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부부란 무엇일까

史野 2007. 7. 1. 20:01

우리부부.

 

13년하고도 반을 더 살았고 누구보다 좋은 친구다. 시어머니가 아버님때문에 많이 괴로와 하셨기에 나는 저렇게 살 수 없다고 이를 악물고 신랑이랑 싸웠다. (우리식구들은 언제 다시 올리겠지만 엄마아빠도 그랬고 오빠 언니네 다 소설같이 산다.)

 

시아버님이나 울 신랑이나 부전자전이라고 그냥 혼자 행복하고 불만을 표시라는 일이란 거의 없는 좀 특이한 인간들이다. 마누라들은 열받아 미치는데 이 남자들은 마누라들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니 문제가 있긴 있었다.

 

우리부부가 한참 안 좋을 때 내가 울면서 신랑에게 그랬다. 나는 당신부모님처럼 살 수는 없다고 우리가 육십 칠십이 되었을 때 당신과 함께 해 온 인생이 너무 좋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 누구 하나가 사실은 많이 참고 살았다고 어쩌고 해야한다면 그 삶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그렇다고 시부모님사이가 나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결과 황당하게도 시어머님이 아버님때문에 열받아 하시면 내가 꼭 옛날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웃는 사태까지 발생. 어머님은 네가 나보다 훨씬 현명하다고 하시는데 유감스럽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남편 휴대폰 번호뿐 아니라 남편월급이 얼마인지 모르고 술값 담배값외엔 아무 관심이 없는 개판치는 마누라같지만 사실 나는 좋은 아내다. 그냥 좋은 마누라의 기준이 남과 다를 뿐이다.

 

상해로 오면서부터 나는 사실 내 꿈을 포기했고 남편의 삶에 주력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남자에게 그게 기회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신랑이 일해서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한다면 가능하면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좋겠다는 이유도 있었고 말이다.

 

이런면에서는 다른 독일동료들과 달리 외국인인 마누라가 강점이었는데 나야 이미 내 나라를 버렸는데다 독일이 꼭 돌아가 살고 싶은 내 고향은 아니었으니 어디라도 괜찮았달까.

 

더블린이야 그랬다고 치고 낯선 상해에서 간신히 중국어를 익히고 이제 이 도시가 편해졌다고 생각했던 일년하고도 반, 계약기간의 반이 힘들었으니 이제 남은 반은 편하기 그지없겠다고 기뻐하던 그때 날벼락처럼 홍콩으로 가자고 했을때도 담배 한대만 피우고 오겠다고 한 그 오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래 가자' 라고 했고 일년을 못 채우고 홍콩을 떠난다고 했을 때는 아예 마음을 비웠더랬다.

 

낯선 땅에서 마누라가 힘들면 일에 지장을 줄까봐 나름 이를 악물고 버텼고 친구하나 없는 이 곳에서 아무리 늦게오고 아무리 주말에 나가고 출장을 연달아 간다고 해도 눈살 한 번 찌푸려본 적이 없다. 내가 늘 내 남자에게 하는 말 ' 내가 알아서 해 내 걱정은 하지마'

 

자유로와 보이는 모든 행위, 말하자면 술을 마시는 것조차도 내겐 나름 나를 컨트롤하고 행복해지려는 노력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내 남자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굳게 믿고 있기때문이다. 말하자면 일하러 나간 남자 절대 신경쓰이게 하지 않는다는 고전적인 마인드다. 그래서 술이 만땅 취했어도 신랑이 오기전엔 집을 치워놓고 다림질도 하고 늘 웃는 얼굴로 맞는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이렇게 세계를 그것도 매번 언어조차 바뀌는 곳으로 떠도는 사이 내 남자는 굉장히 많이 컸다. 이건 꼭 회사에서의 위치뿐 아니라 인간자체도 훨씬 멋있는 인간으로 변했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거라는 걸 절감하는게 책임자로 여러 일들을 해결하며 많이 변해가더라. 물론 인간의 본성이 변하는 건 아니다. 이야기했듯이 워낙 일에 철저한데다 아부같은 걸 모르는 내 남자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고 하는 것이 지금 이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거지만 말이다.

 

누구보다 그런 내 남자를 잘 아는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우리야 아이가 있어서 교육의 문제를 신경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다 위에 언급했듯이 내가 꼭 독일이라는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거기다 돈에 별 관심이 없고 경제적인 문제와는 담을 쌓고 사는 나는 우리는 노후를 책임져줄 자식도 없으니까 우리가 우리 노후를 책임져야한다는 신랑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흔이 되니 나도 자꾸 내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는 거다. 흔들리는 마흔. 내가 자꾸 늙어가는 여자 어쩌고 해서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남들과 달리 떠돌며 살다보니 미래에 대해 뭔가 계획할 수 없는 내 인생에대한 위기의식이었다.

