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의 낯선 마당

여름이 오는 마당

史野 2023. 6. 14. 07:40

잔디가 또 망했다
한 곳은 자라지도 않고 한 곳은 죽어가기 시작한다
작년에는 너무 힘들었어도 예쁘게  가꾼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올해는 죽어갈걸 알고도 일을 하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옆에는 죽어가는데 빈 곳에 또 잔디를 옮겨 심다가 미친 건가 싶어 헛웃음도 났다
그래도 혹시 짧게 자르면 도움이 될까 싶어  맘 잡고 여기도 나왔던 그 가위하나 들고 잔디를 깔끔하게 자르는 중이다
너무 힘들어 거의 기다시피 하며 일하는데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만 진인사대천명

일하다 생각해 보니 산에 오르는 것도 비슷하더라
내려올 걸 알고도 오르는 거니까
뭐 거창하게는 사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죽어가거나 말거나 깔끔하게 정리하고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집 뒤쪽은 요즘 이렇다
울 호박이 화장실로 유도 중인데 그것도 맘대로 되지는 않네
저 솥에 부레옥잠을 넣어놨는데 꽃이 피려나


이 에키네시아가 사야 키만큼 컸다
처음에는 너무 짜증스럽고 황당해하다가 나무라고 생각하기로 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와인컵쥐손이도 한창이고 요즘은 이곳이 참 마음에 드는데 제일 구석이다 보니 굳이 가서 봐야 하는 단점이 있다

작년에는 접시꽃이 먼저 피었는데 벌써 미국능소화가 핀다


이 풍선초 씨를 잘 받아 고이 모셔놨는데 도저히 어디에 모셔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미치고 팔짝 뛰다가 오월말 기적적으로 찾아서 뿌렸다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는데 감당이 안될 정도로 다 발아해서 너무 감사
유홍초랑 나팔꽃도 눈물을 머금고 퇴출예정이라 같은 넝쿨성인 풍선초가 더 귀해졌다


요즘은 사야네 집안보다 집 밖이 더 예쁘다
번식력 때문에 못 키우는 개망초가 한창이다
작년에는 부지런한 아저씨가 다 잘라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는데 올해 도지를 맡은 분은 그냥 두셔서 사야 눈이 즐겁다


비가 와  쓰러져서 아님 가지를 잘라 줘야 해서 이런저런 핑계로 집안에도 작은 즐거움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