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사야의 기쁜 날

史野 2016. 1. 19. 01:35

기쁜 날이라면 좀 오버일까? 그냥 평온한 날이 맞을까? ㅎㅎ


새벽에 복면가왕 다시보기를 틀어놓고는 침대에 누워 듣다가 잠이들었는 데 세상에나 깨어보니 한시인 거다.

보통은 자다깨다를 반복하기 일쑤인데 한큐에(?) 그리 푹자다니..

거기다 이불속은 어찌나 따뜻하고 화장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 지

휴대폰으로 확인해보니 그 시간에도 영하 4도인가 하던 데 무슨 전쟁통은 아니지만 갑자기 이 추위에 이리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왜그렇게 감사하던지..ㅎㅎ

일어나 장보러 가야하는 데 하며 뒤척이다 또 까무룩 잠이들었다 깼더니 이번엔 다섯시가 넘었네..^^;;


화장실에 갔더니 물도 나와..ㅎㅎ

아직까지는 한파에 얼어 물이 안 나온 적은 없었는 데 물파동을 겪은 후 라서일까 그저 감사하더라

사야는 요즘 정말 물파동의 후유증(?)을 제대로 겪고 있는 데 물이 나오면 그냥 좋다

심지어 샤워를 하고 나면 다행이다 내일 물이 안나와도 괜찮겠다, 이런 반응까지..ㅎㅎ


우짜든둥 커피마시고 역시나 식사를 거부하신 울 호박양은 무시하고 바리만 멕이곤 텅빈 냉장고를 보다가 집에 있는 모든 육수를 동원해 황태국 끓여 밥말아 먹었다

그리고는 난로에 불을 지폈는 데 역시나 한방에..ㅎㅎ

정말 요즘은 99.9프로의 성공률을 보이는 데 참 고마운 일이다

낭만으로 피우는 게 아니면 붙이느라 애먹는 다던 지 아님 붙였다가 꺼지던 지 하면 진짜 스트레스받는 다니까

이런 시골에서 언제든지 금방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심리적인 효과도 참 대단한 일이다

이삼년만에 갈아야한다는 연통을 그 배로 쓰고 있는 데도 여전히 난롯불이 붙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고 말이다.


그리고는 두 놈들을 화장실 가자며 데리고 나갔는 데 반달인 데도 너무나 밝더라

달이 없으면 사야네집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완전 깜깜이라 늦게나가는 날은 휴대폰 후레쉬기능을 써야하는 데 오늘은 완전 밝음

거기다 구름도 좀 있어서 달이 숨었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데 참 신기하고 좋았다

달이 사라지면 정말 확연하게 주변이 어두워지는 데 그때 놀라 하늘을 보면 대신 별은 더 밝게 빛나고 말이다

짙은 구름이 아니라 나왔다 숨었다를 반복하는 데 그게 막상 사야에겐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는 거니 어찌나 우습던지

폴짝폴짝 뛰며 달그림자놀이를 했더니 참 좋더라.


백프로는 아니지만 한 삼십프로는 왜 사야가 오늘 그리 평안했었는 지를 안다

물론 그 칠십프로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 삼십프로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면 사야 조금은 온 거 맞지 않을까

아 젠장 사야는 술취한 것도 아니고 술은 이제야 마시기 시작하는 데 갑자기 또 스스로 감동해서 막 눈물나..ㅎㅎ


정말 사야는 이런 날의 평온이 여전히 벅차고 잘 믿기지 않는다

가장 벅찬 건 사야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그 칠십프로겠지만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다

늘 그랬거든 단 한번도 진심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부모역할이 컸겠다만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게 사야가 모르겠다는 그 칠십프로에 들어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야는 이제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써야하는 삶에서는 최소한 벗어났거든

울 호박이 사랑은 받고 싶다만 그 나쁜년(!)은 결코 사야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는 않을거다..ㅎㅎ


물살이 아주 쎈 곳의 징검다리를 건너온 기분이다

안다 그 징검다리는 무한히 반복될 수도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산다는 것 인생의 기대치 뭐 그런 게 문제겠지


아 정말 간절히 그런거면 좋겠다

갈 길이야 멀겠다만 이게 자유로와졌다는 흔적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