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막막한 길에 들어섰다.
술을 마셔도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끊임없이 잡꿈에 시달린다.
담양에 내려온 다음 날 부터 남친의 하우스에 나가 삭신이 쑤실만큼 일을 한다만 아직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도 일어날 수도 없을 것같이 쑤시는 몸을 가지고 나가고 또 나간다.
일을 하니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니 미친듯이 먹고(사야가 먹는 미친듯이는 남들 평균 식사량도 안된다만) 이 짧은 시간안에 거의 손하나 까닥하지 않던 여주랑 비교 또 삼킬로나 늘었다.
이번에 드디어 삼사개월만에 이십킬로 가까이도 찌던 그 몸무게의 비밀을 알았다.
사야는 몸마저도 움직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 특이한 정신적 메카니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아주 절실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그래 사야는 요즘 아침에 일어난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자연은 이리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데 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걸까.
오해는 마라.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없더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만큼은 아니까.
망가지면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겠다고 버티던 휴대폰이 어제 아침부터 불통이었다.
일만 하다보니 휴대폰도 안되고 인터넷도 안보는 시간이 삼십시간 넘게 흘러가도 또 별 상관은 없었다.
물론 완전히 맛이 갔다고 생각했던 폰을 오늘 들어와 켜보니 다행히 작동도 되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불통 메시지도 줄줄히 들어와 고맙더라만.
거기다 개인 휴대폰을 갖게 된 것도 겨우 육년이긴 하다만 우짜든둥 내일은 드디어 스마트폰이라는 걸로 갈아타야할 것 같다.
오늘은 이런 저런 볼 일로 잠깐 읍내에 나간 김에 아주 짧게 머리를 잘랐다.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한 건 십 년 가까이 되지 않나 싶다.
물론 사야인생에서 이런 순간이 한 두번은 아니다만 누군가에 보여지는 건 아무 상관없는 그런 스타일, 샤워하고 말리기 편한 딱 그런 모습이어도 참 오랫만에 기분이 좋더라.
그 기분을 몰아(?) 남친이 애용한다는 담양도서관에 들려 지금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미술관련 서적들도 몇 권 빌렸다.
집에 있는 그림책들도 안 들춰보던 시간이 얼마인데 왜 갑자기 이 시점에 그 도서관에서 그 책들이 뽑아들고 싶었는 지.
만약 떠돌지 않고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 미술관련 일을 하고 있다면 사야는 이 인생이 살만한 거라고 느낄까.
책장을 넘기며 그림들을 보다보니 ' 아 너도 하고싶은 일이 있던 사람이구나' 싶어 짠하긴 하다.
근황을 전한다는 게 또 말이 길어졌다
지금 여긴 비가 미친듯이 내리고 사야는 일단은 쭈그리고 앉아 수천개의 딸기잎을 따며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