 

생일 전날 신랑이랑 들어가는 파티를 하면서도 신랑이 마흔이 되는 게 그렇게 힘이 드냐고 물었더랬다. 가장 힘든 건 미국비자양식을 채울 때처럼 직업란에 none (물론 신랑이 말려서 house wife라고 썼다만)이라고 써야할 때라고..

 

내가 그렇게 후진 인간은 아닌 것같은데 나이 마흔에 당신에게 예속되어 있는 이 상황, 당신은 커가는 데 당신 아내라는 걸 빼고는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는 이 상황, 그리고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이 나이가 힘들다고..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무슨 일이라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남자같은 경우는 지금의 생활수준이 보장되지 않는 한은 자긴 절대 한국에서 살 수는 없다고하고 그 말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물론 섭섭하긴 하다)

 

내가 한국에 가기전 날인 19일에도 회사에 일도 있었던데다가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지금 잘 먹고 잘 살지만 우리는 허영심이 있는 인간들도 아니고 주변사람들이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냥 평범하게 (지금처럼 이렇게 드럽게 비싼 아파트 같은 곳말고) 잘 살 수 있을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국에서 생일파티를 하던 날. 정말 행복했다. 누구 말대로 구성원들이며 그건 내가 그렇게 떠돌았기에 열 수 있는 특별한 파티였고 어쩌면 내 남자의 아내였기에 가능했던 파티이기도 하다.

 

심지어 새벽 두시에 계산을 하는 데 주인 아주머니 묻더라. 뭐하시는 분이냐고 오신 분들을 봐도 그렇고 이런 특이한 파티를 진행하시다니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다고 말이다. 

 

참 도쿄에서 서울까지 가서 파티를 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주말에 잠시 다녀가면서까지 지원하는 내 남자에 대해 의외로 놀라는 분들이 많은데 좀 다르게 생각하면 된다. 나와 달리 이런 아이디어에 늘 허덕이고 바쁜 내 남자를 위한 나 나름의 배려였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과 축하하니 행복하고 남편은 아내가 다 알아서 하는 데 근사한 생일선물이 되니 자기도 빛이 나는 일이었달까.

 

실제로 내 남자는 나의 서울에서의 파티계획에 안도의 숨을 쉬며 무진장 고마와했다. 자기에게 압박감을 주지 않고 행복한 길을 스스로 찾으니 어찌 고맙지 않았겠는가.(이런 것도 물론 생각의 차이다)

 

그렇게 성공적인 파티를 하고 피곤에 절어 늦게까지 자던 일요일 11시. 잠도 덜깨고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심각한 이야기가 있다며(내 남자가 내게 심각한 이야기가 있다는 건 딱 한 면) 이 남자 내게 묻더라.

 

' 혹시 브라질에 갈 생각이 있니? '

 

이건 잠이 확깨는 게 아니라 내가 듣고 있는 이게 아직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수준.

 

내가 늘 농담으로 남극에서 가서 펭귄언어라도 배우고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긴 했어도 정말 브라질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상파울로에 지사가 있다는 것도 이년 전 리오여행하며 처음 알았을 정도.

 

당장 독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한 가능성이라고는 지사가 가장 큰 런던이나 아님 아예 회사를 때려치고 아시아 쪽 상해나 필리핀등 어느 회사로 옮기는거 정도, 그러니까 유럽이나 아시아외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멍한 기분으로 일어나 담배를 연달아 피우곤 일단 서둘러 호텔을 나와 점심을 먹으며 그랬다. 이건 홍콩문제처럼 담배 한대피우고 가자 할 성질은 아니니 일단 생각을 좀 해보자고..복잡한 기분으로 신랑을 공항에 데려다주지도 못하고 난 그냥 묵고 있던 친구네 집으로 돌아왔다.

 

내 남자가 곧 마흔 둘이 아니라 쉰 둘이 된다면 고민하고 말것도 없이 no를 외치겠지만 그 날 정말 얼마나 괴롭던지..마침 그녀 집엔 고기공놈도 안가고 있어서 셋이 앉아 한숨을 쉬다 둘다 이건 담배 한개피가 아니라 한보루는 피우고 결정할 문제라는 둥 소설을 볼 필요도 없다고 그냥 내 인생자체가 소설이라고 괜히들 가슴 허한 말들이나 공허하게 나누고...

