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이주간의 사투..^^;;

史野 2012. 11. 19. 16:20

마흔 다섯 사야인생에서 처음으로 혼자임을 견뎌내고 있다.

오년 전 한국에 처음 돌아왔을 때도 혼자였다만 그땐 도시 한복판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이 곳은 집 네 채에 단 네 사람이 사는 곳, 이천오백원짜리 담배를 사려면 왕복 만원의 택시비를 지불해야하는 외딴 곳..

지 지난 주 목요일엔 산행을 하기도 했고 지난 주 목요일엔 병원간 길에 고기공놈만나 술한잔 하기도 했다만 사람하나 구경하기도 쉽지않는 이 곳에서 이 주를 버텼다.

 

사실 사야에게 혼자인 건 너무나 익숙하다. 떠도는 그 오랜시간동안 거의 혼자였으니까..

그래도 아침에 출근을 해 밤이면 들어오던 사람이 있던 때랑 지금은 당연히 많이 다르다. 거기다 사야는 사년 가까이 누군가와 24시간을 붙어있었으니..

견뎌내는 게 어떤 방식이건 이 시간을 버텨내는 게 너무 대견해 스스로에게 감동중이다. 지난 목요일 정신과샘에게도 멀쩡히 잘 살아왔다고 어찌나 잘난척을 해댔던 지..ㅎㅎ

 

 

 

긴 밤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다. 가능하면 열두 시 전에 자려고 무진장 노력중이다.

요즘  얼음이 언 건 몇 번 확인했지만 이리 서리가 가득 내려앉은 걸 본 건 처음이다. 길 위쪽으론 햇살로 따스한 봄(?)인데 그늘엔 겨울이더라.

 

 

 

화단경계엔 다른 병을 꽂았더니 걸린 햇살의 느낌도 너무 달라 좋은 아침.

 

 

 

 

나뭇가지를 넘어 이젠 데크까지 진출하신 친구분이시다. 물론 혼자 짝사랑이고 작은 소리에도 포르르 날아가버리시지만 말이다.

 

 

 

정체불명의 손님이 나타났다.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찌나 깜짝 놀랐던 지, 생긴걸로 봐선 두더지인 듯 한데 어찌 여기까지 왔을까 반갑고 안쓰러운 마음. 아마 뒷쪽에 골프장 공사중이라 쫓겨내려온 건 아닌가 싶었다.

 

 

 

 

윗 오른 쪽 사진에 보이듯 야외식탁을 색색으로 저리 칠했다. 굉장히 좋은 제품인데 관리를 너무 못해 사실은 이제 거의 못 앉을 상황이다. 근데 왜저렇게 정성스레 칠했냐면 저게 잘 분해가 안되더라는 거다.

분해도 안되는 걸 그냥 폐품처럼 놔두느니 장식품(?) 개념으로라도 일단은 이 겨울을 나보자 하는 마음. 아슬아슬하다만 의자에 앉아 골반춤만 추지 않는다면 그래도 앉아 차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상태다..^^

 

 

 

 

창고도 대충 칠했다. 울타리색에서 라이트옐로우를 약간만 섞었다. 사다리에 올라가 뭘 해본 건 처음이라 하도 겁나 윗쪽은 무슨 빈티지 스타일이 되었다만 그래도 뿌듯하더라.

이 곳에서 혼자 버티려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야가 사다리도 타야하고 못질 톱질도 해야하고 땅도 파야하고 참 극복해 내야할 것도 많다.

 

저 살색은 기름통이다. 레드와인색에 역시 라이트옐로우를 좀 섞었다.

아직 정리가 덜되어 저 뒷쪽 그러니까 부엌문에서 나가는 쪽이 저 모양이다만 저 것도 백만 번 치운 거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ㅎㅎ 사실 저 공간도 작은 공간이 아니라 좀 활용하려는데 잘 될 지 모르겠다.

 

 

 

참고로 기름통이 원래는 우리 옆집처럼 저런 파란 색이었다. 색도 색이지만 부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어차피 페인트칠을 해줬어야 할 상황. 이런 저런 고민끝에 그냥 가지고 있는 걸로 해결했다.

