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잠못이룰 것 같은 밤이다

史野 2007. 10. 7. 03:13

몽님이 추천해주신 영화를 검색해보다가 그게 아일랜드 영화라는 걸 알고는 당장 보러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토요일인데 예매를 하지 않고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열시10분인데 설마 있겠지란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친구 전화에 깨보니 영화를 보러가기엔 너무 급박한 시간.

 

마지막 상영이 열두시 오분이었던데 그 밤에 혼자 영화를 보러가도 되는 걸까.

 

한국에 올 때마다 술마시고 새벽에도 잘만 돌아다녔는 데 혼자살고 부터 이상하게 겁이 많아져 버렸다.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으며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주문을 왼다.

 

야간쇼핑을 가시냐고 어쩌고 쓸데없이 말을 시키는 기사아저씨 말에 대충 대답을 하며 강변 CGV에 도착한 시간은 열두시 오분 전

 

Once.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등장하는 더블린의 명동인 그래프튼스트릿.

 

워낙 작은 도시다보니 삼년을 살면서 도대체 나는 저 길을 얼마나 지나다녔던가.

 

속이 울렁거리게 만드는 핸드카메라가 거리를 비출때마다 아 조금만 돌려보지하는 안타까운 마음...

 

영화라기 보다 뮤직비디오에 가까운 이 영화는 너무나 좋았지만 내겐 영화보다 더한 감정들이 솟구쳐 오르는 걸.

 

내가 돈을 준 적이 있는 거리의 가수는 그였을까. 내게 빅이슈 잡지를 사달라거나 꽃을 내민 건 그녀였을까.

 

나는 컴컴한 극장안에 앉아있는 관객이건만 화면속에선 내 남자와 내가 영화와 연극과 음악회를 보러 그 골목사이를 헤매고 있었고 바닷가 모래밭에선 아이처럼 깔깔대며 장난을 치고, 관목숲을 걸으며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그 풍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더블린 술집은 내 마누라가 다 먹여살린다는 구박을 들으며 헤매고 다니던 그 거리들..

 

대낮부터 술이 취해 탁자사이에서 혼자 미친듯이 춤을 추던 한 여자.

 

리즈와 재즈공연을 전전하며 나누던 그 수 많은 이야기들.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또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던 아이뤼시 필름센타..

 

나와 슬론챠를 외치던 그 수많은 인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제리는 여전히 몇 파인트의 기네스를 비우고 고물자전거에 흔들리는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할까.

 

하미는 이제 아이뤼시국적을 얻고 어딘가에서 불어를 가르칠까. 아니면 여전히 그 낭만적인 카페에서 하시시를 피우며 폼을 잡을까.

 

몬데이..

 

아이뤼시 악센트만 들어도 나를 미치게 하는 그 나라..

 

더블린에서의 삼년은 내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겨놓은 걸까.

 

어쩌면 주인공들이 피터지는 삶속, 만지면 부서지도록 아스라한 꿈을 키우던 그 곳에서 나는 삶을 소진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단 생각.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영화를 보고 온 밤인데..

 

사랑이 아니라 추억에 취해 흔들거리는 시간

 

나는 언젠가 에어링구스를 타고 수도 없이 드나들던 그 공항에 내리게 될까.

 

아 정말 미칠 것 같은 밤이다...

 

 

 

 

2007.10.07.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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