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에서 강릉행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원주. 소라님이 예약해놓으신 황토방이 있는 민박집에 갔더니 원주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게 풍광이 참 좋다.
(물론 사진왼쪽으로는 깎고 어쩌고 전원주택들을 짓느라 난리가 아니더만..ㅜㅜ)
요 건물이 우리가 묵었던 방이 있는 건물이다. 사실은 저 우체통 아이디어가 좋아서 찍은거다. 항아리 우체통이라니 정답지 않은가.
날씨는 딱 봄날씨처럼 따뜻하더라.
소라님 정보로는 찜찔방도 있었다는데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인지 운영을 안한단다. 그냥 따뜻한 방에서 쉬다가 잠시 산책을 나섰는데 어떻게된 동네가 모든 산책길이 막혀있더라..-_-
밤이 되니 날씨는 차가와졌지만 분위기도 좋고 한적한게 나중에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방바닥은 너무 뜨겁고 공기는 너무 찬 방에서 거의 잠을 설치곤 컨디션이 별로인 상태로 오르기 시작한 산행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많이 녹았을거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오른 곳이 응달인지 의외로 눈이 많아서 아이젠을 신고 걷기는 편했다.
어찌나 가파른지 겨울산을 오르는게 한 17년만인지라 간단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참 좋더라.
저 길에서 사진기를 꺼내는데 몸 앞으로 잘못 숙였다간 재밌겠다 싶었다..-_-
저런 산길을 오르다보니 솔직히는 이 길로 내려오진 못하겠다란 생각이 들었지만 인생이란 아니 산행이란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지..ㅎㅎ
두시간을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올랐는데 이 슈퍼우먼이신 소라님께서 갑자기 우리가 오르려던 봉이 아닌 산넘고 물건너(는 아니고) 있는 정상에 굳이 오르시겠단 거다. 세상에나 너무나 당연한 얼굴로 사킬로 좀 넘잖아요? 하시는데 기절..
겨울산에서 조난경험도 있는데다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내키지 않는 일. 어쨌든 두고보기로 하고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난 살고 싶다고..^^;;;
이쯤에서 헤어져 내가 먼저 하산을 하기로 합의를 했는데 이게 왠일 내려갈 길은 안보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양쪽은 낭떨어지고 길을 질퍽거리고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ㅎㅎ
결국 내려가는 길을 찾아 하산하는데 이건 도저히 다시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오름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혹 다리가 풀릴까봐 한발 한발 그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보니 사진찍을 엄두같은 건 내지 못하고 저 절이 보이는 순간 느껴지던 그 행복감이라니..
그렇다고 그럼 왜 산에 오르냐고 묻지는 말기 바란다..ㅎㅎ
그제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며 겨울산의 묘미를 즐기기시작.
이 절 이름이 입석사이던데 아마도 저 돌때문이 아닌지.
다왔다고 얼씨구나 했더니만 왠걸. 저 길은 또 왜그렇게 가파르고 길던지..그래도 나야 미리 하산을 한데다 겨울햇살도 따뜻해서 ' 아 좋다'를 연발하며 사람도 거의 없는 길을 천천히 내려갔다지.
올라가는 쪽도 그랬지만 이 곳도 저렇게 멋진 집들이 좀 있더라. 원주까지 가서 살 생각은 없어도 산좋고 물좋은 곳에 저런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누군지 살짝 부러웠다지.
소라님이 하산하실 때까지 저런 곳에 앉아 맥주 시켜놓고 마시니 좋구나 좋아. 물론 어떤 이상한 여자가 한겨울에 바깥에서 맥주를 마시냐는 묘한 눈총를 받았다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날위해 살지 남위해 산다냐..ㅎㅎ
택시기사분 말씀으론 우리가 내려온 코스가 가장 험난한 코스라나. 당신도 산을 좋아하신다면서 '악'자가 괜히 들어가는 게 아니란다..^^;;;
올 길도 바쁘니 기차역에서 맥주랑 안주 좀 챙겨 기차에 올랐다. 산행을 마치면야 늘 뿌듯하고 또 기차여행은 늘 낭만적이고..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밖에는 정월대보름달도 밝고 저렇게 황당한(?) 건물도 보이고 짧았지만 그래도 소라님 덕분에 늦게나마 겨울산을 밟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2008.02.20-21 원주 치악산 등반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