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이 엄마랑 문제가 많았다는 애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웃기긴 해도 나는 굉장히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선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너무 좋았다. 아빠는 엄마를 끔찍히도 아끼셨는데 뭐 거의 나의 여왕이시여, 같은 숭배분위기.
손톱발톱을 깎아주거나 하는 건 기본인 다정다감한 남편이셨다.
거기다 엄마는 자식들간의 싸움도 용납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막내이면서도 오빠나 언니들에게 욕을 듣거나 꾸지람을 듣거나 해본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형제들이 싸우거나 하는 일이 가능하단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자랐다.
엄마의 철칙은 아무리 당신은 올케언니랑 안 맞고 그래도 너희들이 나서서 언니에게 뭐라고 하는 법은 없는거라고, 부모모시는 언니에게 고마와해야 한다 하신다.(물론 요즘은 좀 변하셨다만..-_-)
당신이 너무나 잘나신(!) 관계로 어부지리로 우리까지 넘 다 잘났기에 뭘해도 '어떻게 그렇게 잘했니'가 아니라 '내 자식인데 어련하겠니?' 가 엄마의 대답. 교회에서 언니들에게 교회교사를 시킬려고 할 때 우리 엄마는 '내 딸이야 다 너무 잘할거지만 시간이 없어서' 라고 대답하신 분이다..-_- 우리집 식구들이 가지고 있는 막무가내 자신감은 엄마의 세뇌덕인지도 모른다.
옛날분치고는 특이하게도 울 엄마는 부부는 친구여야 한다며 나이차이 안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한다는 소신도 가지고 계셨는데 모두 연애결혼을 했지만 두 쌍이 동갑에 제일 차이 많이 나는 큰언니네 부부가 세 살. 당시 엄마가 세 살도 좀 많다고 하셔서 충격먹었었다.
어렸을때부터 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라면 사랑스런 아내가 되라. 남자들은 앞에서 무조건 당신말이 옳다고 기를 마구 살려주면 어차피 다 마누라뜻대로 하게 되어있는 족속(?)이니 우선 기분을 잘 헤아려서 마음편하게 해주는 현명한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내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은 아빠가 일꾼들 임금도 못줄 정도로 상황이 나쁘셨을 때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을 아빠편지와 함께 엄마에게 보내셨는데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긴 커녕 아주 반가운 얼굴로 그 돈을 그들에게 건네셨더랬다. 내 어린 눈에도 아빠의 위신을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고 할까.
지금이야 엄마때문에 너무 괴롭지만 한동안 엄마를 용서했던 적이 있었다. 철이 들어보니 겨우 엄마나이 만으로 마흔넷에 (그러니까 지금의 나보다 겨우 네 살 위) 아빠가 돌아가셨다. 얼마나 힘들었을가를 생각하니 당시 나를 괴롭혔던 엄마가 이해가 갔었다고 할까. (엄마는 그때부터 아무 일도 안했기때문에 경제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엄마는 매일 노인복지회관에 나가시고 배트민턴 동아리같은 곳에서 활동을 하시는데 지금도 엄마에게 이제 우리도 다 컸으니 남자친구도 좀 사귀면서 덜 외롭게 사시면 좋겠다고 하면 아무리 찾아봐도 너희 아빠만한 사람은 없다며 아련한 눈빛이 되신다.
그런 유산덕분인지 우리 집 형제 들은 부부관계가 다 환상적으로 좋은데 아들내미가 엄마 아빠는 원래 그렇게 사이가 좋냐 아니면 우리 앞에서만 그러는거냐? 물었을 정도로 닭살인 오빠네부부.
1월에 갔을 때 나도 조카놈이랑 손잡고 이거 뭐냐고 마구 핀잔(?)을 줬더니만 울 올케언니왈 자기넨 아무것도 아니라고 파티이야기에도 썼지만 둘째고모는 첫눈 온다고 고모부가 손수 카드까지 써서 케익을 사들고 들어왔다고 자랑 하더라고..ㅎㅎ 울 큰형부의 마누라자랑도 심각한 수준인데 서로를 위하고 잘 통하는 행복한 부부들을 바라보는 건 참 기분좋은 일이다.
그 날 가족테이블에 있었던 고기공놈이 재밌기도 했지만 다들 사이들도 너무 좋으셔서 그 분위기가 좋았다며 그렇게 사이좋은 부부들 사이에서 자라는 데 어찌 아이들이 착하고 이쁘지 않을 수 있겠냐는 말도 하더라.
조카들도 그렇고 울 올케언니 이야기도 썼고 두 형부들도 그렇고 사람들이 너무 좋을뿐 아니라 열린 사고 남을 자신의 잣대로 재지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무엇보다 그게 내겐 가장 든든하다.
