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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이발사와 노무현대통령

史野 2006. 11. 29. 14:28

어제 빨래를 개며 티비를 틀었더니 효자동이발사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영화를 일본에 온지 얼마 안되어 극장에 가서 봤다. 지금이야 한국영화가 많이 상영되니 다 찾아가서 보진 않지만 그때만해도 한국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게 너무 신기했기도 하고 말이다.

 

그 황당하고 웃기는 영화를 보고 나서 어찌나 가슴이 답답하고 살이 떨리던지 내려와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켰더랬다. 그렇다 내 안의 트라우마, 잊혀진줄 알았는데 영화를 매개로 세포구석구석까지 잠재해 있던 공포감이 스물거리며 올라와 미칠 것 같았다.

 

박통이 죽던 해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미 생리도 시작했고 알건 다 아는 나이이기도 했다. 독재자 아래 말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툭하면 잡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던 그 시절. 남산밑에 살아서였는지 남산에 끌려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더 와닿던 때.

 

국가의 권력에 대항할 수 없던 그 파쇼권력이 아닌 자유를 실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 나이 많지도 않건만 격세지감을 절절히 느끼며 몸을 떨 수 밖에..내가 두려워하는 건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내 삶이 흘러가는 그런 상황.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그 자유가 넘치다 못해 방종의 수준이라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 대통령이 무슨 옆집 개냐? 툭하면 미친놈 어쩌고 저쩌고 난리들이 아니니 기가막힌다. 드라마속의 누구랑 비슷하다는 막말을 보곤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누가 드라마왕국아니랄까봐 국회의원들은 앉아서 드라마만 보나?

 

우리가 과연 성숙하고 발전한건지

 

요즘 대통령이 임기를 못 마칠 수가 있다란 말가지고 말들이 많다. 물론 대부분이 비판기사다. 의무가 어쩌고 저쩌고 국민을 협박하냐던데 언제부터 그런 신문들이 국민을 대단하게 생각했다고 국민타령이냐. 그리고 어찌되었건 투표로 뽑아놓은 대통령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탄핵했던 이들이 누군데? 자기들은 지들 밥그릇챙기려고 맘대로 탄핵해도 되고 대통령은 스스로 그만두면 안되는건가? 처음부터 이 정권이 혼란스럽게 몰고 가기 시작한게 누군데?

거기다 도대체 대한민국역사에서 누가 제대로 임기를 채웠는가? 이승만도 하야했고 박통은 총맞아 죽었고 전통은 나눠먹기아니었던가.

 

헌법을 맘대로 고쳐 종신대통령이 되어 총맞아 죽었는데 그 딸내미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사과한마디 없이 헌법의 신성함을 외쳐대고 거기다 그 후광으로 이젠 대선후보로 나선단다.  

 

나는 노빠도 아니고 노대통령이 다 잘한다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런데 어차피 아무 힘이 없던 사람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었을때는 아주 잘하기란 힘든게 우리나라 상황이다. 뭐 연줄이나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단지 국민들이 밀어서 뽑았는데 그럼 그 국민들은 뭘 어떻게 도왔는데? 대통령이 임기에 최선을 다해야할 의무가 있다면 국민들도 뽑아놓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때까지 밀어줘야할 의무도 있다.

 

난 지금도 당시 탄핵생각만 하면 울분을 참을 수 없는데 기사들을 읽다보면 사람들은 벌써 그 울분을 잊은거 같다 그러니 안그래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탄핵의 책임이 있는 한 당이 그렇게 싹쓸이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도대체 한나라당이 차떼기와 탄핵으로 인한 국정혼란에 대해 무슨 책임을 졌는가? 그런데 이젠 이 나라가 이렇게 가는 걸 못보겠다고 또 어느 분은 말씀을 시작하셨다고? 거기다 대통령은 대학나와야한다고 막말이나 외치는 어떤 여자는 그 당의 최고위원이 되어있다.

