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영화같은 내 인생이란 글을 올렸더니 모님께서 삼류영화같은 스토리라 하시니 이번엔 알아서 긴다..ㅎㅎ
자유부인 오일 째인데 어제 그렇게 오늘 안 나가면 사람도 아니라고 했건만 오늘은 비가 내린 것도 아니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었건만 또 주저앉았다
떠날려고 오늘 아침 벗어서 빨래통에 넣었던 겨울 잠옷까지 다시 꺼내입었다..ㅎㅎ
여행간다고 단호하게 트레이닝도 다 취소했는데 창피해서 운동도 못갔다..^^;;
그러니 또 독수공방의 불쌍한 아줌마 여기다 수다나 떨어야겠다.
어제와 다르게 버지니아텍 사태는 오늘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내내 티비에서 그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분석을 하는 걸 보니 무지 착잡하고 사실은 어제보다 더 끔찍하고 머리는 더 복잡하다.
사실 조승희란 인물이나 나나 어려서 외롭고 힘들었다는 점은 닮았다. 그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거부당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웠고 나는 나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아닌 내가 왜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스스로의 분석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차이일 뿐. (물론 이것도 심하면 병이다만..)
내가 유전자 어쩌고 강조를 하지만 살인자의 유전자까지 타고나는 건 아닐거다.
어쨌든 그가 여학생들을 스토킹해서 조사까지 받았다는 이야기에 생각나는 어떤 남자애, 슬픈 이야기가 있다. (그래 나 맨날 슬픈 불쌍한 인생이다..-_-;;)
이야기했듯이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랑 갈등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겉으로는 최소한 공부 잘하고 친구 많고 성격 활발하고 교회활동도 열심히 하는 아주 바람직한(?) 여학생이었다.
물론 내가 쓰러졌던 건 고2때고 그 일이 생긴 건 고 2말부터니까 꼭 그 남학생탓은 아니다만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
그 애는 굉장히 경건한 집안에서 자란 교회와 학교밖에 모르던 아주 성실하고 수줍은 아이였기에 우리랑 잘 안 놀았다. 왜 맨날 성경퀴즈대회같은 거 일등하고 장난같은 건 절대 안치는 애 말이다. 인사를 해도 그냥 짧게만 받고 가버리곤 했다.
지금처럼은 아니어도 우리때 입시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던 관계로 공부를 잘 했다는 그 애도 고통을 받았나본데 그 애는 외톨이(!)였기에 우린 잘 몰랐다. 그런데 이 남자애가 그만 미쳐버렸다. (미치고 팔짝 뛰고의 의미가 아닌 진짜로..ㅜㅜ)
우리 주변사람이 그냥 미쳤어도 놀라운 일일텐데 그 분출이 나를 향해서였다는 것.
나는 그 때 수학잘하던 친구랑(그게 내 그 옛사랑이다..ㅎㅎ) 내 영어랑 교환해서 서로 가르치는 스터디도 조직했고 영어 잘하는 한 남학생하고는 영어실력향상을 위해 영어편지를 교환했으며 성가대 총무였던 아이랑은 만두를 먹으러 다니기도 하며 다 친했는데 그런 내가 좋았었나보다.
그걸 전도사님께 상담을 했다는 데 그애 상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신 전도사님께서 사야는 인기가 아주 많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네가 아주 좋은 대학을 가면 네 여자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충고랍시고 하셨고..-_- 몇 주 뒤 공부가 아주 잘된다고 하길래 그렇게 발병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하셨다나. (물론 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그 애는 어쨌든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예배시간에 벌떡 일어나 혼자 말을 한다던지 아님 나랑 결혼을 하면 안되겠냐고 여러 사람앞에서 어른들께 묻는 다던지. 우리 집에 나타나서 우리엄마에게 횡설수설을 한다던지.
그 애의 병이 내 탓은 아니라고 그 아버님과 담임목사님까지 폐를 끼쳐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그건 센세이션한 사건인지라 교회가 들썩거린데다 도대체 어떤X 이냔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아마 내가 누군지 궁금해서 봤다가 저 얼굴에 그랬단 말인가 실망했을 수도 있다만..^^;;
사정을 다 아는 친구들은 다 나를 위로하고 네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안그래도 두통이 심해서 잠도 잘 못자고 학교를 밥먹듯이 빠지던 내게 그게 어찌 간단한 문제였겠는가.
왜 그게 하필 나인거냐고???
그 애는 결국 고3때 휴학을 하고 병원에 입원을 했고 우리는 우리대로 바쁜 고 3을 보내며 그 애를 잊어갔다.
학교를 가끔씩 빠지긴 했어도 어쨌든 나도 무사히 고 3을 마쳤고 대학생이 되었는데 그 애는 교회는 안 나오지만 병도 나아서 복학을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문제는 날이면 날마다 그것도 몇 년간 우리집을 내 주변을 끊임없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 동네는 당시 지하철역이 굴같은 곳으로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했는데 갑자기 그 애가 뒤에서 나타나서는 사야 안녕? 그러니 간 떨어질 정도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뭐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편지를 편지함에 넣어놓거나 눈에 안 띄게 돌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서는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인사만 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
나는 그런 그애가 싫고 무서웠지만 어쨌든 내가 남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같은 것도 있어 괴로왔고 당시야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나는 내가 진짜 마녀일 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_-
그 애가 언제부터 내 주변에서 사라져버렸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나는 酒님을 모시느라 主님과는 차츰 멀어졌지만 나이도 어렸는데 내가 인생이 참 그지 같다고 생각하게 하는 데 내 엄마만큼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총기소지가 허용되었다면 나는 그때 총맞았을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날.
정말 황당하게도 오늘 비디오속의 모습이랑 그 애랑 참 많이 닮았는데 그건 생긴 것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웃지 않은 인간의 얼굴이다. 심지어 자폐증환자처럼 말을 웅얼거리는 것도 닮았다.
그 때는 내가 억울한 것만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보다보니 그 애는 남들과 편하게 말을 못하는 성격으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늘 즐거워 보이는 우리랑 끼어서 얼마나 웃고 싶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런 일이 생기면 모두 안타까와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서는 그게 남자친구건 여자친구건 끌리지 않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다는 거다.
나는 그래도 인사는 늘 반갑게 했더랬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매력적이어서라기보다 그게 그 애가 여자에게 받은 유일한 친절이었기에 나를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ㅜㅜ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힘든 영혼들이 많다는 생각이지만 그건 대부분 가족의 이해부족 사랑부족이 원인인거 같아 생각보다 해결을 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사랑과 이해를 받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명문대는 무슨 소용이고 돈은 또 무슨 소용이고 명예는 무슨 소용인가.
결국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건 인간과의 소통, 이해받는 다는 느낌일거다.
각설하고 이렇게 나처럼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애가 (내가 가장 짜증나는 인간들이 날더러 넌 온실속에서 자라서 세상을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이다. 아무렴 이럴 땐 '것'들이라고 해도 된다..^^;;) 그래도 자살 안하고 열심히 사는 건 정말 상줘야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신다. 내게 주는 상이다..ㅎㅎㅎ
2007.04.19.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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