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혹은 나이에 대한 단상
젊어보이고 어려보이고 싶은 건 모든 여성들의 소망일거다. 그리고 이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거다.
예전에 마흔이 되던 그녀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어느 인용문인데 마흔을 맞아 드디어 여자가 아닌 인간이 되었다고 축하를 할려고 보니 인간이 아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 년이 되어있더라는 뭐 그런 글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 나이가 되니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어렴풋이는 알거 같다.
나는 나이보다 많이 젊어보이거나 늙지 않으려는 발버둥으로 보톡스를 맞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가능하면 오랫동안 매력적인 여자이고 싶다. 이건 물론 여자뿐이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일거다. 이성에게 매력적인 모습이고 싶은 소망. 그러니 남자들이 중년에 흔들리고 젊은 여자들을 찾고 하는 거겠지. (하긴 뭐 요즘은 여자들도 그렇긴 하다만.) 아직도 남성이라는 걸 아직도 여성이라는 걸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은 처절한(?) 소망.
마유미는 지난 일월에 만으로 마흔 일곱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세월의 흔적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건 더이상 여성이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닮고 싶다는 생각. 저렇게 나이들어갔으면 좋겠단 생각.
리즈도 지난 11월에 마흔 일곱이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마흔의 그녀일뿐이지만 7년간 보지 않았어도 나는 안다. 그녀가 아주 괜찮은 인간으로 나이들어가고 있을 거라는 걸. 난 7년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리즈처럼 저렇게 나이들어가고 싶다고..
어제 이야기했던 이 아파트에 살던 독일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생각보다 모임은 괜찮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런데 마유미를 만나고 와서였나 갑자기 내가 왜 그녀들을 좋아하지 않는 지 알게 된거다.
그녀들은 위의 그녀들과 달리 오직 여자이고 싶은데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살고 있더라는 것. 아 이 차이였구나하는 깨달음. 물론 그 중 하나는 나이가 이리스나 나보다 한참 어리긴 하지만 무슨 대단한 파티도 아니고 친구들 모임에 나오는데 젖통(가슴이란 고상한 표현을 해줄 수가 없다)이 반은 드러나 브래지어까지 보이는 옷을 입고는 자신이 얼마나 이쁜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과시하지 못해 안달을 하더라는 것.
물론 그 젊음으로 나이많은 남자와 사는 그 애나 세살연하의 남편에게 어떻게든지 어려보이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이리스의 심정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만 꼭 상대가 그 미모나 젊음때문에 자신을 선택한 건 아니지 않는가.( 아 이건 물론 누구에게도 미모로 선택받을 수 없었던 내 자기합리화인지도 모르겠다만..^^;;)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내가 그녀들을 불편해 하는 건 내 안에 내재된 그녀들과 같은 그 욕망을 그녀들이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라는 보너스 깨달음까지 얻고 보니 착잡했던 어제밤.
세월이 흘러 주름이 느는 것과 동시에 깊어져가는 게 사람의 눈빛이다.
피부나이는 속일 수 있어도 인생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 눈빛의 세월까지 속일 수는 없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그냥 생기는 주름과 달리 눈빛의 깊이는 얼마나 고민하며 인생을 살아왔느냐의 성과물이라는 게 다르겠다.
그러니까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보인다는 건 어쩌면 욕이다. 부유하게 살았건 가난하게 살았건 인생의 고단한 흔적이 묻어나오지 않는 삶이라면 어떤 삶이였겠는가.
결국 사람의 나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거다.
내가 니콜 키드맨을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 건 나랑 동갑인 그녀가 늘 스물다섯으로 머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이상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해탈한 사람들이야 어린아이처럼 맑디 맑은 눈빛을 소유하고 있겠지만 우리같은 범인들이야 아무생각없이 살지 않는 한 어찌 이 고통스런 삶에서 빗겨갈 수 있는가.
이 부조리 가득한 세상, 아침뉴스부터 심야뉴스까지 흐믓한 뉴스보단 분통터지는 뉴스가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말이다.
작년에 앙리 카티에 브레송 다큐멘타리 영화를 봤다. 브레송이 찍은 인물사진을 놓고 앙드레 브레송과 몇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심각한 표정의 마릴린 먼로였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뇌쇄적인 눈빛이 아니라)
한동안 먼로의 남편이었던 미국작가 아서밀러가 이 사진이야말로 마릴린을 가장 가깝게 표현한 사진이라는 거다. 먼로는 늘 자신의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더 나은 모습이기 위해 애썼다면서.
별 관심없었던 마릴린 먼로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 괴로움이 그녀를 죽음까지 몰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만약은 없으니까 단정할 순 없지만 그녀가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였다면 오드리 헵번처럼 아름답게 늙어갔을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성형수술을 하고 주름살 수술을 받고 보톡스를 맞아가며 힘겹게 젊음을 유지할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태반주사까지 맞는다는 여자들, 아니 박완서 소설에 나오던가 아예 태반을 먹는 다는 사람들까지도 이해해줄 수 있다.
단지 그냥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적인 자신감만으로도 나이듦을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들중에 하나로 나이들어가면 좋겠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곱게 나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만 더 나이가 들더라도 눈가의 주름살이 추해보이지 않는 눈빛을 소유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2007.02.19. Tokyo에서..사야
말씀드렸듯이 내일부터 바쁩니다. 지금상황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틈틈히 들여다야 보겠지만 글은 다음달이나 되야 올릴 수 있겠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또 기운내서 짧게라도 여행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빌어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