 

물론 나란 인간도 역마살에 도전심 호기심으로 충만한 인간인지라 설레는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건 그저 호기심이고 막막함을 이겨내기엔 택도 없었다는 것.

 

확실한게 있다면 내가 이 남자랑 사는 한 내 남자가 불만족스러운 곳에 가게되면 나 역시 행복할 수 없다는 것. 이제 갓 마흔이 넘은 남자에게 야망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  

 

그런데 과연 나도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며 남의 옷을 입은 듯 살아가야하는 걸까. 마흔을 앓으면서 이제 좀 정신 좀 차리고 일본어 학원도 등록하고 잘 살아보려고 하는 이 때 하필이면.. 바보같이 눈물까지 나더라.

 

화요일 돌아와서 마주앉은 저녁.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다시 한 번 브라질에 가고 싶어하는 남편의 심정을 절절히 느꼈던 저녁. 아무 말도 못하고 일단 너무 멀다는 내 말에 어디서? 한국에서? 묻던 남편.

 

수요일아침 일어나지도 못한 내게 출근하겠다며 침대맡으로 온 남자가 다시 묻는다. 브라질 갈래?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

 

그래 그가 가는 곳에 나도 간다. 아니 가기로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단 브라질건이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그렇구나 아직 내 떠도는 삶이 끝난것도 아닌데다 내가 다 산게 아니구나 내겐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었던 거구나를 느꼈던 충격적인 사건.

 

정말 암담하기 그지 없었는데 막상 지원하자마자 또 안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니 남편 생각을 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뭔 놈의 인생이 이 모양인가 싶어지던 몇 일.

 

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우리부부가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건지.. 안그래도 아직 나는 나름 마흔의 통과의례를 다 마친것도 아니고 머리복잡한 일도 있는데 이래저래 힘겨운 날들이다.

 

정말 나는 전생에 뭐였을까.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랑을 태워보내고 나도 택시에 올랐는데 창문에 붙은 운명 어쩌고 하는 광고를 보니 휴대폰만 있었다면 당장 전화를 하고 싶더라.

 

결혼전에 어느 분이 내 사주를 봐주시더니 무지 잘 살 사주인데 외로울 고가 낀 인생이라는거다. 그때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내가 친구들에게도 한 말, 이러니 어찌 내가 술을 안 마실수가 있겠냐고.. 정말 다 집어치우고 나혼자 한국으로 돌아갈까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쨋든 마누라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왠수땡이 내 남자는 감히 마누라에게 짜증을 팍팍 내고 있는 중이다. 일년간 저녁에 다이어트 음료만 마셔대서 나를 신경쓰이게 하더니 (차라리 힘들어도 저녁준비해주는 게 백번 낫다) 요즘은 먹거리를 준비해줘도 화 안 내고 잘 먹는다.   

 

오늘도 너무나 맛있는 샐러드를 저녁으로 준비해 주며 나야 더 귀찮아지긴 했어도 이렇게 색있는 걸 먹기 시작해서 기쁘다고 했더니 자기가 다이어트 음료를 안 마신 지 한달은 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잘난척을 하시니 쥐어박을 수도 없고..

 

그래도 늘 얼마나 맛있었는 지 표현해준 다는 것과 '네가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지 아느냐고' 말해주는 것이 고맙다. 아니 그게 어쩌면 내 삶의 족쇄인지도 모르겠다.

 

마누라를 슈퍼우먼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내 남자는 이제 그게 익숙해져서 정말 어떤 경우에도 자기 마누라는 잘 해낼거라고 믿는다.

 

믿어줘서 고맙긴 해도 난 정말 잘해낼 수 있는 건지. 아님 이만 나는 슈퍼우먼은 아니라고 판을 엎어야 하는 건지.

 

어쨌든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정말 억지로해도 안될 파란만장한 인생, 도저히 평범해 질 수 없을 것 같은 내 인생.

 

그리고 나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내 남자.

 

이게 그의 전생의 업인지 아님 내 전생의 업인지..

 

지난 결혼기념일에 글을 올리면서도 썼지만 내 영혼의 반쪽은 아니어도 내가 만날 수 있었던 최고의 남편,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간다, 라는 말이 그녀 표현에 의하면 나다운 말이라던데..

 

나는 왜 그렇게 말해놓고도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이것도 나이 마흔 탓인걸까....

 

 

2007.07.01.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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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여자 티내느라 배경이 팝아트입니다..

정신사나우시다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냥 제 방이니까 제 맘대로 합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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