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불면증과 알콜

史野 2007. 7. 14. 22:35

불면증과 알콜중독중 어느 것이 더 끔찍할까. 둘 다 나쁘겠지만 내겐 전자가 훨씬 공포스럽다.

 

몇 분들이 심각하게 걱정을 하기도 하고 나 역시 내가 걱정스럽다만 작년말부터 술없이 견뎌내기 참 어려운 불안한 상태다.

 

그제 내 남자가 드디어 너무 걱정을 하며 안티를 걸었다.

이건 그냥 넘길 수준이 아니라고.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냐고 묻더라.

내가 할 수 있었던 대답은 단 하나, 자기 내가 얼마나 이성적인 인간인줄 알잖아.

내 남자가 할 수 있는 대답도 역시 하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일 전에 그 친구놈이랑 내 병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 친구놈왈 네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걸 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냐며 그렇게 심각했다면 어떻게 자기가 이십년동안 모를 수가 있었겠냐고... 너는 늘 환하고 밝은 아이였다는거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십년을 만난 친구놈도 내 상태에 대해 이해시키기가 이렇게 힘든데 여기 블로그에서 내가 병 어쩌고 떠들면 저 여자 불행을 과장하는 구나 하는 사람들 많겠단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 어떤 분은 그 비슷한 글을 남겨놓으시기도 했다. 하긴 뭐 행복을 과장하는 게 분명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어차피 뭔 글을 쓰건 읽는 사람 마음인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내가 환하고 밝은 아이였던 건 맞다. 그런 괴로움속에서도 늘 그럴 수 있었던 건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그것 역시 내 천성이다. 그저 속으로 견디고 내 아픔에 대해 징징대지 않았던 것 뿐이랄까.

 

내 이야기를 들은 후 내가 보냈던 몇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아 이게 그 이야기였구나 싶어 그제서야 짠하더라나.

 

친구놈뿐 아니라 이년간 나랑 함께 근무하며 하루종일 붙어있었던 그녀도 내가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어쩌고는 알았지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몰랐다.

 

여기다 내 고통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쓰는 건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기때문이다. 나름 내가 나를 치료하는 과정이랄까.

 

이게 타고난 건지 아님 신랑말대로 엄마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울 신랑은 백프로 내가 아동학대를 당해 망가진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훨씬 연약한 신경줄을 가지고 있는 나는 늘 그 무난함이 미치도록 절박했고 내 신경줄을 무디게 하는데는 술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남자친구들을 갈아치우며 버텨내기도 했다.

엄청 이성적인 오빠는 당시 그랬었다. 네가 뭔가 주는 게 있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헌신적이겠지만 자기에겐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걸로 보인다고..

뭐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만 힘들게 헤어진 경우, 기다릴테니 돌아오라는 남자는 있었어도 헤어졌다고 나를 미워하는 남자들은 만나보지 못했다.

 

나는 엄마에게서 단 한번도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이 없었기때문에 근원적인 외로움에 늘 사랑이 필요했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아니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내 남자외에 사랑했었다는 그 두 남자도 늘 마음속에 담은 환상같은 거였지 진짜 사랑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음에도 우연인지 그들이 내게 강요했던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둘 다 선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신경줄은 약하다지만 정신력은 드럽게 강한 인간인데 정말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에도 결국 나는 그 마지막 끈을 놓지는 못했다. 내가 유일하게 독할 수 있는 인간은 바로 나 자신인데 그 스스로의 독함에 질려서 술을 더 퍼마시거나 개판을 친 적도 많았다.

 

이야기했듯이 내가 자식을 낳고 싶지 않았던 건 그 내 유전자 혹은 엄마의 유전자가 계승되어 내 자식이 나만큼 고통스러울까봐였다.

 

매일매일이 나자신과의 싸움인 나란 인간이 이렇게 떠돌며 사는 건 남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남들은 떠도는 삶이 낭만적이고 멋있고 쉽게들 말하지만 보통사람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데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한 내게는 더 어렵다. 나는 농담이 아니라 내가 사는 것이 기적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래도 늘 보통이기를 갈망하는 나는 죽어도 못해를 외치지 못하고 아니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늘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해내야 한다는 그러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자신과 혹은 내 병과 싸우는 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 남자 그녀 그리고 내 가족들은  내가 이렇게 술을 마시며 헤매는 걸 그저 마음아프게 바라볼 뿐이다.

