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한 친구에 대한 기억

史野 2007. 7. 13. 23:13

이주후면 그 미친 여행을 떠나는 데 여러가지로 복잡하기도 해서 아직 여행이 실감이 나지도 않는다.

 

시댁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나는 독일가는 자체가 겁날 지경이다. 심지어 이미 비행기 컨펌도 다 났는데 아예 독일을 빼던지 아님 독일에만 삼주내내 머물던지 둘 중 하나 했으면 바라는 상황..ㅜㅜ

 

어쨌든 우리가 머물 곳중 독일이야 잠자리 예약이 필요없지만 신랑회사의 지사가 있는 싱가폴과 뉴욕호텔 예약을 신랑이 담당하고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를 내가 담당하기로 했는데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다.

 

물론 내가 담당한 곳이 여행의 마지막에 들리는 곳들이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어쨌든 막상 샌프란시스코를 가려니 로스앤젤레스 어딘 가에 살고 있을 친구가 너무 보고 싶다.

 

그 애랑 나랑은 중1때 만났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매달 시험성적을 전교 오십등까지 벽에 붙였는데 중학교 들어간 첫 시험에서 그 애는 당당히 국영수 과학까지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사백점 만점을 받아 그 차트 제일 위에 이름을 올려 내 눈에 띄었다.

 

솔직히 중학교에 들어가서 치른 첫 시험이었던 관계로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던 아이. 늘 바른 자세로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것 같지 않고 단정하고 똑부러지던 아이.

 

우리학교는 남산밑 언덕꼭대기에 있었는데 우리가 친하게 지내던 7명 중 어찌 그 애랑 나랑 함께 그 언덕을 내려오는 일이 많았다. 당시 도덕시간에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었는데 그 애랑 나랑은 견해차이가 엄청 났더랬다.

 

그래 그 언덕길을 함께 내려오며 수업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토론하고 했던 아이.

 

뭐랄까 나름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도 한데 그 당시 우리 일곱은 공부도 잘했지만 학예회 (그걸 누가 또 계획했겠냐. 바로 나다..-_-)에서 티셔츠를 맞춰입고 춤까지 춰서 선생님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1980년 너무도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춤 연습한다고 이 집 저 집 다니고 또 맞는 옷 산다고 이태원 보세집을 헤집고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우리는 역시나 내 주도 아래 미친짓(?)도 가끔 했는데 그 애는 늘 쿨했던 아이.

 

지금 미국에 계시다는 담임선생님은 욕심이 많으신 분이었는데 우리 7명을 2학년 때는 다 각 반에 가서 한 몫(?)을 해야한다며 일부러 찢어놓으셨다.

 

재밌었던 건 일부러가 아니었슴에도 졸업후 우리 7명은 여섯 개의 고등학교로 흩어졌다.

 

각자 나름의 생활을 이어가며 그래도 가끔씩 만나고 특히 그 애와 나랑은 그 먼 고등학교 시절도 친하게 지냈다. 어쩌면 내가 내 인생에서 최초로 만났던 나랑 생각이 아주 다른 아이였는 지도 모른다.

 

그 울 선생님이 '이 놈아 공부가 다가 아니란다' 라고 할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던 그 애와 나같은 날라리가 친한 친구였다는 게 웃기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지금으로치면 수능 여자수석 뭐 그런 티비 인터뷰를 할거라고 믿었을 정도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 세대는 그랬으니까)

 

학력고사가 끝나고 얼마되지 않아 그 애와 나랑은 종로서적 건너편 롯데리아에 마주 앉았다. ( 그 롯데리아는 날라리인 내가 고등학교때 종로서적과 함께 줄기차게 드나들었던 장소이기도 하다..-_-)

 

당연히 나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는 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데 우선 충격.

 

그 해 6월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내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 오죽하면 고3 딸내미를 놔두고 이혼을 하셨겠냐만 지금처럼 이혼이 흔할 때도 아니고 진짜 충격받았다.

 

더 충격이었다면 그런데 너는 왜 그동안 한마디도 안 비치다가 그 이야기를 이제 하냐니까 너에게도 영향을 줄까봐 참았다고..ㅜㅜ

 

아 이런 독한 인간이라니..얼마나 힘들었을텐데 그 속을 내게도 보이지 못하면서 반 년가까이 혼자 앓았다는 말이냐고 화를 마구 냈던 기억이 난다.

 

그 애는 그럼에도 학교 간판 스타같은 경우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단 그 대단하다는 대학에 너무 황당한 과를 골라 들어갔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한민국의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명 수를 맞춰야하는 사명을 타고 태어나니까..

 

어쨌든 우리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도 친하게 지냈고 걔네 엄마랑 종로에서 만났던 날. 당신도 가고 싶지만 안 들여보내줄까봐 못 들어간다고 웃으시며 우리를 디스코텍으로 미시던 그 멋쟁이 엄마. 그리고 나야 워낙 친한 친구니까 재혼한 엄마랑도 친하게 지냈다.

 

가정사때문이었는지 그 애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도 잘 알던 남자친구랑 결혼을 해버렸다.

 

그 애는 말했듯이 원하는 학과를 가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친구의 성향상 그 상황을 극복하고 대학원에 가고 유학을 가고 그럴거라 생각을 했었기에 그것도 충격.

 

물론 그 모임에서 대학때 사고치고 결혼한 애까지 있었으니 그리 놀라울 것도 없었지만 일단 그 애는 내게 그랬다.

