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추억돋는(?) 사진 ㅎㅎ

史野 2016. 1. 8. 23:22

 

 

 

 

오늘 자다깨보니 난데없이 저 아가 사진이 도착했고 야가 누구고 여긴 어디냐고 묻는 친구

웃기는 지지바 기억력좋은 사야가 설마 그걸 모르겠냐

지 아들이고 아일랜드지

저 놈이 올해 고삼이되니 참 세월이란..

이 놈의 지지바도 추억여행중인가 ㅎㅎ

 

사야네 사진도 있다며 보내온 저 사진을 지가 찍었다나

둘다 위클로우 산맥은 맞는데 뒷 배경을 봐라 아무리 아일랜드가 사계절이 불명확하긴해도 같은계절은 아니다. ㅎ

 

첫사진은 99년도 여름 친구네가 더블린에 놀러왔을 때고 사야네 사진은 98년 삼월 아일랜드 가자마자..

사야도 태어나서 저런 풍경을 본 건 처음이었으므로 현상해서 여기저기 보냈었는 데 저 사진을 친구가 여전히 가지고 있다니 신기하더라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사진현상해서 막 보내고 ㅎㅎ

정신차리고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오랫만에 그때 생각을 해보다가 갑자기 소름이 확 돋는거다

 

사실 사야가 어제 아니 엄밀히는 오늘 새벽에 저 방치해두었던 자명종라디오를 침대옆에 연결해놓고 아침에 깨어 라디오를 듣다가 다시 잠들었었거든.

 

저 라디오는 사연이 많다만 생략하고 우짜든둥 아침잠 많은 사야를 걱정해 시부모님들이 사주신거다

소니다만 ㅎㅎ 독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반적인, 알람으로 소리대신 맞춰진 주파수의 라디오방송이 나오는 것

그래서 시간도 전파수처럼 지가 알아서 맞추는 데 여긴 독일이 아니니 그건 불가능..ㅎㅎ

 

그리고 저 라디오를 선물받은 건 딱 저 두 사진의 사이인 98년도 말.

그래 우연이 맞겠다만 사야에겐 이런 일이 남들보다 자주 일어나서 뭐랄까 기분이 쌩할 때가 많다

하필 왜 사야가 저 라디오를 연결하자마자 이 웃기는 지지바는 저 때 사진을 찍어보내고 난리냐고 ㅎㅎ

 

우짜든둥 저 라디오는 사야에게 시부모님의 사랑이었다

이건 왜 사왔냐니까 넌 혼자는 못일어나니까 가장 필요한 물건이라 생각했다며 당당히 말하던 샤야의 시엄마

하긴 시댁가서 깨우기 전에는 일어나 본 적이 없었으니 뭐 무리는 아니었다만..ㅎㅎ

어찌 저건 챙겨 올 생각은 했는 지 생각해보면 참 고맙고 따뜻한 물건일세..

 

기억력이 좋은 사야는 이럴때 막 수십시간 분량의 만남과 그 속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시부모님과 나눴던 얘기나 그때 친구가 입었던 원피스며 하나하나 다 생각난다

 

어제 누군가는 전화를 안하는 건 물론이고 오는 전화나 문자도 씹는데도 여전히 소통하는 건 사야가 가진 진정성때문이 아니겠냐고 극찬(?) 하더만 사야가 볼 때는 기억력때문이 아닌가한다

정말 사야는 자신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대들의 옛날을 있었던 그대로 복원해주거든 ㅎㅎ

 

아 또 우짜든둥 그립다 아일랜드 아니 더블린

말했듯이 신랑이 더블린 술집은 우리 마누라가 다 먹여살린다던 그 시절

그러면서도 끝까지 기네스랑은 친해지지 못 했던 날들 ㅎㅎ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슬프다만 더블린은 남편과의 추억보다는 사야가 그냥 막 혼자 미친척 살던 자유롭던 도시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언어때문인 데 일단 영어는 독일어와달리 사야가 잘했던 말이니까

나중에 일년도 안되는 홍콩생활을 빼고는 독일 중국 일본까지 생존언어를 배워야했지만 더블린은 아니었으니까

아 그때 사야 런던 최고급호텔 총매니저랑도 십분 가까이 통화하며 막 조목조목 따지고 그랬었는 데 ㅎㅎ

물론 젊어서 그랬다

 

아 그러고보니 이것도 사야가 경험했던 참 아름다운 일이었네

앞뒤 못가리고 마구 흥분해서 총지배인 바꾸라고 그랬었는 데 그때 그 지배인이 정말 프로정신 투철하고 예의바르고 참 멋졌었는 데..

 

아 벌써 술이 취했나 추억에 취했나

이 자동반사적인 기억들을 어쩌니.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이 모든 건 언어가 죄다 ㅎㅎ

아까도 또 유입어를 따라갔다가 어떤 포스팅을 읽게 되었는 데 한국말도 아니고 독일어로..

독일어로만으로 본다면 내 결혼은 잘못된 결정일거란 말이 있더라

또 소름 돋았었슴 ㅎㅎ

 

그래 추억이건 뭐건 인간은 결코 처음으로 인지한 언어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어란건 그 사회적 의미와 문화까지도 결합되어 피보다도 진하다

그래 그런거라구

 

사야가 한국에 돌아와 가장 자유스러운 건 그 언어다

그 한국어에서도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가장 기본인 게 그 언어체계인 것 처럼 말이다

엄마품이 아니라 언어야말로 진정한 고향인 것 같다.

그게 어떤 여건인 지 였나랑 아무상관없이 사야는 한국말을 쓰며 살고 싶었다고..

 

아 사진 올려놓고 잊을 뻔 했네

추억이고 뭐고 삶은 지속되야하니까 ㅎㅎ

멸치간장도 걸렀고 서리태차도 끓였고 자몽껍질효소인가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