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9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는 눈물이 날뻔했는데 영화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영화비가 아까와서..
그래도 '빗방울 떨어지는~~' 는 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너무 좋아 카세트를 사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월이야기.
진짜 비오는 날의 수채화같은 영화는 여기 있었다.
사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지루하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영 아마추어같은 사람들이 고정된 카메라 속에서 어설프게 움직인다. 홋가이도에서 가족의 대대적인 배웅을 받으며 도쿄로 유학온 주인공은 어리버리하고 그녀의 행동들은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쁘다고 거짓말을 하곤 책방을 기웃거리고, 사실 특별히 찾는 책도 없으면서 책방을 기웃거리며 이 책 저 책 뽑아보길래 나는 쟤가 혹시 외로움에 책이라도 훔치는 거 아닌가 혼자 마음졸이는 오바까지 해야했다.
그것뿐이랴 영화가 짧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지루한 영화속 영화장면을 계속 보여주거나 별 특이한 사건도 없이 지속되는 화면을 보곤 그냥 이렇게 영화가 끝나버릴까봐 걱정까지 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 모든게 용서(?)가 된다. 왜 주인공이 도쿄의 새로 얻은
아파트에 들어와 창문을 열어놓고는 벅찬가슴으로 쓰러졌는지, 신입생 소개에서 이 대학을 왜 왔냐는 질문에 바보같이 대답을 할 수 없었는지, 그 지루한 시대극은 왜 보러 갔는지, 쓸데없이 서점엔 왜 들락거렸는지..
이해가 되다못해 조금씩 감정의 상승작용을 보일때쯤 비가 내리고.. 주인공의 독백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면 '아 이거 뭐야 영화가 이렇게 끝나버리는 거야 ' 가벼운 탄성과 함께 '이런 깜찍한 감독같으니라고'..
감독이 옆에 있다면 볼에 뽀뽀라도 하고 싶어지는 거다.
그래 동화같은 이야기다.
어쩌면 그래서 사월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쏟아져내리는 벚꽃잎처럼 환한, 그러나 정말 비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기껏 정성들여 그린 그림이 비에 젖어 번질까 걱정도 되는..
영화속 주인공같이 순진한 애를 만난 적이 있다.
작년 여름 여행을 떠나기전 해결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아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드디어 택시를 잡아타고 도쿄역으로 가려던 때. 아주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길을 몰라 쩔쩔매던 젊은 기사양반은 피곤해 입도 뻥긋하기 싫은 내게 자꾸 말을 시키며 자신의 두려움(!)을 상쇄하고자 무진 애를 썼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그 총각애는 어느 시골출신이었는데 대망의 꿈을 안고는 꿈에 그리던 도쿄에 왔고 택시를 시작한지는 겨우 칠일, 그래서 견습생이라는 완장까지 차고 있었는데 어찌나 자랑스럽게 그걸 보이던지.
자기는 꼭 훌륭한 택시기사가 될거라고 이 대단한 도시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는 그 청년에게 평소보다 많은 돈을 내고 내렸어도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하도 동화같아서..
우리나라에는 육십년대나 있었음직한 그런 일을 이 메트로폴리탄 그것도 세계에서 몇 째가라면 서러울 이 세련된 도시에서 내가 경험했다는 걸 믿을 수 없어서..
솔직히는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았지만 넌 꼭 네 꿈을 이룰 거라고 친절하고 훌륭한(!) 택시기사가 될거라는 덕담을 하기까지 했다.
이제 일년이 지났으니 그 총각은 이 복잡한 도시에 익숙해졌을까. 이 대도시에서 상처받지 않고 잘 지낼까. 영화를 보곤 뜬금없이 그 총각이 생각났고 영화속 주인공들의 미래보다 그 총각이 더 궁금해졌다.
영화속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나도 빨간 우산을 하나 장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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