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a Self-Portrait - A Triptych
1979
나는 미술을 믿지 않는다
아니 보아하니 미술에 목매는 타입인데 왠 미술을 믿지 않는다는 뚱딴지같은 선언이냐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나는 미술을 믿지 않는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유명한 미술 혹은 미술평론을 믿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해서 좋고 아니고를 표현하기보단 유명미술에 세뇌당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유명하다니까 그리고 자꾸 보니까 좋아진다고 할까.
실제로 우리가 익숙한 것들을 정상으로 낯선 것들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 뭐 그렇다고 첫 눈에 반하는 것같은 드라마틱한 일들이 미술감상에서 안 일어난다는 이야긴 아니다만..^^
미술품의 진위여부도 그렇다. 내가 그렇게 기를 쓰고간 카라밧지오 전시회는 카라밧지오의 그림과 모사품들을 비교하는 전시회였는데 아무리 전문가들이 감정을 해놓은 거라고 해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작품들이 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수긍 안한다..ㅎㅎ
그 유명한 반고흐작품이라도 우리가 모두 감동할 수 있는 건 아니듯이 반고흐를 모사한 작품에서 더한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와 가짜를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굳이 반고흐작품을 가려서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경매되는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여기서 우리는 아니 나는 길을 잃고 헤맨다.
나를 길잃고 헤매게 하는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28.10.1909 in Dublin- 28 04 1992,in Madrid)
이야기했듯이 미술관을 잘못 찾아갔다가 우연히 들리게 된 전시회라 운이 좋았지만 설사 미리 알았다고 해도 이번처럼 애를 써가면서 뒤셀도르프까지 찾아가진 않았을 화가.
그가 내게 가장 어필하는 건 그의 고향이 더블린이라는 것..^^
Francis Bacon, Figure in Movement, 1985, Oil on Canvas
어쨌거나 전시회의 가장 큰 매력이야 작품을 원본 크기로 또 원 색감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화집을 보거나 모니터로 그림을 감상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그 그림을 감상하는 건 아니고 그 그림에 의해 파생된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니까 베이컨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 베이컨의 작품을 찍은 어느 사진작가의 사진을 감상하는 거다. 여기서 난 또 길을 잃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나는 베이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같이 아무나 좋아하는 사람에겐 의외적 현상인데 그건 그의 그림들이 내겐 불편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자꾸 보라고 드러내놓고 강요하는 듯한 인상. 여기까지가 내가 그의 작품들을 몇 개 보고 또 화집에서 본 인상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전시회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작품들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나니 그가 좋아지지까진 않았어도 그가 꽤나 괜찮은 화가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색감을 쓰는 능력이며 계산된 화면배치등 화집에서 보았을때의 불편함을 넘어서는 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있더라는 것.
내가 실제로 많이 보지 않는 그림들에대해 즐겨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여기있다
어려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고 엄마속옷을 입어보다 아버지에게 들켜 집에서 쫓겨났다는 이 화가는 어려서부터 천식을 앓은데다 잦은 이사로 학교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단다. 물론 미술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다. 도박에도 심취했었고 알콜중독에도 걸렸었고 파트너가 둘이나 약이나 알콜로 먼저 죽었다는 것. 어찌보면 그의 그림들을 보고 우리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들뢰즈가 베이컨이 감각을 그렸다 어쨌다하는 이야기는 내가 이해도 못하지만 여기서 생략한다. 그림이란 사진이 아닌이상 어차피 화가가 느끼는 걸 그리게 되어있다. 하긴 사진도 우리는 그대로가 아니라 뭔가 우리만의 것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가. 대상을 재현하는 문제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무엇을 찍건 무엇을 그리건 우리는 어차피 뭔가를 재현하는 거다.
이번 전시회가 좋았던 건 그의 작업실 사진이며 그가 사용한 사진등을 볼 수 있었다는 건데(그는 사진을 많이 이용했기로도 유명하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나타나는 변형된 신체(찌그러지거나 단축된)가 전신사진을 약간 접은 형태에서 나왔더라는 것.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a Crucifixion, 1962, Oil on canvas, Each panel 197.2 x 147 cm, Staatsgalerie Moderner Kunst, Munich
그는 자주 삼단 제단화 형식의 그림을 그렸는데 벨라스케스그림을 패러디한 교황 이노센스10세 시리즈를 봐도 그렇고 종교를 철저히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 이건 혹 그가 자란 아일랜드의 그 미신적이기까지 한 종교분위기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나로선 베이컨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으니 우연히 간 전시회치곤 굉장한 소득이다. 그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엄청 두꺼운 카탈로그를 사왔으니 바쁜 일 좀 지나가면 시작해봐야겠다.
Lucian Freud,Francis Bacon 1952,Oil on Metal,7.8 x 12.7 cm ,Tate Gallery
(Stolen while on loan in Berlin in 1988 and never seen again)
어쨌든 이미지를 찾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루시안 프로이트가 그린 이 베이컨 초상화가 위에 나오듯이 도둑맞았다는 것.
2002년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릴 프로이트전시회를 위해 이 그림 찾기에 나섰는데 저걸 직접 디자인한 것도 프로이트란다. 당시에도 대충 15억에서 20억정도 예상한다는 그림을 달랑 일억오천(대충)의 보상금을 내건 것도 그렇고 우리가 필요한 건 그림이지 범인이 아니기에 절대 범죄자로 몰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도 그렇고 순진하단 생각에 웃음이 난다.
여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면 진작에 어느 개인소장가의 손으로 들어갔을텐데 누가 저 가격에 순순히 내놓겠냐고..ㅎㅎ
2006.12.31. Tokyo에서 사야
또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이 한 해 '사야의 낯선 사랑방'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말을 걸어주신 분들이나 그저 발걸음만 해주신 분들이나)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제가 책을 읽고 책읽는 사이트에서 열심히 노느라 이 곳에 많은 신경을 못 썼는데 내년엔 뭔가 달라지길 바래봅니다.
지금으로선 내년 계획이라는게 전혀 없으니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 곳에서 편안한 시간이셨길 그리고 내년에도 편한 사랑방이 되어 좋은 분들을 뵐 수 있으면 좋겠단 소망을 가져봅니다.
오늘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고 새해라는, 그저 면죄부처럼 주어지는 선물맞이도 잘하시길 빌구요..^^
저희부부는 음악회에서 새해를 맞고 싶었으나 표를 못 구한 관계로 그저 오붓하게 보낼 생각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십시오
그림을 가져온 곳입니다. 방문하시면 더 많은 베이컨 그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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