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독일이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날씨가 안 좋은 곳이 있다면 뮌스터다..ㅎㅎ
가끔 도쿄도 그렇긴 하지만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하는 열흘넘게 비가 내리고 흐린 그런 날씨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가 있다.
그래 9월중순에 가면서 골덴바지며 쉐타며 싸들고 갔는데 이번엔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한 여름에도 정원에서 이불덮지 않고 책을 읽기란 어려운 일인데 이번엔 그럴 수 있었다지.
기분 좀 괜찮으신 날은 아버님도 저렇게 잠시 나마 나와 계시고..
책도 사야하고 해서 하루 시내로 외출했던 날은 얼마나 덥기까지 하던지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셨는데 세상에나 그 날은 독일전체에서 뮌스터가 가장 더웠다니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ㅎㅎ
가장 다행이었던 건 애보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 날씨가 좋다보니 이렇게 정원에서 놀릴 수가 있었다는 것.
요 놈 진짜 무지 귀여운데 요런 놈 하나 키울래 묻는다면 노 탱큐다..ㅎㅎ
메트로폴리스 그것도 시내 중심가의 고층건물에 사는 내가 거실에서 보는 풍경이 이건데
시댁 거실에 앉으면 딱 이 모습. 아무리 지구를 삼분의 일바퀴를 돌아갔다고 해도 별 세계임에는 분명하다.
아버님도 아이도 누운 밤이면 시누이랑 깜깜한 정원에 누워 포도주 놓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시원한 바람이며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이며..
우리가 정원딸리 집을 사게 되더라도 이렇게 나무 많이 자란 집은 못산다고 자꾸 이 집으로 들어오라고 강조하는 시누이. 하긴 자긴 들어와 살 상황이 아니니 남의 집이 되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게 시누이에게야 최고지.
바베큐하기 딱 좋은 날씨였는데 시누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관계로 엄두를 못내다가 좀 추워지긴 했어도 신랑이 왔을때도 날씨가 좋아 드디어 불피우기..ㅎㅎ
아버님이 안 아프실 때는 등도 달고 축제분위기였는데 쓸쓸하기 그지 없다만 그래도 내 인생관은 모두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보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게 부모님들께 더 낫다라서..^^;;
어머님은 아버님 옆에 계시느라 나오시지도 못해 배달해 드려야 했지만 어쨌든 우리 둘은 저 불이 꺼질 때까지 밖에 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함께 안 떠나고 내가 더 있기로 결정.
처음엔 팔짝 뛰시고 무지 미안해 하시다가 두 분다 너무나 좋아하셨더랬는데 결국 이 날 한밤중에 아버님이 병원에 실려가셨다..ㅜㅜ
어머니와 아들.
이 정원때문이라도 이 집에서 계속 사시고 싶다는 어머니. 어제 전화에 아버님이 월요일에 퇴원하실 예정인데 과연 집으로 오실 수 있을 지 불안하다고 울먹이시던 어머니.
아버님이 첫눈에 반해 오십 년을 한결같이 사랑하시는데도 당신이 그리 좋은 아내가 아니었다고 믿으시는 바보같은 어머니.
그래서 더 호스피스로는 못보내고 끝까지 당신이 옆에서 지키려고 애쓰는 어머니.
아버님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시고 두 분께 남은 그 얼마남지 않은 시간들을 심적으로나마 행복하게 마무리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런, 날씨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쓰다가 또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우울하게 흘렀다만 어쨌든 신랑이 언젠가는 꼭 돌아가고 싶어하는 저 도시. 뮌스터.
그런데 과연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2006.10.14. Tokyo에서 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