 

그러고보니 그 결혼식에 지난 번 파티에 참석했던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축가를 불렀었다. 그리고 그 친구랑 나랑 둘이 결혼식 후 그 이사간 비발디에 들렸던 기억도 난다. (그 사진 어디있을텐데 내일 술깨면 덧붙여야겠다..ㅎㅎ)

 

각설하고 나는 우리보다 다섯살이나 많던 그 남편과도 참 친했는데 이 남자 내가 울 신랑이랑 결혼을 하느니 마느니 할 때 얼마나 강력한 지원을 했는 지 모른다. 

(아 물론 내가 친구남편들하고 친한 이유는 남성호르몬도 충분하지만 술을 잘 마시기때문이다..-_-)

 

이 남자 내가 헤맬 때 남들은 다 미쳤냐고 반대하는데도 그 결혼(그러니까 울 신랑과의 결혼)이 00씨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며 중요한 날은 꼭 딴 남자랑 데이트 못하게 나를 불러서 외롭단 생각이 안 들게 엄청 애썼다. (물론 그건 자기 생각이지만..ㅎㅎ)

 

연애할 때 우리부부가 뮤지컬을 보러간다면 그 장소에도 데려다 주고 불러다 밥까지 해먹이고 결국 결혼하고 신혼여행갈 때 드디어 성공했다며 공항까지 데려다 준 것도 이 부부.

 

울 엄마 환갑때도 둘 다 왔었는데 그들은 어느 순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버렸다. 그 이후야 당근 본 적은 없고 더블린 시절에도 전화만 자주 했었다. 심지어 내가 들어갔다는 카페에 부부가 가입까지 하는 사태(?) 발생. (모님 기억나실거다..ㅎㅎ)

 

이 왠수 당시에 두 남매의 엄마였으니 감격하면 내게 전화해서는 너는 아이 안 낳냐고 괴롭히고 또 애들때문에 열받으면 전화해서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한탄도 하고..^^;;

 

친정엄마가 이혼 후 미국에 가셨기에 본인들도 캐나다에서 미국쪽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어찌 연락이 끊겼다.

 

나도 동양에 와서는 이래 저래 하도 정신이 없었어서 어찌 찾아볼 엄두도 못냈고 말이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 그 중1때 담임선생님이 우리 친정으로 늘 전화를 하셔서 상해 홍콩 도쿄까지 연락을 하신건 너무나 존경스러운 일이다.

 

예전 독일살 때 선생님이랑 가끔 통화를 했었는데 선생님 '얌마 미국 한 번 와라' 하셨더랬다. 그럼 왕재수에 빈말을 못하는 인간인 나는 '선생님 그 돈이 있으면 한국을 한 번 더 가죠' -_-

 

이건 두고 두고 그 친구들에게 구박받은 전설(?)같은 이야기다..ㅜㅜ

 

이번에 한국에서 파티를 할 때 그 중1때 모임 친구들도 부를까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내가 동양으로 온 이후론 늘 한국을 일주일 가니까 친구들에게 연락할 시간이 없었고 그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젠 좀 뻘쭘하단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 얘긴 더블린 시절까지는 이런 저런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냈다는 이야기다. 그 날 파티에도 보니 대학교 이전 친구는 딱 한 명 왔다는 것..-_-

 

그냥 중 1 까마득한 시절 친했던 아이들도 아니고 더블린 시절까지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들인데 참 떠도는 삶은 이래서 서럽다.

 

처음가는 미국행. 물론 여행일정이 워낙 짧기도 했지만 몇 중요한 만나야 할 사람들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여행계획을 짜버렸다는 후회. 신랑에게 난 왜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샌프란시스코를 외쳤을까.

 

어쨌든 오늘 호텔때문에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아다니다 갑자기 샌프란시스코 가까이(?)에 있을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워낙 일찍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으니 이제 그 딸내미도 열여섯 일곱은 되었을텐데 다들 잘 지내는 걸까.내가 봤을 때는 갓난 아이였던 아들내미도 지금은 엄청 컸을텐데 난 참 무심한 친구다.

 

꼭 미국에 가기에 그 친구를 생각했던 건 아니고 얼마 전 무슨 일로 창고에 내려가서 오래된 편지들을 찾아왔는데 그 친구가 대학시절 보낸 편지들이 그 사이 끼어있었다.

 

그 몇 편지들을 읽다보니 우리는 정말 그 이십년 전 우리가 생각했던 그대로 삶을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 삶에 보면 사실 가장 오래된 마음에 들었던 친구다. 아 뭐 그날 파티에 왔던 친구는 중2때부터 친구니까 그게 그거긴 하다만..ㅎㅎ

 

이번 여행이야 그냥 떠나온다고 해도 어쨌든 친구찾기에 나서봐야 할 것 같다. 더불어 한국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연락도 해보고 말이다.

 

 

 

얌마 나만 무심한게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나눠온 삼십년 가까운 세월동안 겨우 칠년도 아닌 세월을 떨어져 있었는데 넌 나없이도 잘 산다는 거냐..ㅎㅎ

 

우리는 그 사이 아주 많이 변했을까..

 

혹 선생님은 여전히 네 연락처를 알고 계실까.

 

갑자기 드럽게 보고싶다.

 

 

 

 

 

2007.07.13.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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