우리는 자주 만나거나 상대를 간섭하거나 하지 않으면서도 친밀하고 서로 피해 안주는게 도와주는 거란 생각들을 하며 산다.
어느 집이나 형제가 많으면 속썩이는 사람이 하나씩 있다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게 바로 나다. 그래도 단 한번도 미운오리새끼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오빠 언니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살았다.
워낙 한 승질 하고 재수없는 인간인지라 막내인 주제에 늘 마음대로 하긴 했어도 그래도 그 고통속에 내가 나름 사람 꼴 유지하며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들의 덕이다.
내 결혼을 그렇게 반대했던 것도 내가 불안정한 인간이기때문이었는데 그것도 맘대로 했고 이렇게 떠돌며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시댁식구들이랑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시댁분위기가 우리 집이랑 너무 비슷했기때문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내가 신랑이랑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안그래도 한국갔을 때 이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잘 사는 너를 과연 우리가 그만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고 하셨더랬다.
그러니까 바로 그때인 9년 전 내가 연락도 안하고 한국에 나타났을 때 다들 놀랐을텐데도 누구하나, 심지어 엄마마저도 심각한 얼굴로 맞지 않고 잘 왔다고 하셨으니..^^;;;
평소에 전화도 잘 안해서 친정식구들이 전화하면 뭔일 났나 싶은 관계이긴 하지만..ㅎㅎ 언제라도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좋은 친구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정해주고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은 우리집에 오는 걸 좋아했고 우리 집 식구들하고도 잘 지냈다. 특히 울 엄마는 친구들에게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셨다.
내가 신랑이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그 예전 남자친구는 누나가 결혼 좀 말려달라며 큰언니를 찾아가서 여서일곱시간인가 이야기를 했다더라.
식구들이 여기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나는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다 하는 관계로 한국에 가면 누구를 몰래(?) 만날래야 만날 수도 없다. 다 알거든..ㅎㅎ (올케언니가 '고모 오늘 누구만나요? '하면 '언니가 모르는 사람이요' 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그들이 경사모 삼인방이라고 불렀다는 그녀나 고기공놈 친구놈은 가족처럼 대해준다. 울 큰언니는 그 셋이 없었으면 파티도 불가능했다는 오바까지..-_-;;;
내가 한국에 가면 요즘은 그녀를 늘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데 그때도 썼지만 울 올케언니 시장갈때마다 고모가 갈만한 괜찮은 맥주집이 없나 보고 다니다 발견하면 오빠랑 답사까지 다녀온다. 아 물론 꼭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이 부부는 원래 둘이 나가서 술마시는 걸 좋아한다. 애들 어릴 땐 내가 애봐주고 둘 이 나가서 칵테일을 마시고 오기도 했다..^^
이번에 집에도 안 들리고 공항에서 직접 그 파티장소로 가서 그녀를 만났는데 (우리 집에서 보이는 곳이다) 그 이야길 들은 조카놈이 옥상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봤더니 한 테이블에서 어떤 여자가 담배를 열심히 피고 있더라나..그래서 저건 고모고 앞에 앉은 사람은 그녀라고 했다고..하하하
그냥 그녀집으로 가겠다니 올케언니가 오빠랑 고3 조카놈까지 끌고 술집에 나타나서는 집앞에 왔는데 자기가 인사를 와야겠냐고 오빠에게 구박을 받았지만..ㅎㅎ 친구놈까지 합류해서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내가 엄마문제로 괴로와할 때나 폐인처럼 술을 마셔대거나 내 삶에 한없이 흔들려해도 내가 나름 애쓰며 살고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들. 시댁문제로 괴로와할 때도 내가 그동안 너무 잘했기때문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국제전화로 술주정을 해대도 참을 성 있게 들어주는 사람들.
그렇다고 뭐 눈먼 사람들은 아니다. 남들이 들으면 재수없을 것같은 충고도 적나라하게들 해주고 내 장점만큼이나 내 단점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쿨한 사람들이다.
내가 이렇게 웃기는 인간인게 다 내 잘못은 아니긴해도 어쨌든 미안하기도 하고 다들 너무 고맙다.
내가 아무리 독한 맘을 먹어도 엄마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란 인간은 안타깝게도 변하지 않을거야.
나는 알다시피 전혀 걱정을 끼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이니까 쓸데없는 약속같은 건 하지 않겠지만 일단 무엇보다 내 행복을 위해서 노력할게.
앞으로 우리 삶이 어떻게 진행되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열심히 살게 될거야
그러니까 당신들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안타깝고 안쓰러울 수는 있겠지만 그냥 믿어주길..
멀쩡한 인간이지 못해 속상하고 힘든 건 무엇보다도 나니까 말이야...
정선생님도 그렇지만 늘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당신들이 있어서 힘들어도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버텨올 수 있었다....
2007.07.05.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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