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비온다
이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시간
또 새벽
사야가 가장 못하는 지짐이 하나 부쳐놓고 티비도 안 보고 음악도 안 듣고 삼순이를 생각하고 있다
삼순이는 원숭이다
얼마전 희귀원숭이 발견어쩌고하는 머리글 기사를 본적이 있지만 관심있는 기사가 아니므로 안 읽었다
그러다 어찌 그 삼순이란 원숭이의 사진과 사연을 보게되었는 데 울컥하며 눈물이나고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심장이 아프더라
11년간을 사람손에 키워졌던 원숭이가 무슨 사연인지 내쳐져 집에서 쓰던 이불과 거울만 들고 갑자기 동물원의 원숭이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웅크린 사진들을 보고있는데 그 삼순이란 아이의 절망과 공포가 어찌나 고스란히 느껴지던 지 순간 괜찮다고 겁내지 말라고 품에 꼬옥 안아주고싶은 열망에 시달렸다.
그래 그냥 사진만 봤더라면 그냥 원숭이인가보다 아무 의미없이 지나쳤을 사진이었는 데 사연을 알고보니 그냥 사야같은 공포에 떠는 한 생명체로만 다가오더라
어쨌든 결국은 지금보다는 환경이 나은 서울대공원인가로 이송된다던데 그게 삼순이에게 뭐 대단한 해결책이겠는가
오년을 실내에서 산 사야네 개새끼들도 이젠 마당에서 산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데 11년간 인간이랑 살았던 원숭이라니.
장터출신에 집안에 들어와보긴 커녕 애기때부터 일미터줄에 묶여 주인손길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울 바리도 그렇게 미친듯이 짖었더랬다
겨우이십미터도 안되는 사야네 마당으로 옮겨와서야 그 막무가내 울부짖음을 멈췄더랬다
앞집을 싫어했던 옆집아줌마는 개는 주인을 닮는거라고 어찌 이리 얌전해졌냐며 호들갑을 떠셨지만 그건 바리가 더이상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기때문이다.
공포..
생명체를 이해하는 데 이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사랑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도 걸리고 사랑은 의심이라도 해볼 수 있지만 공포는 얄짤없잖냐
일초만에 사랑을 느끼게 할 수는 없지만 공포는 가능하다
그래서 삼순이를 생각한다
삼순이가 느끼는 공포와 절망이 사야가 느끼는 것과 너무 닮아있어서..
그래도 사람은 말로 표현이라도 하지..
공포가 없으면 종교도 없을테고 권력에의 의지같은 것도 없을테고 아니 욕망자체가 없으려나..
그래 사야가 그리 고민하는 인간다움이란 건 그 공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이 땅에서건 남의 땅에서건 일어나는 이 모든 사건들도 결국은 가장 인간적이란 결론?
파리대왕이였나
오래전에 그 소설을 읽고는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며칠 잠을 못잤다
그때는 그 잔인함이 사야에게도 내재된 그 인간다움이란 걸 몰랐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는 파스빈더의 영화도 있었는 데..
배우들 얼굴도 몇 대사들도 기억나는 데 왜 그 영화가 그 제목이었는 지가 기억안나네.
생뚱맞지만 독일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그 고양이도 주인과 십년을 넘게 침실에서 살았다는 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 침실출입을 금지했더니 한겨울 비오는 날 현관앞에 드러누워 밤새 꼬박 비를 맞고는 발견했을때는 거의 실신상태였단다.
설마 복수할려고 그랬겠냐 아무도없는 거실이 공포스러웠겠지.
그 고양인 사야가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아가옆에서 조용히 누워있었으니 해피엔딩이다만 삼순이의 삶도 그럴수 있을까
이런 젠장 한심한 사야
씽이와 아끼가 사라진후 바리는 물론 막무가내 호박이까지 눈치보게하는 주제에 뭔 남의 다리를 긁고 있노
우짜든둥 테러후 국가를 부르며 경기장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엔 공동체의식이라는 것도 있지
그 공동체의식이란 건 그런데 본능일 때도 주입된 신념때문 일 때도 있지
여전히 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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