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는 좀 심하리만큼 전화를 잘 안받는다. 지인전화는 물론이고 낯선번호는 절대 받는 법이 없다.
지난 월요일 저녁때 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울리는데 당근 안 받았다.
근데 오늘 그 번호로 또 전화가 오는거다. 번호가 좀 특이하기도 하고 고민을 하다가 받았더니 어느 남자분이다.
사야가 뭔가를 주문했는데 잘받았냐시더니 머뭇머뭇 여주가 고향이냐고 물으신다. 태어난 건 맞으니까 맞다고 하는데 다짜고짜 몇년생 누구를 모르냔다. 아시다시피 어찌 알겠냐. 모른다고 했더니...
세상에나 이 분 첫사랑을 찾으시는 거더라. 고향도 같은데다 이름도 비슷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셨다나
지난 번에 전화도 안받고 고민을 엄청 하셨는데 그래도 물어봐야 후회가 안될 것 같으셨다면서..
보아하니 젊은 사람이 받았으면 그냥 물건 잘받았냐고만 하고 끊으실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사야 목소리에서 연륜이 느껴지니 용기를 내셨나 보더라.
그러니 어찌 끊겠냐고.그렇게 시작된 통화를 그분 자식들얘기며 일본어에 길고양이 얘기까지 거의 오십분을 했다..ㅎㅎ
하긴 사야는 처음 전화한 사람이랑 네 시간 통화한 적도 있다. 전화를 잘 안받기는해도 남의 얘기는 잘 받아주는 지라 아는 동생놈 하나는 아예 전문적으로 나가라더라...^^;;
남자들은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인가보다.
이젠 사십년 가까이나 되는데 꼭한번 만나고 싶으시다네.
어쩜 실망할 수도 있으니 그냥 그리워만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않겠냐니 저나 나나 늙기밖에 더했겠냐고 실망할게 뭐 있겠냐신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던데 남의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쓸 수는 없지만 어찌나 로맨틱하시던 지 그리 간절하시면 꼭 만나게 될 거라고 마구 용기를 드렸다.
그녀를 추억하고 꼭 만나보고싶어하는 그 마음이 뭐랄까 참 예뻤다고 해야하나.
사야가 잘 받아주니 이 분 이런 데이트(사야랑 통화하는 것)를 어디가서 하겠냐며 무슨 선물받은 기분이라며 신나셨다. 하하하
그 오랜세월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떤걸까. 아무리 다복한 가정이라고 해도 마음속에 그런 그리움하나 품고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분과 통화를 하고났더니 사야도 마구 로맨틱해진다. 거긴 마침 비도 온다던데 안타깝게도 여긴 안오네.
사야도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 담겨있을 수도 있겠지? 그 시절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야를 짝사랑했던 후보 몇 명이 떠오른다.
짝사랑이라 더 안 잊혀지지않을까 아니 짝사랑이라 안그리울래나. ㅎㅎ
그때 사야는 정말 왜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건지..^^;; 누가 날 그리워하려나 앉아 생각하다보니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이 끝이없네.
슬프게도 사야는 지난 번에 썼듯이 그렇게 꼭 만나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없다. 뭐랄까 마음이 막 가난해진 느낌이다.
작년에 밴드를 통해 연락이 된 초등학교친구놈이 밥한번 먹자는데 꽤 친했던 놈인데도 사실 별로 안 궁금하다. 며칠전에도 누군가 잘지내냐고 연락 좀 하고 살자며 톡을 했던데 사야를 설레게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건만 안 궁금해서 답장도 안했다.
친구하나는 이 나이에 상한가를 치고있고 누구는 지금 한남자가 좋아 미쳐죽던데 사야도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으려나.
아니 남녀관계야 젊어서나 늙어서나 짝짓기가 기본이니 남자랑 자고싶다는 마음이나 다시 생기려나.
육십이 넘으신 분의 애뜻한 옛사랑이야기를 듣고나니 그래도 로맨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삶을 그래도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드네
이 냉랭해진 가슴에 다시 불씨를 피워올릴 수 있는 걸까 그게 꼭 새로 시작하는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가슴 저려하는 시간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걸까.
우짜든둥 또 전화해도 되냐시길래 그러시라고 했다..ㅎㅎ
어디서 뭘하는 지 알지 않냐며 볼거 많으니 놀러와서 꼭 한번 들리라고도 하시더라.
근데 이러다 사야가 그 첫사랑 찾아 여주바닥을 헤매다니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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