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피아식별이 어려운 세상

史野 2025. 2. 27. 11:33

사야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은 피아식별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공산독재에 반대하는 자유민주진영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게 어쨌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믿고 살았다
미국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더라도 그 자유민주주의의 보루 같은 거랄까 그래도 나름 믿음이 있었다
해리스가 당연히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은 건 아니었기에 트럼프가 이겼을 때도 크게 놀라진 않았고 또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 세상이 망한 건 아니었으니 걱정은 했을지언정 절망하진 않았다

그런데 다시 대통령이 되자마자 보이는 모든 행보가 충격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다 안될 정도다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을 왜 시작했냐는 그의 말을 틀렸다고 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는 힘도 없는 주제에 왜 저항은 했냐고 한심해하는 거니까
멍청한 니가 주제도 모르고 싸우겠다는 바람에 우리 돈이 많이 들어갔으니 광물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는 거니까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미러대표가 만나 평화협상에 들어갔을 때 타자에 의해 분단당해야 했던 우리나라 역사가 떠올라 맘이 안 좋았다
안타깝게도 당시 우리나라는 정식정부가 없던 식민지였지만 우크라이나는 엄연히 한 국가인데 배제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독재자에 저항해서 한심하다는 거라니

그동안도 미국이 개판을 많이 치긴 했지만 겉으로 내세우는 가치는 늘 있었다
그게 미제국주의는 뭔가 착한 제국주의라는 환상을 심어줬고 그런 환상은 최소한 사야에게는 필요했다

사야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많은 미국인들도 너무 괴롭겠다
트럼프당선되니 유튜브에 드디어 미제국(!)은 망한다고 하던 좌파분 하나 계셨는데 또 뭐라 하시려나 궁금해서 다시 찾으려니 못 찾겠다
그때도 술 한잔 하시고 방송하시는 것 같더만

피아식별이 어려운 세상이 안전할리 만무하다
세계대전 때나 냉전시대의 매카시광풍 때랑 비교 지금이 더 최악이라고 징징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때는 함께 지켜야 하는 가치와 '우리 편'이라는 게 있었잖나
미국과 유럽사이에 이리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당황스럽다

하필 이럴 때 이 나라는 또 이모양이라니
사야는 늘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제는 민주당을 지지할 수가 없는 것도 힘들다
여전히 사야는 계엄령을 선포한 현통보다 야당대표가 더 싫다
전자는 지금처럼 법으로 심판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후자가 몇 년간 주도한 손가혁이나 개딸들 같은 파시스트적인 광풍은 훨씬 위험한데도 어찌 손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 지지자는 사야 같은 인간들은 '다 죽어버리라'라고 버젓이 글을 썼더라
민주당에 민주가 빠진 '수박색출'같은 말은 소름이 끼친다

어찌 탄핵을 찬성하는 젊은 남성의 글을 읽다가 놀랬다
주장하는 바가 가짜뉴스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한데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그 절박함만은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야도 남들은 왜 그걸 못 보나 절박하고 진심인데 방향은 달라도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을 정도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개화기가 지금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척화파건 개화파건 친일 친청 친러까지 다들 나름은 진심으로 그게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을 거다
그때라고 가짜뉴스가 없었겠냐

물론 지금은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분단국가라는 악조건이 생긴 데다 망해가는 청제국이 아닌 무섭게 커버린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친중이나 친미는 이해하겠는데 친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별종들인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며 남의 도움(!)으로 국토반쪽이나마 차지하고사는 남한 사람들이 러시아 편을 들며 젤렌스키를 조롱하는 걸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악한 혹은 약한 존재들인가 진저리가 쳐진다
진짜 인간이라면 아니 약소국의 설움을 있는 대로 겪고 그 후과에 여전히 고통받는 한국사람들이라면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를 조롱하면 안 된다
앵무새처럼 트럼프식으로 떠드는 자칭진보 모부류 들은 진짜 멍청한 인간들이란 생각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휴전국국민인 주제에 뭔 인지부조화인지

비상계엄령선포를 들었을 때보다 요즘이 더 충격적이다
그때는 비현실적이고 짜증스러웠다면 요즘은 무섭고 많이 두렵다
이 나라는 어디로 세계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트럼프가 올렸다는, AI가 만든 금으로 번쩍이는 가자지구 트럼프천국(?)에서 트럼프랑 머스크가 신나 하는 걸 보다가 그게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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