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어느 열성 엄마를 보고

史野 2025. 1. 26. 09:59

한 엄마가 자기 아들 '구출'기라며 장문의 글을 페북에 올린 게 회자되길래 읽었다
수렁에서 건진 내 아들 수준의 눈물 나는 분투기인데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다
자신을 깨어있는, 진보적인, 비판이론을 공부한, 미국에서 제대로 교육을 아주 많이 받은 사람으로 소개하며 (대학교수던데 이건 글을 다 읽고 알았다) 이건 뭐 전지전능 수준의 자식교육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보다 더 교육을 잘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고 썼더라
(사야는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수도 없이 회의하게 되던데 )
십몇 년을 그리 정성 들인 '내가 바라던 대로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순식간에' 극우유튜브에 빠졌다며 구출해 오는데 수개월이 걸렸다는 거다
'나처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어떻게 이 사태를 막아야 하는지 구체적인 제시를 하던데 공감도 안되고

저 확신에 찬 자의식과잉도 흥미로왔지만 전적으로 극우유튜브탓을 하는 게 사야에게는 너무 놀라웠다
본인 말대로 하루 두세 시간씩 토론을 하고 온갖 다양한 경험을 시키며 그리 ' 훌륭하게' 자라고 있던 아들이라면 극우 유튜브에 빠지기 전에 의문을 가졌어야 하고 토론이 일상화된 집분위기에 맞게 최소한 이런이런 이론이 있던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었어야 정상 아니 그녀식 교육이 성공하고 있었다는 증표다

사야가 보기에 이 아들은 그동안 토론을 한 게 아니라 저 '깨어있는' 엄마에게 내내 주입식 교육을 받은 거 같다
그러다 다른 '똑똑한' 사람에게 다시 세뇌당한 거고.
구출된 아들은 과연 구출된 걸까
다시 무비판적으로 엄마 말을 믿게 된 건 아니고?
그 어마어마한 교육은 실패로 보인다면 너무 가혹한가
이 엄마는 극우 유투버 탓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의 교육이 어디가 잘못되어 아들이 그리 무비판적 수용을 했나를 먼저 따져보고 반성했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구출이 아닌 스스로 판단해서 헤쳐 나올 힘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했다
결과가 같았더라도 그건 구출이 아닌 아들의 선택이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의 구출기'가 아닌 아들의 탈출기가 그나마 더 낫달까

또 흥미로웠던 건 너무도 당당하게 '북한에는 1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더라는 것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이고 북한은 한국법으로 여전히 대한민국땅이다
그 훌륭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 이유고 말이다
(유학시절 미국에서 낳았으면 안 갈 수도 있겠다만)
젊은이들이 전투가 아닌데도 죽어나가고 교육 등등 다른 곳에 쓰여야 할 혈세가 어마어마하게 국방비로 쓰이는 나라
분단국가라 정치경제 교육 사회문제까지 영향 안 받는 분야가 없는데 관심 없는 게 뭐 그리 당당하신지
도대체 깨어있고 진보적인 인간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지 본인이 그럴진대 아들에게 뭘 가르쳤다는 건 지 모르겠더라
그녀보다 교육을 덜 받은 사야는 그녀가 내 강조하는 그 '비판이론'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글을 읽어보니 그녀가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부지원에 가서 폭력을 휘두른 젊은이들 못지않게 저런 자기반성 없는 확신범(?)들이 되는 과정도 사야는 궁금하다
혹 내가 틀린 건 아닐까, 한 번쯤 자문해 보는 게 정말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구출기를 쓸게 아니라 그리 오랜 토론교육에도 불구하고 왜 아들이 순식간에 빠지게 되었는지 분석기를 썼어야 하지 않을까
구출해 낸 아들과 달리 본인입장에서 여전히 그 수렁에 빠져있는 '혐오'집단의 그 젊은이들은 왜 새벽에 그런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자식이야기인데 모든 게 '나' 중심인 것도 그렇고
자식교육을 무슨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조각을 하는 듯이 생각하는 거 같아 사야는 살짝 무섭기까지 하던데 하필 또 소속이 미래의 교육자를 키우는 서울교대교수다
비판적인 사람도 있기는 한데 모순이 가득한 그 글에 공감하는 식자들이 많아 그것도 놀라웠다
생각이야 다양할 수 있지만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판단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이게 그 유명한 강남좌파, 패션좌파라는 건가
진짜 생각이 많아지더라
확신범들이 많으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혐오에 반대해야 하기에 비민주적인 단어인 구출을 썼노라, 하던데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숨이 턱턱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