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탈출 ㅎㅎ

史野 2014. 9. 26. 20:02

 

정말 오랫만에 서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보았다

 

잡초가 너무 크게자라 난리도 아니었는데 새깽이들을 주로 저문으로 내보내니 자연스레 길이 생겼더라

오디나무가 저리 크다니 그 성장속도가 놀랍다 마당에 큰 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고싶었는데 그 소원도 이루어진거네

아무리 봐도 진짜 저 집은 요새같다.

 

사야는 이제 담양에서 새깽이들을 데리고 탈출한거라 생각하기로했다 이야기듣자마자 다음날 다 데리고 나왔으니 뭐 엄밀히는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다

갑작스레 생활의 터전을 잃긴했지만 원래 탈출이란게 이것 저것 다 챙길 수 있는건 아니니까

도쿄에서 탈출하면서 남기고 온 것도 어마어마하지않냐

근 십오년 주부인생을 거기 다 남겼는데 ㅎㅎ

 

그런다고 마음이 더 편해지는 건 아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바라건데 새끼들을 모두데리고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있는 기회를 준 남친에게 고마와하는 날도 오면 좋겠다

 

나간김에 둘러보니 땔감이 꽤 눈에 띈다

이년전 경험으로는 아무리 긁어모아도 한달 분량도 안되더라만 그게 어디냐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쓰는 것도 중요하니 올해는 더 욕심을 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불쏘시개로 쓸 잔가지들도 엄청 필요하니 이젠 또 나뭇꾼사야로 돌아가는거다

엄청 아끼던 톱하나를 실수로 태웠는데 다시 구하면 좋겠다

 

장기적으로보면 담양에서 쓰던 펠릿난로를 침실이나 부엌에 하나 더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일단 올 겨울은 그냥 지나가야겠다

개 시끼들이 네 마리나 있으니 아무래도 덜 추울거라 기대하자

 

새깽이들이 뛰어나간 길을 따라 오랫만에 예전처럼 바리랑 걷다보니 기분이 묘하더라

이 길을 이렇게 또 너랑 걷는구나..

 

어쨌든 생각해보니 사야인생에 드디어 사야혼자 온전히 책임져야할 생명들이 생겼다

근데 왜 당황스럽게 눈물이나지? ㅎㅎ

 

그래 또 전혀 새로울 이 삶이 겁나고 또 설렌다

결코 쉽진 않겠지만 잘할 것 같고 아니 간절히 잘 해내고싶다

거창하게 이건 어쩌면 신이 사야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야가 이 곳에서 울 새깽이들과 잘 살아낸다면 그거야말로 사야가 그리도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삶일테니까

 

이런 너무 귀하셔서 사료만 주면 며칠이라도 굶으시는 울 새깽이들 밥줄 시간이다

그래 이 놈들아 할망이간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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