 

 

 

개당 만원씩 주고 산 네개의 화분, 사만원이상의 행복을 누렸던  국화화분들은 저렇게 자리 잡았다.

이 영하의 날씨에도 꽃이 얼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다 무사히 잘 견뎌내서 내년엔 더 이쁜 꽃들을 피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일 앞에 화분은 고기공놈 땅에 심었다는 게 믿기지 않다던데.^^ 울 씽이가 자꾸 저기다 실례를 해서 잘 살아날 지 고민이다.

 

저 미스김라일락은 하나는 땅에 심었는데 저걸 어찌해야 좋을 지 잘 모르겠다. 땅파기도 쉽지 않지만 저 화분에 잘 어울려서 그냥 저리 키우고 싶은데 말이다. 작년에도 살아남았으니 올 겨울에도 살아남아 주기만 바랄 뿐...

 

 

 

라이트옐로우는 색이 엄청 안 먹어 칠하는데 무진장 고생했는데 저걸 전혀 안보이는 뒷쪽으로 칠해 조금 안타깝긴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커피를 갈다보니 커튼 사이로 보이는 색이 너무 이쁘더라는거다. 오후 해가 비치면 더 이쁘다. 썩어가는 나무들이 우중충해서 잘 안쳐다봤었는데 기분이 참 좋더라.

 

 

 

어젠 햇살이 얼마나 좋던 지.. 보통은 집안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을 했는데 요즘은 문을 열어놓기도 애매한 날씨라 지난 주 서울에서 가져 온 저 스피커를 넷북이랑 연결해 들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빨리 바깥일을 끝내야하는 데, 아니 끝내고 싶은 데 그냥 음악들으며 맥주 몇 잔 마셔주셨다지..ㅎㅎ

 

 

 

사야의 오늘 아침식사다. 일주일 전 쯤 해놓은 현미섞인 밥을 죽으로 변신시킨거다. 원래 싸움은 밥심으로 버티는 건데 요즘 사야는 먹는 것에 소홀해졌다.

오죽 싸움이 치열하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야가 김치담을려고 사놓은 배추를, 그것도 삼천원도 넘는 금치를 이주이상 방치하다가 결국 절였는데 절인 배추를 썪이는 사태까지 맞아 충격을 좀 받았다.

 

그래 오늘 찬밥으로 만든 저 죽은 냉동고에서 찾은 세발낙지에 톳 양파 뽕잎까루까지 첨가한 영양죽(?)이다. 원래는 김치 낙지죽을 만들까하다 김치는 그냥 반찬으로 먹었다...^^

 

 

 

물론 이 모든 사투를 버티게 해주는 건 저 놈, 울 씽구리다. 한동안 무지 우울해 하다가 이젠 체념을 했는 지, 지도 힘들텐데 밥도 잘 먹고 간식도 평소대로 점프해서 받아먹고 말도 너무 잘 듣고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했듯이 이등공신은 불이다. 갑자기 프로메테우스교로 개종할 까 싶을 정도다..^^;;

 

물론 이 주라는 시간은 감동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긴 하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사야가 온전히 홀로서기를 하는 데 참 고마운 시간이기도 하다.

사야가 이 시간들을 별탈 없이 버텨낸다면 사야는 사십오년 사야를 괴롭히던 그 감정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두렵지 않은 인간이 어디있겠냐만 그래도 왜 사는 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그래,

그 말을 듣고 '그냥 사는 거지 뭔 의미를 따지고 그래' 라고 말하는 당신처럼 그렇게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 수도 있을 거란 희망..

그래서일까, 사진엔 담을 수 없었지만 요즘 이 곳엔 맑은 날 밤이면 별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2012.11.19...여주에서...사야 

 

 

 

참 어제 잊은 햇살걸린 산수유나무요. 산수유잎이 저리 이쁜 지 처음 알았습니다. 아직은 어린 나무지만 내년엔 꽃을 피우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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