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딴나라당'과 '닫힌 니네당'

史野 2007. 5. 17. 14:18

 

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 남자는 한동안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연애할 때조차 이기백씨의 새로운 한국사 영어판을 좀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을 정도. 그래 열심히 당이름도 외우고 어쩌고 했는데 어느 날 짜증을 확 내면서 관두겠다는거다.

실컷 외워놓으면 바뀌고 또 바뀌고 도대체 어느 당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건지 도저히 헷갈려서 못 알아먹겠다나. 개망신이었다.

 

그래도 뭐 아직도 한국과 관련된 기사를 읽게 되면 내게 링크로 보내거나 신문에 난 기사는 오려오는 성의를 보이기는 한다만 이젠 관심이 거의 식었다. 어쨌든 하도 이합집산을 일삼아서 또 그 의미가 없어질 지도 모르는 저 이름이지만 얼마전 제목의 두 당 이름을 설명하느라 머리에서 쥐났는데 이럴때 우리부부의 의사소통 문제에 절망한다..ㅎㅎ

 

대선이 다가오면 진흙탕이 될거라는 건 예상을 했고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는 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들 개판인지, 어찌 내가 첫 선거가 가능하던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양 그 꼴인건지 왜 진일보도 못하는 건지

 

딴나라당이야 내가 원래 싫어하니까 뭘 하든 그래 하지만 닫힌 니네당이 설레발치는 건 열을 배로 받는다. 아니 정치를 노통 혼자 했나? 그 안에서 장관 해먹고 의장 해먹고 생난리를 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또 정권을 잡아야 하니 살짝 밀가루 칠 좀 하겠다고? 그러니까 책임은 노통 혼자 지라는 이야기인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러면 안되지. 최소한 자기 밑정도는 닦을 양심이 있어야할 거 아닌가.

 

다 동의 하는 건 아니지만 5월 7자 노통의 청와대 브리핑에 보면 '정말 당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일찌감치 당을 떠나신 전직 법무부장관님께서는 '그 분'이 변했다기보다 내가 그 분을 잘 몰랐던거 같다고 하셨다던데 아니 연세가 몇이신데 아직도 그렇게 사람보는 안목이 없단 말이냐? 그냥 그 때는 권력에 눈이 멀어 안 보였던건 아니고?

 

윗 분 포함 다른 두 분까지 탈당을 하거나 당을 깨는 것이 다 민주세력의 역사적 사명감이란다.

 

 '천 의원은 "청와대와 열린 우리당 일부 인사들이 원칙과 가치를 지킬 수 있다면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줘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며 "이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 나라 민주화와 개혁을 진전시켜온 국민들에 대한 모욕이며 매우 천박한 역사인식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5월 6일자 프레시안)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난 그저 놀랍다. (다른 두 분 이야긴 길어서 안 베껴왔다만 골자는 비슷하다)


나는 세금도 못내는 하찮은 일개국민이니까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의 오조사마(様)께서 대통령이 된다면 국적을 버리겠느니 어쩌느니 헛소리를 해대도 상관이 없다.(아무리 썰렁개그라도 천표를 주겠다느니 말을 하는 걸보면 정말 수준이 의심된다만..ㅜㅜ)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일 뿐더러 내 조국에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의원님들은 다르다. 그들은 정치가고 국민의 혈세를 받아 입에 풀칠을 하시는 분들이다.(아니 혹시 로비자금으로 풀칠을 하시나?) 정치를 하는 첫 째 목표야 당연히 개인의 권력욕이겠고 그걸 욕할 생각이야 없지만 그래도 외적으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다.

 

파시스트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아래선 정권이야 원래 왔다리 갔다리 하는거다.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누군가 선택을 받는 다면 그게 딴나라당의 후보라도 결정이 되면 겸손하게 받아들여한다. 국민의 뜻이니까.

 

누구 맘대로 모욕이고 천박한 역사의식 사명감 어쩌고 떠든단 말인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권을 잡아 뭔가 잘해보겠다는(사실 기회야 벌써 있었다만) 그 충정은 높이 산다만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저 독선적인 생각이야 말로 '천박한' 태도다. 절대 딴나랑에 정권을 줄 수 없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원칙도 뭐고 없고 이합집산을 일삼는 거야말로 파시스트적 발상에 태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대한민국에 민주화 세력만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박통때가 좋았다는 사람들 전통때가 좋았다는 사람들도 살고 있고 그들이 뽑아준 딴나라당 국회의원들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같은 건 별 중요하지 않고 그냥 잘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정치가는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포용해야 제대로 정치를 하는 거다.

 

세금은 민주화세력만 낸다냐? 내가 극좌파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대중들을 무시하는 그들의 오만이다. 본인이 좌파라고 떠들어대는 모씨는 어느 사회운동가를 인터뷰하며 자랑스럽게 묻더라. '대중을 어떻게 신뢰하냐고' 신뢰하지 못하는 데 무슨 애정이 있으며 애정이 없는 데 무슨 대중을 위하고 어쩌고 떠들 수가 있는가? 그럼 극우파들은 대중을 신뢰하냐고? 아니 그들은 최소한 대중이 어쩌고 평등이 저쩌고 하지는 않는다.

