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주택살이의 애로사항?

史野 2016. 2. 3. 19:23

도시가스가 연결된 지역이라면 상관없지만 아시다시피 난방용기름도 직접 시켜야하고 가스렌지의 가스도 시켜야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화조를 비워줘야한다는 것.

눈금이 달려있는 것도 아니니 대충 알아서 비워야한다만 보통 일년에 한번 비우라는 데 사야야 혼자사는 데다 근 일년비워놓기도 했기에 삼년간 비우지를 않았다

연말에 비워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추워지고 어쩌고 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변기가 막힌 건 아닌데 물내려가는 게 영 시원치않은거다.

화장실 두개가 비슷한 현상을 보이더라는 것.


그래서 월요일에 큰맘먹고(?) 일찍 일어나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언제오시냐니까 직접 전화를 하실거라며 유쾌하게 전화를 받아주시는 어느 여자분.

사야도 전화서비스란 걸 해봤지만 전화를 끊곤 괜히 기분이 좋더라.

금방오시는 줄 오해한 사야 언제오실지 모르니까 샤워도 못하고 일찍 일어난 김에 대충 집정리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정말 백만년만에 공부(?)라는 걸 좀 하다보니 어느덧 어두워져버렸네

아니 뭐야 안오셨네..ㅜㅜ


화요일 새벽에야 잠들어 꿀잠을 자고 있는 데 미친듯이 짓는 울 시키들.

평소같으면 무시하고 잤겠지만 벌떡 일어나 밖을 보니 분뇨차가 집앞에 와있더라는거다

자다가 전화소릴 못들었나 확인해보니 그것도 아니네

우짜든둥 잽싸게 옷을 걸치고는 나가봤더니 이미 저 멀리 가고있는 분뇨차

이보시오 나 여기 있소 아니 어딜간단 말이오 목메여 불러봐도 소용없고..

살다살다 떠나는 분뇨차가 그리 간절하고 야속할 줄이야..ㅜㅜ


정신을 차리곤 업체에 전화를 해 상황설명을 하며 다시 불러올 방법을 물었더니 역시나 유쾌하신 아주머니께서 그럴리가 없단다

당신께서 아침에 확인을 하셨는 데 이 지역은 오늘 못오신다고 했다나? 아니 그럼 진즉에 말씀하시던가..흑흑

절대 전화를 안하고 가셨을 리가 없다며 내일 전화할거라시는 데 사야가 그럼 꿈을 꿨다는 말이냐

뭔가 찝찝하고 자다깼으니 머리도 아프고 하루를 더 견뎌야하는 건가 짜증도 나고 이러다 정화조가 마당으로 넘치는 건 아닌가하는 공포에 밥맛도 없더라니까..ㅎㅎ


거사를(?) 앞두고 있으니 어젠 일찍 잠자리에 들고는 역시나 긴장한 탓인 지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어쨌든 오늘 오셨는 데 사야가 잘못본게 아니라 다녀가신게 맞단다. 황당하게도 이웃에서도 부탁을 해서 거길 비우고났더니 차가 다 차서 그냥 가신거라나.

어차피 잡아세웠어도 소용없는 님을 떠나보냈다고 그리 애닯아하고 있었던 거였네..ㅜㅜ


그렇게 삼일간을 정화조에 얽매여있었다. 정화조는 사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게 묻혀있어서 마당에 넘치고 뭐 그럴 상황은 아닌 걸 확인한 건 일단 참 다행이다

먹고 싸고는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생존행위이고 수만번을 반복하고 있는 행위이기도 한데 사야는 여전히 정화조를 비우는 일은 벅차다..ㅎㅎ


뜬금없이 저 많은 분뇨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농사지을 때보니 딸기농사도 블루베리농사도 계분이나 우분같은 걸 쓰던 데 모든 영양소를 걸려내고 나온 분뇨들이 어찌 영양소가 되나 신기하기도 하다

토지소설속에서 임이네가 이웃집 호박을 훔치는 대목이 나온다. 그땐 그깟 호박이 뭐라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짧게나마 전문농사(?)도 지어보고 마당에서 채소류도 키우다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거름이 충분한 땅에서는 모종하나에서도 엄청난 열매가 열리는 데 아닌 땅에서는 한 모종에서 제대로된 토마토하나 얻기도 힘들더라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많은 이 세상에서 사야가 뭘 생각해봤자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다만 며칠동안 순환체계랄까 본질과 형태의 문제랄까 덕분에 뭐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다만 육룡이나르샤때문에 무협같은 거 엄청 싫어하던 사야가 칼싸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왠지 말이 되는 것 같고 사야도 막 칼싸움을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ㅎㅎ

내가 아는 것들이 다는 아니라는 뭐 그러 거?


그래 결론은 또 똥치우는 문제로 넘 멀리 왔다만..^^;

나이가 들 수록 왜이렇게 궁금한 것도 신기한 것도 이해 못하는 것도 많은 건 지

어쨌든 이제 한동안 해방이다

오늘도 그분들은 이웃집과 협력(?)해서 매년 같이 비우라며 가셨는 데 식구수도 체류기간도 다른 데 어찌 그러겠냐

사야가보기엔 사야가 여기 혼자사는 한 이년에 한번 비우는 게 딱 맞는 거 같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