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두 아버지..

史野 2015. 7. 29. 22:59

어제 오늘 수동잔디깎기로 마당에서 일을 하다보니 시아버님 생각이 많이 난다.

남들은 다 자동을 쓸 때도 오래전에 샀던 수동으로 잔디를 깎으시던 아버님. 결국 나이가 드시면서 자동으로 교체하시긴 했다만 사야가 수동기계를 산데는 그 아버님과의 추억도 한몫했다.

물론 수십년을 쓰셨는데도 망가지지 않았더라는 현실적인 면도 작용했고 말이다.


모님이 아버님 벌초이야길 하시던데 사야아빠는 여기서 이십오킬로도 안되는 곳에 계시다.

돌아가신 이후엔 툭하면 찾아가고 유럽에 살 때도 한국에 나올 때마다 꼭 들렸었는데 동양으로 와 일년에 두번은 나오는 대신 방문기간이 일주일로 짧아진 관계로 대충가다가 마지막으로 갔던 게 벌써 육년 전.

요즘은 다시 운전을 하니 멀지도 않은데 가볼 만도 하다만 마지막 갔을 때 풀섶으로 우거져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때문인가 이상하게 혼자 가고 싶은 생각이 안난다.


신기하게도 두 어머니들은 여전히 살아계시는 데 아빠는 사야가 태어난 지 십사년만에 돌아가셨고 아버님도 사야를 만난 지 십사년만에 돌아가셨다.

물론 사야는 아빠가 돌아가신 지 십일년만에 다시 만난 새 아빠랄 수 있는 아버님과의 추억이 훨씬 많다.

아빠도 당연히 막내딸인 사야를 무진장 이뻐라하셨는데 환경이나 상황이 달랐던 이유도 있겠지만 아버님이 주신 사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어쨌든 두 아버지는 참 많이도 닮았다.

한분은 현장소장 한분은 설계 건축관계일을 했던 것도 닮았고 다리가 엄청 길었던 것도 닮았고 삶에서 편법이란 건 모르고 늘 원칙만을 고수하던 태도도 닮았다.

내 아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사셨던 것도 닮았고 소시민적 마인드도 닮았고 역사를 좋아하는 것도 닮았고 고집쟁이들은 아니면서도 자신이 믿는 사소한 걸 우기는 것도 닮았다.

울 아빠는 심훈의 소설을 이광수가 쓴건데 친일파로 되면서 저자가 바뀐거라고 우겼고 울 아버님은 연어의 L 발음이 묵음이 아니라고 우겼다..ㅎㅎ


늦은 아침까지 천동번개가 치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침실에 딸린 화장실에서도 물이 새고 있더라.

한 곳이 샐때 놀래지 이번엔 놀랍지도 않더라.


사실 이 집은 고급스럽게 지어 집장사를 해보고 싶었던 어떤 놈이 나름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자금압박에 시달려 급하게 마무리를 하곤 떨이식으로 판 집이다.

그래서 들어오자마자 공사한다고 엄청 고생을 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사야를 신경쓰이게 하는 게 지붕이다.

집은 잘 지어놓고 뚜껑은 대충 막아놓은 형태랄까. 워낙 층고가 높기도 하지만 대충 만든 지붕때문에 열손실도 장난이 아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처음 공사할때 같이 했겠지만 그때는 사야도 전원주택에 무지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지붕의 중요성에 대해선 잘 몰랐다.

벌써 두 곳이나 문제가 생기는 걸 보면 대대적으로 손봐야할 것 같은데 그리고 사야는 이왕 손보는 김에 제대로 손보고 싶은 데 아 진짜 막막하다

이럴때 두 아버지중 누구하나라도 계시면 좋겠다 싶다.


어제 우연히 본 왕자의 난인 지 뭐시긴 지 아흔넷이라는 신격호회장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사야랑 상관없는 사람임에도 괜히 짠하던데

살아계시다면 한국나이로 아빠는 여든 둘 아버님은 여든 여섯 어쩌면 그 비슷한 모습일 지도 모르겠단 생각.


갑자기 생각나서 일까

어제 화정을 보며 열받다가도 그 두아버지 생각을 했다.

징비록이야 진작에 포기했지만 역사를 좋아하다고 하면서도 정명공주의 존재는 몰랐던 지라 늘 본방을 사수하는 건 아니라도 나름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는 데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사야 성격상 미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ㅎㅎ


정명공주는 선조의 딸이고 인조는 손자이니 당연히 조카인데 그리고 궁금해 찾아보니 겨우 여덟살 차이던데 이년 저년이 말이 되는 이야기냐구??

여주가 연기를 못하는 데도 나름은 미시사쪽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보다가 열 이빠이 받아 접었는데 두 아버지들에게 물었다면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싶다.

우짜든둥 삼시세끼를 보면서도 사야의 맘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던 차승원이란 배우는 광해를 연기하며 사야에게 점수를 많이 땄다

정명공주야 모르지만 광해는 나름 조금은 이해하니까 아마 진짜 광해도 그런 눈빛 그런 고뇌속에 있지 않았을까 싶게 감동적이었다


그래 또 삼천포로 왔다만..

아버님과 달리 사야보다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야의 아빠가 지금 그 나이를 살고 계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많이 궁금하다.

여전히 그 형형한 눈빛을 유지하실 수 있었을까

지금의 사야를 보고도 여전히 삶에대한 선택은 네 몫이고 그 책임도 네가 진다, 라고 말하시며 쿨하실까

아버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결코 사야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을테니 아버님이 어떤 생각이실까는 접자.

근데 그럼에도 만약이란 걸 생각한다면 아버님은 그냥 늘 그러셨듯 아무말씀도 안하실거 같다.

예전에 시누이 문제로 괴로와하시면서도 그냥 당신생각이 그런거라며 시누이가 알기는 원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오늘 사진은 없다만 이틀을 노력한 덕에 그리고 대단한 도구덕에 또 한번 삶에서의 스트레스라는 게 얼마나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건 지를 느낀다.

그리고 또 새삼 절절히 깨닫는다

뭘살까를 고민하다가 이개월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이걸 써라 말해줬더라면 그동안 그 개고생은 안했을 것을..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고 경험이란 게 늘 긍정적으로 승화되는 건 아니더라는 것.


그건그렇고 지붕은 어쩔까나

아니 어쩔까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데 해야하는 건 지 아닌 지 그게 문제로구나. 

당장 침대위로 물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 그건 또 내일 고민하고 이젠 마당에 나가 사야가 이룬 노동의 결과나 즐겨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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