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산너머 산

史野 2014. 9. 9. 20:26

 

의도한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추석날 동태전을 먹게 되었다

저녁겸 안주겸 몇 점 집어먹고 잘게 찢어 새깽이들과도 나눠먹었다.

 

이번에 새깽이들을 다 데려온 이유는 새깽이들이라도 있어야 덜 외로울것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기 상황이 변해서이다.

 

첫집이 또 팔려서 오월말에 새로 이사를 들어왔는데 주말에만 온다

가운데 집은 주말에도 잘 안오는데 어쨌든 결론은 이 세 채에 사야 혼자산다는 것

지난 번 잠시 다니러 왔다가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땐 몇일이었는데도 마당에도 나가기 싫더라니까

 

개들이 네마리나 왔다갔다하는 지금은 좀 다르지만 사실 무서움이나 불안감이 가신 건 아니다

교류는 거의 없었어도 입구쪽에 사람들이 상주했던 거랑 아닌 건 차이가 넘 크다

이번 주말엔 그나마 추석이어서인 지 오지도 않았던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체감하는 느낌이 다르다

 

지지난 금요일밤 남친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 그것도 그 절에서 대기중이란 말을듣고 당장 짐싸 올라올때는 그래도 올 곳이 있어서, 이 집을 팔지 않은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었는데 막상 와 지내보니 앞으로 뭘 먹고사나 만큼 이곳에서의 매일매일도 막막하다

 

매일을 새로 살아도 내일이 또 있기를 바라는게 사람이니까 아니 그게 지금까지 살아온 사야니까

정신력이 약해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겨우 술을 마시며 이 삶을 이 악물고 살아내는 여자 아니 사람

그래서 남편도 정신과샘도 포기하고 인정하게 만든 실제로는 너무나 독한 년

 

삼십년이 넘는 세월을 소위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그리고 한국에 나올 때도 사야는 정말 사야가 여기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부끄럽게도 집에 혼자있기 싫으니 출근하지말라거나 차라리 날 주머니에 넣어가라고 출근길 남편을 붙잡고 떼를 쓰던게 아직 십년도 안된 사야 모습이다

 

그래 어쩌고 저쩌고 해도 사야는 여전히 미친듯이 울다 통화한 누군가에게 목소리가 참 해맑더라고 좋은 일있어 전화한 줄 알았다는 이야길듣는 현재진행형

산너머 산은 맞고 고통스러운 것도 여전하다만 그 고통을 느끼는 자리는 많이 진보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아니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이 삶에의 의지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로 증명되는 이 끈기

 

이걸로만 봐도 옆집이 아니라 옆나라가 없어진데도 살아남을 강력한 포텐인데 또 뭘 여기서 이렇게 징징대고 있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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