 

그런데 슬프긴 하지만 그 여자의 말이 맞다. 대한민국에선 대학나온 사람 그것도 최고대학을 나와 주변에 동창이며 선후배며 권력과 재산을 가진 배경이 빵빵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대통령해먹기 힘든 나라니 말이다.

 

권위주의를 내놓고 시작을 하니 (그게 제대로된 민주주의다) 이건 개나 소나 나서서 난리들이다. 원래 대단하신 보수주의자들께서는 여전히 권력을 가지곤 대통령을 못잡아 먹어 안달이지 않은가? 아니 단 한번이라도 그 못배우고 배경없는 대통령을 제대로된 대통령으로 인정했던 적이 있던가?

 

광주사태로도 모잘라 수천억을 해먹은 모대통령께서는 29만원밖에 없다면서도 잘먹기 잘살고 워낙 해쳐먹은게 많아 많이 흘리고 다녔다보니 여전히 어르신 소리를 듣고 있는데 발로 뛰는 힘없는 대통령은 놈소리 들으며 욕만 먹는다. 그리고 그게 이 나라의 현주소다 

 

그 쪽은 그 쪽이라고 해도 개혁파라며 난리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지난 선거에서 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라크파병문제며 한미FTA문제며 많이 달라졌을까? 반미면 어떠냐했던 노대통령이 미국가서 굽신거리자 금방 또 난리던데 당시 노통말대로 대통령이 되보니 다르다는 말이 틀린게 있는가. 나야 이라크파병문제로 노통에게 무진장 실망을 했지만 작전통수권도 없는 나라에서 노통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거라곤 믿지 않는다.

 

임기단축발언을 생각해보면 노통이야말로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안그래도 대통령의 임명권조차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레임덕현상에 시달리는데다 선거승리는 맡아놨다는 기분으로 이미 줄서기에 들어가 민생엔 별로 관심도 없는 거대야당이며 차별화로 발버둥치는 여당이며 개판오분전인데 그렇게 일년을 더 버티느니 어쩌면 그냥 해먹을 사람들이 해먹어버리는게 우리나라에 더 좋을 수도 있지 않겠냐.

 

오늘도 기사하나 보니 민생문제에대한 예산처리가 국회에서 올해 안에 해결되 기미가 안보인다니 열불이 터질 일이다. 그것도 모잘라 올해 안에 해야할 예산집행때문에 여기저기 공사하느라 난리라고?

 

모 대통령들처럼 임기기간에 뭔가 해쳐먹어버릴 분도 아니고 권력욕에 목매는 것도 아니니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발전한게 맞다. 어느 대통령이 권력에 목매지 않았던 적이 있었냐고??

 

어떻게 도와서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할까를 걱정해도 모자랄판에 서로 비판만 해대는 꼴에 하도 분통이 터지다보니 오바한다만 이젠 제발 우리 보통사람들이라도 남의 탓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단 하나라도 우리도 잘못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단 말이다.

 

왜 내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손가락이나 욕하고 앉아있지 말고 피해의식에 시달리지도 말고 자기자리를 지켜나가면 안되는건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 욕하려면 그 대통령을 뽑은 내 판단력을 욕하며 반성해야지 왜 애꿎은 손가락은 탓하는 거냐고?

 

어떻게 한술밥에 배부르나. 식민지 시대 겪고 전쟁겪고 열나게 독재정권겪다가 겨우 바람잡히니 내내 권력욕에 몸무림치던 노인네들이 권좌를 차지하고 앉았다가 보통사람이(그 보통사람말고) 대통령된지 이제 겨우 4년이다.

 

노대통령은 확실히 우리나라에선 시기상조였다. 아직도 박통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쌔고 쌨는데 진정한 자유보다 먹고 살것만 충분하면 노예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사회에서 어찌 대통령이 온전하겠냐고.