 

그래도 요 몇 년간 나름 잠도 잘 자고 많이 좋아졌었는데 작년에 시댁식구들하고 문제생기고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쩌고 하면서 또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래도 또 내가 평소 그렇듯이 마흔생일을 계기로 다시 잘 해보자고 이를 악물고 자신을 추스렸다.

 

그래 파티를 하고 여행준비를 하고 여행을 다녀오고 어쩌고 그러면 또 길이 보일거라고 기운을 냈더랬다. 그리고 잘될거라고 믿었더랬다. 인생이 늘 생각하는 것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  놈의 브라질건 이후론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 지 갈피를 못 잡겠다.

 

그래서 요즘은 내내 술을 마시고 그녀에게 친구놈에게 언니들에게 주정을 해대느라 한동안 뜬구름 잡는 글들이 올라왔던 이유기도 하다. 오라고 해도 갈 수도 없으면서 제발 한국에 그냥 오라고 하라고 마구 떼를 썼다. 역시나 쿨하게 오라고 한건 우리 큰언니 너같이 스트레스에 약한 애가 한국에서 어찌 사냐고 절대 반대라고 난리를 친 건 작은 언니 반대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존중쪽은 올케언니. 그녀는 정말 나답지 않게 그러는 모습이 두려웠다는 말까지 하더라.

 

지난 주 트레이너가 날더러 뭘 시켜도 너무 잘한다면서 도대체 리상은 못하는 게 뭐가 있냐는 거다.

이혼이요!! 가 당장 튀어나온 내 대답.

 

내 남자.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참을성있고 이해심많고 이런 황당한 마누라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물으며 한결같이 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전에도 썼듯이 내 영혼의 반쪽은 아니다. 그래 한번 이혼할려고 발버둥도 쳤던건데 이 남자는 태어나길 남을 외롭게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심지어 그 35년되었다는 기생충친구. 상처라고는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인간인데도 나랑 밥을 먹으며 울 신랑의 감정에 자신없어하더라는 것.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제서야 자기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고 고맙다고 해서 나도 놀랬다.

 

오죽하면 그 성격좋은 불독커플까지 열을 받게 했겠는가. 물론 홍콩캐런님 우리 신랑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따뜻함 선량함이 절절히 느껴진다며 자긴 형부가 너무 좋다던데 정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모든게 용서가 되는 좋은 사람이긴 하다.

 

그래서 떠돌며 산다고 그렇게 안챙기는데도 친구들이 여전히 끈을 놓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여자인 나는 힘이 들때가 많다. 이게 내가 한국에 산다면 큰 문제가 안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그래도 외롭게 떠도는 삶속에서 역시 나를 외롭게 하는 남자랑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장난도 잘 치고 누구랑 싸우는 성격도 전혀 아닌 배려가 많은 사람인데도 사람들은 다 내 남자를 어려워하고 나도 가끔은 어렵다. 아니 우리 시어머니는 내 남자가 그렇게 장난꾸러기라는 사실조차도 믿지 못하신다.

 

부부란 무엇일까에도 썼지만 아버님도 그러셨는데 그래서 어머님이 너무나 힘들어하셨다.

나는 사실 작년에 그래서 어머님께도 좀 실망을 한건데 그 아픈 아버님께도 화를 내시더라는 것. 얼마나 쌓였으면 그랬을까 싶어 짠하기도 했지만 사십년이나 살았는데 아직도 저런 하찮은 문제에 화가나실까 이해가 가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신랑이랑 그렇게 싸운거다. 일부러 싸움도 많이 걸고 서로를 이해시킬려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당신이 이럴때 어떤 느낌이 드는 지를 정말 지치지도 않고 설명해왔다.

 

작년 그 일이 생기기전까지는 이제 신랑과 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댁식구들이 싫어지니까 아무리 이 남자랑이라도 독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없어져버렸다는거다.

 

나는 태어나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 남자처럼 영혼이 편안하고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대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내가 내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아주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예전에 어느 댓글에도 썼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 자기야 그래도 나는 자살도 안하고 고흐처럼 귀도 안 짜르니 얼마나 다행이냐' 란 말에 '귀는 짜르면 아프지' 이러며 함께 웃을 수 있는 남자.

 

그래서 가능하면 이 남자에게 좋은 아내이고 싶은데 나는 점점 자신이 없다. 아니 내 삶자체에 자신이 없다. 내 이 연약하기 이를데없는 신경줄이 튼튼해질 가능성이란 전혀 없는데다 언제까지 이렇게 술로 버틸 수 있을 지 자신도 없고 말이다.