 

막말로 그 절대 정권을 잡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설사 정권은 못 잡아도 국회는 들어올 거 아니냐? 그럼 국민에 대한 모욕이기까지 한 그들과 어떻게 제대로 국가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협상이 가능하단 건지 나같은 돌머리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니까 맨날 국회에서 비싼 밥먹고 멱살잡거나 신발이 날라댕기며 쌈질이나 하는 것 아닌가. 재벌회장 욕할거 하나도 없다. 다 배운 도둑질이 그런거다.

 

우리나라는 다수 정당의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본인들만 성실하게 일하면 총선에서 충분히 승리가 가능하고 정치참여가 가능한 구조다.

 

정치정도 하는 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잘 할 수 있지만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런 이런 면이 좀 나을테니 나를 뽑아달라고 해야 정상이다.

 

나와 사상이나 철학이 다른 딴나라당 정치인이라도 좋으니 제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손학규씨에게 실망했던 것도 그가 딴나라당 출신의 정치인이 아니라 그 당을 떠날 때 했던 말들 때문이다. 차별화라는 게 굳이 상대를 깔아 뭉개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특히 종교인이나 학자도 아닌 정치인들이 권모술수까진 아니어도 앞에서는 그래도 좀 좋은 점을 칭찬하는 최소한의 매너는 갖추었으면 좋겠다. 

 

제발 이제 그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잘 못했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용기있는 사람들도 좀 보고 살자. 언제까지 남의 탓 구조 탓만 하고 말것인가.

 

언제까지 '딴나라당' '닫힌 니네당'이란 놀림이나 받고 살거냔 말이다.

 

그리고 말들 좀 조심했으면 좋겠다. 노통의 말가지고 진짜 '말들'도 많지만 내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다. (아니 '대학을 나온' 전여사가 최고 압권이다만..ㅎㅎ)

 

몇 일 또 이명박씨의 발언가지고 난리가 났는데 내가 아무리 이명박씨를 싫어한다고 해도 불구는 죽어야한다는,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다고 믿는다.

 

문제성 발언이긴 해도 우리나라의 척박한 현실속에서 (환경적으로든 사람들의 의식수준으로든) 무조건 원색적인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사회전체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고 짚고 넘어가야할 중대사다.

 

지난 번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나포함해서)의 생명윤리문제는 심각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그건 우리가 개발독재 사회에서 정신없이 살아 오느라 제대로 그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이유, 인문학적 토양이 척박한 이유가 클거다.

 

이명박씨의 발언에 네티즌들이 일어나고 각자들의 생각을 담은 글을 올리거나 장애인들께서 분노하는 건 백번 이해가 간다. 우리가 필요한 건 갈등을 내어 보이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그 태도며 소수자의 발언이 공론장으로 나와야 하니까.

 

그런데 무슨 닫힌 니네당 대변인인지 뭐시긴지 또 정동영씨까지 섬뜩하다느니 비인간적이라느니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부으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태도야 말로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냥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으로 그런 발언을 하다니 매우 유감이다, 에서 그치면 된다. 아니 그들도 정치가니까 그들은 그럼 낙태문제 장애인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어떤 식의 정책을 펴야 하는 지에 대해 더 고민하면 된다.

 

한국말이 참 아름다운 언어인데 왜들 그렇게, 그것도 공개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언어들만 골라 쓰는 지 모르겠다. 보통 국민들도 아니고 사회지도층 인사분들께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게 그렇게도 어려울까?

 

 국민들도 좀 살자. 먹고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아 스트레스 이빠이인 세상에서 제발 이제 그만 뉴스보다 더 혈압 올라가는 일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먹고 사는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권리도 있다고 .

 

지난 번에도 썼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게 무슨 죄냐? 세상에서 제일 과.학.적.인 언어라는 한글을 이해할 수 있는 게 무슨 죄냐고!!!!!

 

내일이 5.18인데 이제 광주도 정치적으로 그만 이용해 먹었으면 좋겠다. 내일 또 줄줄히들 망월동으로 가실 텐데 내 생각엔 거기 누워 계시는 분들도 혼이 편하지 않으실 거 같다.

 

우리가 진짜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땅에 태어났으니 최소한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여야 할, 먼저 산 자들의 사명은 있지 않을까.

 

어제 우연히 분단상황때문에 접해보지 못했던 한 북한시인에 대한 시론을 읽은데다 오늘은 56년만에 기차도 북으로 떠났다는 날. 언젠가 서울을 출발해서 독일까지 가고 싶은 꿈이 있는 나는 비도 오락가락하고 이래 저래 마음이 복잡시런 날이다.

 

우리의 문제점들을 아우르고 남북한 문제며 주변과 슬기롭게 협력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아직 우리에겐 너무 먼 이야기 일까. 나는 보통사람이신 노통까지를 군사정권, 그 이후 15년을 과도기로 이해했었는 데 15년도 우리의 근현대사의 질곡을 극복해 내기엔 너무 짧은 세월인지도 모르겠다.

 

 

 

 

2007.05.17. Tokyo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