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에곤쉴레를 위한 음악'이란 CD를 구입했다.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그를 위한 춤공연에 쓰였던 음악이라나. 모짜르트의 일생이란 현대무용은 본 적이 있는데 쉴레는 어떤 식으로 표현이 되었는 지 궁금하다.
곡이 느린 걸로 봐서는 발레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아무리 상상을 해볼려고 해도 어떤 식의 안무였는 지 모르겠다.
춤 공연도 야했을까? ㅎㅎ
28의 나이에 스페인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이 특별한 화가 에곤 쉴레.
그는 참 많은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의 그림들이 불편하다.
그의 드로잉들이 참 훌륭함에도 그가 그려내는 우리의 내밀한 행위에 대한 적나라함은 내 스타일은 아니다.
예전에 성적 욕망이 들끓던 도시 이야기를 하며 썼지만 세기말의 빈은 성도덕적으로 갈때까지 간 시대였고 그 시대에 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생각같은 건 내게 애초에 없다.
나도 섹스를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만큼이나 솔직하고 아름다운 욕망이란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야할 것들이 만천하에 드러난 듯한 천박함을 느낀다.
물론 시대는 변한다. 화장실의 역사란 책에 보면 예전에 심지어 단체배변행위도 했다고 하고 실제로 중국인들중 아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내가 직접 목격을 했으니 이건 또 우리 시대가 혹은 내가 가진 편견의 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만.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이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모잘라 그는 우리 눈을 똑바로 보며 묻는다
뭘보는데? 혹은 너는 뭐 달라? 혹은 그래 잘 봐두라고
보는 사람의 심리나 가치관에 따라 우리는 충분히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거다.
요 몇 일 누군가의 개인적인 사진이 유출되었다고 난리다. 굳이 비공개로 해둔 걸 해킹인지 해서 유출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이 저능아지만 더 놀라운 건 그걸 아무 거리낌없이 돌려보는 사람들이다.
나는 가끔 우리의 왜곡된 성윤리 도덕적 잣대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황당한 발상이긴 하지만 스와핑같은 건 성인남녀들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행위니 사회적으로 그리 떠들 가치가 없는거다. 그게 무슨 사회적 해악을 끼친단 말인가? 그냥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라 놔두면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난리를 치겠지만 성매매도 그렇다. 미성년자나 강요된 게 아닌이상 성을 팔 생각이 있는 사람도 살 생각이 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자존심도 팔고 인격도 팔고 양심도 파는 세상에서 성은 팔지 말란 법이라도 있다냐? 여자들이 섹시화보를 찍어 모바일 서비스를 하는 것도 결국은 성과 연관된 상품이란 데에선 광의적으로 성매매다. 육체를 상품화하는 것에 커다란 차이가 있을 까.
육체 상품화에 성공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마를린 먼로가 아닌가 한다. 이젠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여자.
실제로 내가 살던 뒤셀도르프 역 옆에 있는 성매매소다. 물론 나처럼 성을 팔아야할 위치가 아닌 여자는 여름에 창가에 걸터앉아 있는 그녀들을 바라보는 맘이 복잡하다만 성을 판다는 게 양심을 파는 것보다 더 창피하고 비참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월드컵영향인지 지난 번에는 보니까 우리는 강요로 성매매를 하는 게 아니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더라..^^;;
그리고 이 주제에 조금은 멀지만 남자들이 성욕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도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다. 여자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역사적으로도 성욕을 발산하거나 충분히 음미할만큼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임신에 대한 부담등 외적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나 성희롱을 해도 되고 남자가 한 번 바람을 피운거 가지고 무슨 난리인가는 성의 권력에서만은 우위를 점하려는 남자들이 만들어낸 지배 이데올로기다.(위에 언급했듯이 나는 페미가 아니다)
각설하고 성매매보다 혹은 스와핑보다 더 나쁘고 악랄한 건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모의원처럼 식당주인인줄 알았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지위나 돈을 이용해서 남을 유린하는 행위다.
정 남편이나 마누라로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남의 마누라나 남편이랑 연애를 해라.(친구마누라나 친구 남편은 말고) 중요한 건 상호간의 합의다. 정 누군가의 정사장면이 보고 싶다면 포르노를 보면 되지 않겠냐. 나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 본 적이 없다만 포르노필름은 최소한 누군가 볼 걸 예상하고 만들어진 거다.
강간의 사전적 정의가 폭행 협박 그 밖의 불법수단으로 부녀의 몸을 뺏는 일이란다. 그렇다면 불법으로 유출된 개인비디오나 사진을 보는 것은 정신적 강간에 해당하는 일이 아닐까?
내가 보고 싶지 않는 건 제발 내게 보여주지마. 그리고 남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 제발 보지마
아무리 관음증이 인간의 커다란 욕망중에 하나라도 그건 조절되지 못 할 정도의 것들은 아니니까.
이런 의식이 없는 한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한 우리사회의 성추행이 근절되긴 어렵다.
쉴레도 무슨 타고난 성도착증 환자가 아니라 세기말 퇴폐왕국이 만든 시대적 산물이다.
그렇다고 시대가 이런데 날더러 어쩌라고? 이렇게 무책임할 수는 없는 게 또 우리 배운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혹 당신이 내게 나는 못배웠거든? 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아니 내가 한 모든 말은 잊어도 좋다.
인간의 존엄성은 누군가 지켜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지키는 거다.
인간답게 산다는 건 할 수 있는 한 타인에게 인간의 예의를 지킨다는 것.
그러니까 인간답게 산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2007.05.02. Tokyo에서..사야
이 글은 사실 그림을 올렸다 뿐이지 그림이야기는 아니다만 그림이 많이 들어간 관계로 그냥 오랫만이기도 하고 물감 묻은 이야기로 올린다.
사실은 글을 다 썼다가 날려서는 기억을 찾아가며 쓰는 드문 글.
그림들은 내가 하도 오래전에 저장해 놓은 것들이라 어디가 출처인지 모르겠다. 제목과 연대는 최소한 찾아 올려야 예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생략하는 걸로 하자.
언제 쉴레에 대한 글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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