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젠장, 국력은 강하고 봐야한다

史野 2007. 5. 30. 23:19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렇게 떠돌면서도 기죽어 본 적이 없는 나다.

 

기가죽기는, 언급했듯이 비자없이도 단 한마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소리로 공항도 통과하고, 그렇게 비자 받으러 다니고 어쩌고 했어도 열받아 본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여행비자가 아니라 거주비자를 받아야 하니까 복잡하고 힘들 때는 많았다

 

그런데 오늘 미국비자를 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인터뷰 약속을 받기 위해 나름 애쓰다 보니 열이 확 받는다.

 

이년 전에 미국에 갈까하고 단지 궁금한 걸 물어보러 미국영사관에 전화걸었을 때 신용카드번호까지 입력해야 통화가 되었던 생각도 나고 말이다.

 

이게 부부도 아니고 나 혼자 비자가 필요해서 이 난리를 치다보니 독일놈이랑 비교 정말 약소국의 서러움이란게 이런건가보다 싶은 심정.

 

누가 뭐란 것도 아니고 내가 혼자 컴퓨터로 준비를 하는 건데도 이렇게 열을 받게 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니 갑자기 미국에만 가면 설설기는 한국인들이 다 이해가 갈 지경.

 

어쨌든 오늘 애를 쓴 관계로 6월 28일 인터뷰 날짜를 받았다. 오늘 신청을 하는데도 가장 빠른 날짜가 6월 14일인데 나는 20일에 한국에 가야하는 관계로 여권을 맡길 수가 없어 좀 넉넉하게 잡았다.

 

우리가 7월 28일경 출발을 할 생각이다보니 신랑이 충분하겠냐고 묻길래 그랬다.

 

자기야 잘 들어 여행 떠나기 두달 전에 하는 준비거든?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단지 한국 국민이라는 게 문제가 되어 그때까지 비자를 못 받게 된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미국 절대 안가니까 자기 혼자가!!!

 

프린트기가 신랑방에 있는 지라 신랑도 오늘 퇴근하고 나름 애쓴데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신경질을 냈다. .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신랑도 마침 회사의 인도애가 독일로 출장을 가야하는데 그 출장비자를 받으려고 독일대사관에서 오전내내 보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돈은 잘 못 벌어도 전세계에 지사가 있는 절대 후진 회사 아니고 그 회사 도쿄지점에서 일하는 애가 단지 인도인이라고 복잡해지는 이 시스템

 

내가 오늘 신랑에게도 이야기 했지만 그 애는 집안도 좋은데 훨씬 후지고 그지같은 독일애도 미국이니 어디니 마구 갈 수 있는데 어떤 나라 사람이냐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할 모멸감.

 

필리핀 지인도 그랬다. 필리핀에서 아주 잘 나가는 집안의 딸인 애도 독일에서 비자문제론 나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이래서 또 한국인들이 미국시민권을 받지 못해 안달을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밤

 

젠장 국력은 강하고 봐야한다니까.

 

 

2년전에도 인터뷰 날짜조차 못 받아서 신랑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미국비자를 우습게 아냐'는 구박을 받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줄은 몰랐다.

 

영사관에 간 것도 아니고 단지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 막무가내 폭력성이 느껴지다니..

 

어쨌든 인터뷰 날짜를 받았으니 일은 거의 해결된 거고 한달 간 여행문제는 덮어 둬도 되겠다 싶어 다행이다.

 

난 늘 이렇게까지 해서 미국에 가야하나란 생각으로 갈등했다만 어떤 의미로든 내게 가까운 나라고 또 신랑이 내게 꼭 느끼게 해주고 싶어하는 나라이기도 하니 이번 기회에 한 번 다녀는 와야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모멸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신랑이 부럽다거나 그래서 독일 여권을 가져야 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기분이 좀 드럽다.

 

내가 진짜 모멸감을 느끼는 건 제목처럼 국력이 강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딜가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는 그 사실이다. (물론 나는 한 재수하는 인간이니까 기죽을 일은 없다만)

 

원래 좀 복잡스런 인간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더 그렇다. 사랑이 변하면 증오가 된다던가

 

맨날 싸우고 맨날 비리고 맨날 거짓말을 일삼고 누구도 책임 안지고 불법체류자들은 타죽고 교수들은 논문을 베끼고 엄마들은 소방훈련 갔다가 아이보는 앞에서 떨어져 죽는데 와이어가 관리대상이었다는 자체도 모르고 국전에서의 상은 뽑히는 게 아니라 팔리고 어린 돼지는 산 채로 능지처참을 당하고  소나무 제선충은 빼돌린 간부들때문에 절대 죽지 않고 기자상까지 받은 기자는 왜곡이나 일삼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누구나 마음에 안들면 아무 곳에서나 반말 지꺼리를 해대는..

 

나열하다보면 끝이 없는 내 나라가 더 밉고 지겹고 쪽팔린다

 

젠장 하루만 뉴스를 읽지 않아도 그 많은 비리며 퍼포먼스를 따라 잡지도 못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사실 국력이 신장되면 뭐하고 미국에 무비자로 가면 뭐하겠는가.

 

책임질 줄 모르고 뭐가 부끄러운 지 모르는 나라가..

 

 

 

젠장 오늘 내 제목이말로 제대로 낚시다.

 

나는 요즘 내 출신이 정말 혐오스럽다..

(제발 여기다 대고 또 어떤 멍청한 인간 그렇게 싫으면 이민가라고 독일국적 가지면 안되냐고 묻지마라..)

 

 

 

 

 

 

 

 

2007.05.30.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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