인 게 남에 대한 관심이었다는 거다.
아 젠장. 그 때 나는 죽고 싶을만큼 괴로왔는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는데 그런 모습으로 보였다니...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남들은 다 보충수업이다 뭐다 난리도 아닐 때 나는 요양을 핑계로 한달간 청주 외가에 가있었다 (우리 외가는 정확히 충북음성인데 사촌오빠들 교육문제로 일찌감치 외할머니랑 몇 오빠들이 청주에 나와있었다)
그리로 보낸 편지속엔 특히나 걱정반과 기대반. 내 건강에 대한 걱정과 어떤 경우에도 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 나아지리라 확신한다는 말들. 자긴 늘 내 긍정적인 면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 정말 만났는 지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서울로 돌아오는 날 교보에서 만나자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삼류소설 어쩌고에도 썼던 그 친구가 많이 나아졌으니 걱정말라는 이야기까지..
그 곳에서 너를 닦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런 너를 나는 믿는 다는 말을 읽는데 정말 23년 세월을 넘어 뭉클하더라.
고3때 같은 반이었지만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보낸 편지에는 역시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그렇게나 아프고 학교도 빠지고 그러면서도 내가 자기 공부계획서를 만들어주고 학교에 오자마자 그 것부터 체크했다는 거다. 그런 모습이 얼마나 고마왔는지 그래 자신이 내가 지정해준 목표량을 못했을 때 더 미안했다고...
그런 글들을 읽으면 아 '내가 그랬구나'가 아니라 아 '너는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을 쳤구나' 싶어 내 자신이 짠하다. 젠장 이거 자기연민으로 보면 기네스북감인가? ㅎㅎ
내가 그렇게 아픈 인간인줄 전혀 몰랐다는 그 친구놈이 군에서 보낸 편지에도 그런 구절이 나온다. ( 아 그 놈의 편지를 읽었더니 또 세상은 우리가 다 구원하고 싶었나 싶을만큼 또 엄청 심각하다..ㅎㅎ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그 놈의 갈망이 한 몫.)
'여행과 스케치계획, 음악회....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네가 혹 그 고독이 싫어서, 혼자임을 잊고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임이 두렵니?
..
그래 어떤 일들이 너를 절망감에 빠뜨리고 있는거냐. '
그러니까 그 때도 나는 개판만 친건 아니고 나를 견디려고 나름 사실 무진장 애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역시 자기연민..ㅎㅎ
내가 이혼할 생각으로 한국에 잠시 갔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친구놈은 (하긴 뭐 말을 안했으니) 그 즈음 편지에 그런 말이 있더란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란..(이건 아빠의 교육영향이다. 아빠는 늘 내가 어렸을때부터 그랬으니까. 선택도 네가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너다라고)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나보다 당시 다른 사람들의 편지속에서 읽히는 나는 훨씬 근사하다.
그래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변의 믿어주는 그들의 그 '근사한 나'를 읽으며 나름 버텨냈는지도..
내가 쓴 글이 아니라 남이 쓴 글임에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멋진 여자더라고 사야가..ㅎㅎ
그 최고봉을 달하는 건 물론 그녀의 편지들이다. 그녀가 쓴 글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정말 내가 드럽게 괜찮은 여자, 이런 병정도는 하잘것 없는 그런 인간으로 느껴진다.
이 글의 핀트가 살짝 빗나간다만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일주일간 그녀집에서 묵었다. 그녀가 우리집에 오면 당근 우리집에서 일주일을 보내지만 내가 한국에 가면 늘 사람들을 만나고 어쩌고 해야하는 관계로 지난 일월에도 그녀가 자기 집에서 묵으라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복잡해서 내가 한국에 가는 데 어디서 묵어야하나 결정할 수 없을정도인가 서러울만큼 마지막까지 헤매다가 한국에 도착해서야 그랬다. 당신집에서 묵겠다고..
혹시 아나? 사야가 얼마나 재수없는 인간인지를..ㅎㅎ
그녀의 그 식탁에서 나는 그녀에게 그랬다.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더이상 기대하는 게 없노라고..
당신이랑 끝난다고 해고 아무 미련이 남지 않을만큼 나는 당신에게 했노라고..
인생이 또 드럽게 아름다운게 내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니
그녀가 다 알아서 해준다..ㅎㅎ
내 인생이 그럼에도 행복한 이유중 하나는 최소한 난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냐고?
울 엄마 너는 할만큼 했으니까 엄마 죽어도 울지 말란다
정말 이렇게 재수없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가 유일할거다..ㅜㅜ
아 또 삼천포..
각설하고 나는 그렇게 다시 잘 견뎌낼거란 이야기다.
절망적이고 힘든 순간에 나는 늘 어디를 타고 올라가야하나 고민하는데
이번엔 오래된 편지들을 읽으니 또 기운이 난다.
그래 사야 너 언제 네 삶이 쉬운 적 있었니?
그래도 또 그렇게 잘해왔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가 살고 싶은 대로는 아니었더라도
나름은 애쓰고 해왔잖니.
그리고 너는 늘 그렇게 드럽게 절망적인 순간에도 누군가 너를 아주 긍정적인 인간이라고 묘사했듯이
잘 살 수 있을거잖니.
나는 어떤 일도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죽도록 힘들만큼 아님 언급했듯이 내장이 끊어질만큼 운 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산다.
늘 내 인생을 왜이런가 고민만 하고 한탄만 하고 사는 거 아니다
웃기게 이야기하면 그 사이에 빛나는 별도 달도 하늘도 감동하는 그런 인간이다.
그래 잘 견딜거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젠장
사야 드럽게 잘난 인간이라니까...
2007.07.18. Tokyo에서..사야
'먼지 묻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삼년 십개월의 긴 여행 (0) | 2007.08.20 |
---|---|
역시나 상자 속에서 꺼낸 사진들 (0) | 2007.07.20 |
불면증과 알콜 (0) | 2007.07.14 |
한 친구에 대한 기억 (0) | 2007.07.13 |
내가 그래도 행복한 인간인 이유 (0) | 2007.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