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어떤 약속

史野 2007. 10. 2. 10:23

어제 달리기 하고 어쩌느라 확인을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언니님 괜찮으시면 제가 오늘 한 시쯤 가도 될까요?..

 

지난 번에 언급했던 9월 1일에 결혼했다는 놈이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오면 밥은 못해준다고 하고 일단 오라고했다.

 

이 놈이랑 나랑은 어학원에서도 별 친한 놈은 아니었다. 어제 또 구박을 하며 너는 자꾸 언니님이 뭐냐고 했더니만 이상하게 나한테는 자꾸 그렇게 된다는 거다. 그래 아마 언니가 당시에 그 곳에서 나이가 너무 많았기에 그럴 지도 모른다니 쑥쓰럽게 웃는다.

 

그랬다 한국학생들이 꽤 많았고 아줌마들도 좀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꽤나 나이많은 사람에 속했고 그래서 아마 그 동갑놈이랑도 쉽게 친해졌을거다.

 

어쨌든 우연한 기회에 이 놈과 밥을 먹을 일이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늘 그렇듯이 아마 어떻게 자신을 자신답게 가꾸어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 뭐 그런 식의 충고(?)였을 거다.

 

밥사주며 그런 식의 충고를 해준 놈들이 한 둘이 아니건만 이 놈은 당장 너무 고마왔다고 내게 작은 중한사전을 선물했다. 어딘가 썼지만 나는 중독사전을 쓰고 있었는데 가끔은 중한사전이 필요할 때도 있었기에 무지 고마왔다지.

 

이 놈은 도예를 하는 놈인데 내가 그랬다. 어차피 꿈을 가지고 중국에 건너온 거니까 열심히 하라고. 그리고 언젠가 언니에게 작품을 하나 팔라고..그러나 언니는 아무 작품이나 사는 사람은 아니니까 꼭 언니가 사고 싶어질 작품을 하나 만들라고..

 

그 놈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그건 그 놈과 나와 한 약속이었다.

 

뜨문뜨문 메일이 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 놈과 나는 어제 내가 상해를 떠나고 오년만에 처음 만난거다. 2년 전에 한국에 돌아왔다길래 작업은 어떻게 하고 있냐니까 안하고 있다는거다.

 

그래 아니 그럼 언니와의 약속은 어떻게 된거냐니 안그래도 그게 늘 마음에 걸려서 가져왔다며 자그마한 꽃병을 하나 선물이라고 준다.

 

얌마 내가 선물을 받겠다고 했었냐. 작품을 사겠다고 했었지. 그 약속이 유효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맘잡고 작업을 시작해라.

 

지금이야 막막해 보이겠지만 한 오년 뒤 전시회 한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고 틈틈이 작업하라고... 

 

결혼도 했는데 애낳고 어쩌고 어영부영하다보면 감각 잃어버리고 인생 그냥 종치는 거라고 말이다.

 

이 놈은 가능성이 있는 놈이고 상해대학 다닐 때는 학교에서 뽑혀 상해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에 작품도 냈었다. 어제 대학때 만들었다고 내민 하얀 꽃병도 아주 마음에 든다.

 

어제 그 꽃병을 그 놈과 나의 약속에 대한 증표로 고맙게 받았다. 작은 꽃병 바닥에는 그 놈의 이름과 2000년이라는 숫자가 써있다.

 

내가 그 놈에게 사게 될 작품에는 어떤 숫자가 써있게 될 지는 그 놈도 나도 모른다.

 

저 작품을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 놈의 작품을 사게 될 그 날을 기다린다.

 

아래는 예전에 내가 프로필 사진에도 올려놓은 적이 있는 그 놈이 전시회에 냈다는 그 작품이다.

 

 

 

2007.10.02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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