 

부동산정책 물론 잘못되었다. 이혼하고 한국가서 살아볼까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한국가면 집한칸 얻고 살기 힘들어 포기했을 정도로 집값문제는 놀랍다.(아니 잡한칸 얻기 하나도 안 힘들다. 단지 삐꺼번쩍하게 살고 싶은 허영만 버리면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 해도 나 역시 와 한국에선 집으로 돈벌기 쉽구나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숨기지 않겠다. 그리고 이게 나만 그런가? 우리는 다 부동산으로 돈버는 일에 관심들이 많다. 그래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다 그런다고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그렇게들 합리화를 하고 산다. 그래서 부페에 가서 먹을 것을 싸들고 나오고도 자랑스럽고(이건 엄연한 도둑질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데 더 해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맨날 비리 저지르는거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이상하다. 그러니까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정치하는 사람들이 다 그나물에 그 밥이라는 사실도 안 변할거다.

 

모님말에 의하면 비싼 레스토랑에 와서 비싼 밥을 먹는 사람들도 레스토랑물건을 훔쳐간다더라. 그 비싼 스위스땅에 유럽여행까지 가는 살만한 사람들이 레스토랑 아침부페를 싹쓸이를 해가는 통에 한국인관광객은 더이상 받지 않겠다는 호텔도 있단다.

 

우리가 이렇게 된데에는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도 크다는건 백번 말해 입만 아프다. 바른 역사에 대해 눈감고 베트남전쟁 문제에 눈감고 친일파문제며 독립군문제며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는데 주몽이나 보며 고구려역사는 우리거라고 백날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전엔 정말 이렇게 떠돌며 민간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요즘은 더이상 내 나라편이 되어 좋은 말들을 하고 살 수가 없다. 굳이 바깥에 나와 내 나라사람들을 등쳐먹고 사는 나쁜 사람들때문만이 아니라 여행을 하다 만나도 반갑기는 커녕 몰려다니며 추태를 부려대는 통에 한국인인척을 일부러 안하게 된다.

 

내 블로그에서야 그런 일이 없긴 하지만 이런 글엔 또 그럼 이땅을 떠나라 이런 댓글들이 줄줄히 달리던데 다행히도 나는 이미 나와산다.

 

세금도 안내는 주제에 무슨 말이 많냐고? 세금은 안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매년 왠만한 사람 연봉만큼 외화갖다 바친다.

 

박통때 양공주들에게 애국하는 거라고 했다더만 나야말로 남편이 한국인도 아니니 몸팔아 외화벌이하는 딱 그 꼴이랑 다를 것도 없다.

 

그럼 국적이라도 반납하라고? 내가 한국국적을 갖고 있어서 내 떠돌이 인생에 도움되는 거 별로 없다. 외국에 살면 재외공관에 신고하라길래 일부러 갔더니만 그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그냥 가라더라

 

도쿄에와선 이번 여름에야 새 여권신청하러 갔다가 재외국민신고를 했다. 홍콩에서 이라크전쟁터지니까 혹 비행기띄울 일 생길까봐 인원파악 들어가고 한국인인 내 이름까지 적어간건 독일영사관이었다. 날씨 좋다고 근무시간에 한국회사 지사장에게 전화걸어 골프치러가시는 대사님이 내가 겪은 재외공관 행태다.

 

그래도 미안하지만 국적만은 못바꾸겠다.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으며 한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관계로.. 

 

그런데 한국인으로 산다는 건 참 어렵다. 그리고 앞으로는 한국욕이나 하고 살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한국에 갈때마다 공항버스에서부터 지하철안에서 전혀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며 길거리 쓰레기더미에 이르기까지 눈살 찌푸러지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내가 한국인인 관계로 결국 그건 내 자화상, 혹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내 업이기도 하겠지.

 

날을 깨질듯 투명하기만 한데 분통터져하다 창밖을 바라보니 창가에 읽으려고 쌓아놓은 어마어마한 책들이 보인다.

 

저 책들을 다 읽으면 나는 왜 우리가 이런 모습인지를, 그래서 한국인을,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러면 자랑스러운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람직한 정체성이라는 것을 갖게 될까.

 

답답하다.

 

 

 

 

 

 

 

 

2006.11.29. Tokyo에서 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