 

안그래도 머리 복잡하고 미칠 것 같은 요즘인데 친구가 다녀간 후 신랑이랑은 그 필리핀회사에 지원을 해보느니 어쩌느니 생쇼를 한 번 했고 시누이가 남친이랑 헤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 내가 독일을 세 번이나 가면서 내내 열받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그 남자문제 그리고 그 남자를 대하는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태도였는데 시누이 사생활이라 여기 구구절절히 쓰지를 못했다.

 

상황판단이 무진장 빠른 나는 시누이에게 심각하게 이야기도 하고 시어머님이랑은 싸움 비슷한 것도 하고 속이 터져 미칠 것 같았는데 그래서 나같이 남 해먹이는 거 좋아하는 여자, 채식메뉴가 머리에 가득한 여자가 그 왕재수 남친 식사도 일부러 안 챙기며 버티고 시위겸 위에 올라가지도 않고 개판을 친 거였는데 결국 내가 경고했던 것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우리아버님 딸내미에겐 차마 말 못하고 나 붙들고 엄청 속상해 하셨었는데 모르고 돌아가신게 다행이다 싶더라

 

솔직히 황당하면서도 기가막힌 건 13년을 살면서 시댁이랑은 문제가 전혀 없었다가 그 남자문제를 시작으로 다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리고 시댁식구들 독일까지 싫어지며 내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데 그 문제는 이렇게 결론이 나버리고 또 내가 위로를 해야한다는 이 상황. 도대체 내가 받은 열이나 피해는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하는 건지. 그런데 또 날더러 위로를 해달라니 미치고 팔짝뛰겠다.

 

그 남자가 나타난 이후부터 하는 짓이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였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가 불행해진다는데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 양육비야 그 남자가 댈테고 경제적인 문제야 우리도 도울 수 있지만 지금도 한 까다로움 해서 엄마를 이겨먹는 조카놈을 시누이가 어찌 혼자 키울지.

 

시어머니에게 그러게 내가 뭐랬냐고 소리치고 싶은 걸 삼키고 그저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앞 일만 생각하자고 잘 될거라고 위로했다만 정말 뭐가 어찌 잘될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실제 상황은 더 암담하다.

 

그녀는 '그러게 내가 뭐랬냐'는 그런 소리를 안하는 면이 늘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던데 나는 거꾸로 그런 소리가 해봤자 소용없는 말이라는 걸 미리 알고 제어하는 내 이 놈의 이성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럼 좀 속이라도 풀릴텐데 나는 그 소리를 못하고 사니 병이 된다.

 

그래 나도 내가 좀 다르게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니 미치겠다.

 

안그래도 요즘 건강도 안좋으시고 우울증도 있으셔서 불안정한 우리 시어머니 딸내미 걱정 손자걱정에 그 넓고 휑한 집에 혼자 앉아계실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힌다.  

 

의외로 내 남자는 쿨하게 반응하는데 나는 하도 고통스런 인생을 살다보니 남의 고통에 민감하고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것도 괴롭다.

 

그 똑똑한 시누이가 도대체 남자문제에선 왜그렇게 바보같고 한심한지..

내가 보기엔 하나도 행복할 상황이 아닌데 혼자 행복에 겨워 난리이길래 나는 정말 심각하게 우리 시누이가 어디 모자라는 인간이 아닌가 생각했더랬다.

그러니 이 바보에겐 분명히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을거다.

 

일이 터지기 전에야 시누이 앉혀놓고 조목조목 따지며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었지만 이젠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거기다 꼴도 보기 싫었던 그 남친도 막상 이렇게 되니 나쁜 놈이라기보다 황당해만 보이던 그간의 행동들이 이해도 간다. 꼭 이렇게 이해심이 발휘되지 않아도 될 상황에 내 이해심은 발휘되니 이것도 미치겠다.

 

물론 오십이 넘어 얻은 아직 세돌도 안된 그 귀여운 아들내미를 버릴 생각을 한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가지만 말이다. 난 정말 그 아들내미때문이라도 이 관계가 이리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오늘 시어머니 생신인데 전화도 안 받으신다. 너무 괴로우셔서 누가 축하인사라도 하러 올까봐 어디로 피해가신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일들이 연타로 겹치다보니 너무 힘들다. 이렇게 힘들었던 게 처음은 아니지만 힘들다는 것이 꼭 면역이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

 

나는 요즘 또 다시 길을 잃은 느낌이다.

 

 

 

 

2007.07.14.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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