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요시다 슈이치-동경만경

史野 2007. 5. 3. 17:31

파닥거리며 살아나는 풍경

 

2005-05-30 17:09

 

요즘은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 가끔 읽고 있는 책들에 지치거나 짜증날때 읽으려고 일본소설 몇 개를 구입해두었다.

 

동경만경

이 소설은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순전히 제목때문에 구입했고 그냥 그렇고 그런 소설일거라고 생각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던 어제 밤 꺼내 읽기시작하다 아 그저 그런 소설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에 오늘 일어나자마자 열일을 제치고 읽어 제꼈다.

 

이 소설이 내 마음에 들기시작한건 료스케와 료코가 만나기로 한 하네다 공항과 모노레일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만나는 남자와 공항으로 가는 모노레일을 타고 싶어하는 여자라니..

올해 처음으로 두 번이나 하네다 공항을 통해 한국을 다녀오며 나도 그 모노레일을  타봤다.

 

모노레일 밖으로 펼쳐졌던 료스케가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 그 창고들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제 그 곳에 이야기가 보태지고, 싱싱한 주체가 되어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거기다 그녀가 거짓으로 일을 한다고 했던 모노레일이 시작되는 하마마쓰쵸역은 내가 어느 날 걸어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 날은 끝도없이 걸어 료스케가 일하는 시나가와는 아니지만 오다이바가 보이는 바닷가에 가서 나도 하염없이 레인보우브릿지를, 오다이바를 바라보았더랬다.

 

료코가 요시노와 백조의 호수를 본 분카무라에서 난 아그네스 발챠의 독창회를 보았고 이름은

나와있지 않아도 아마 그녀가 일식을 본 긴자의 극장은 내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보았던 그 극장일것이다.

 

나는 오다이바가 멀리 보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가 린카이선이 생기기전에 료스케를 만나러가기위해 돌고도는 유리카모메선을 JR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는 신바시에선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

 

그렇게 내가 날마다 바라보고 혹은 스쳐지났던 곳들이 갑자기 무대가 되어 생생하고도 아픈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는 이 소설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았겠는가.

 

현학적인 얘기도 없고 메일사이트같은 곳에서 만나 섹스나 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러나 어느 소설보다 더 절절하게 인간에게 내재된 타자와의 소통의 욕망, 상처받음을 두려워해 미리 마음의 벽지를 바르고 또 바르는 인간의 모습을 공감가게 표현한다.

 

자기점검을 하는 고통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는 마지막도 감동적이지만 처음 만난 그녀생각에 고민하던 료스케가 핸디를 들었다놨다로 밤을 보내다 못해 오스기방을 몇 밤이나 들락거린 일. 결국 마음을 털어놓고 그녀를 찾아 나서는 장면도 가슴이 시렸다.

 

사랑은 나도 모르게 그 어느순간 조그만 불씨를 키워놓는 그런 감정아니겠는가.

물론 인생에서 그 불씨가 한 두번 지펴지는 건 아니지만 지펴지도록 강렬한 바람을  누구라도 최소한 한 두번은 맞딱드리게된다 

 

이 소설은 내게 그저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에 불과했던 동경이 사람사는 곳이라는 새삼스레 절절한 자각을 하게했다.

 

도쿄는 오늘 비가 내린다.

오다이바는 안개에 가려 희미한 실루엣만이 그 존재를 알리고 있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당장 나가 유리카모메선을타고 그녀가 앉아있던 모래사장을 거닐고싶다.

소설속의 묘사대로 내게도 오다이바는 별 거 없는 곳이었는데 왠지 이젠 의미있는 곳이될 것 같다면 너무 과장된 감정이입인가.

조만간 루트를 정해 소설속의 풍경들을 직접 찾아나설 생각이다.

 

JR시나가와역 고난출구로 빠져나가 걷다보면 또 다른 료스케가 이젠 미오가 되어버린 또 다른 료쿄와 산책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행운이 주어질지도 모르니까.

 

내게 감정적으로 다가온 소설..전경린의 내게 하루뿐인 아주 특별한 날 이후 아주 오랫만이다.

난 별다섯개를 주었지만 허무해서 섹스를 하거나, 료스케처럼 여기 물건을 저기로 옮기고 또 옮기는데서 안정을 찾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못한다면 이 소설에 그리 공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데 구해봐야겠다.

아니 먼저 내가 찾아다닌 후 보는게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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