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아련한 추억

史野 2015. 11. 21. 05:16

응답하라 1988

참 가슴찡한 드라마다

타임머신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닌 것 같다. 그냥 이 드라마를 보고있자니 사야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숨쉬고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드라마다보니 넘 오버해서 완전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던데 솔직히 1988년은 드라마처럼 그리 촌스럽고 가난하고 그러진 않았잖나?

바나나가 귀했던 건 칠십년대고 그땐 가공식품들 엄청 나오고 슬라이스치즈며 원두커피 유행하던 시절 아니었나?


어쨌든 주인공들이 71년생들이니 사야보다는 네 살 어리지만 그냥 사야도 그들처럼 고등학생시절이 기억나더라.

정말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소품들의 디테일이며 수학여행가서의 장기자랑이며 독서실 풍경이며 사야가 살았던 시간이었음에도 또 전혀 다른 세상같기도 한 완벽한 추억속으로의 여행.

사야도 그때 친구하나랑 수학여행 총책임자맡아서 수학여행 계획하고 놀던(?) 애들이랑 지금입어도 민망할 빨간 팬츠입고 춤추고  그랬었는데..ㅎㅎ


필받아 백만년만에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니 묘한 기분이더라. 고2던 그때 처음으로 원인모를 두통에 시달리며 정신과도 가보고 한약방에가서 머리에 침도 맞아보고 학교도 자주 빠지고 그랬었는데 사진속의 사야는 참 즐거워보인다.

하긴 만우절이라고 반을 아예 바꾸기도 하고 그때 무슨 국제야구경기였나 그런거본다고 수업시간에 도망쳤다 걸려서는 일학년 반에가서 걸상들고 서있기도 하고..ㅎㅎ

지금생각하면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에 뭐하고 살았을까 싶지만 참 하루는 짧고 또 할 일은 많았었는데 말이다.

영어사전의 전치사설명을 다 복사해서 코팅까지 해놓고 참고서 바로 옆에 붙은 설명을 흰종이를 잘라 모두 가려놓고 정작 공부는 안하던 그 시절.


사실 사야는 1988에서는 안나오는 교회에 올인하고 살았다. 이건 예전에 함 썼던 거 같은 데 하다하다 고등부실 천장의 먼지까지 닦고 어른들 저녁예배에서 간증(아 이건 기독교인이 아니면 모를텐데 하나님이 삶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지를 개인의 체험담을 설명하는 거다)까지 하고 살았다..^^;;

그때는 정말 사야가 어느 나라에가서 순교라도 할 줄 알았지 이렇게 기독교에 냉소적이 되어 기독교인들을 무시하며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만..

우짜든둥 교회에도 담임이 있었는 데 하도 교회에 올인을 해서 그 담임샘이 쟤는 대학을 포기한 애인가보다 하셨다던데 사야엄마가 사야를 대학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사야가 동기들중 학력고사 제일 잘 봤다니까..^^;;


이건 또 삼천포다만 그땐 그렇게 공부해도 고득점도 가능했고 더군다나 사야는 당시 학력고사가 영어는 너무 어려웠고 수학은 너무 쉬우서 말하자면 시험의 피해자이기도 한데..

그래 이건 여전히 사야인생에서 안타까운 부분이긴하다. 이런 게 뭐 운명같은 거겠지만 당시 그 시험이 그렇지 않았다면 단언컨대 사야는 지금과는 백프로 다른 삶을 살았을거다. 이건 그러나 그 삶이 더 나았을거라는 건 물론 아니다.

이건 사야의 그 첫사랑놈도 같은 경우일거다. 수학은 사야보다 잘했고 영어는 못했던 놈인데 수학은 쉬웠고 영어가 어렵다보니 그 놈은 마흔개중 일곱개 맞았다더라..ㅎㅎ

모의고사에서는 한두개 틀리던 사야도 삼십개를 맞았는 데 그래봤자 칠십오점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야가 대학에 들어가 영어연구회라는 곳에 가입했더니 영어좋아하다고 모인 그 곳에서도 삼십개는 양반이더라지..ㅎㅎ


아 그 이야길 하려던 건 아니었고 부산출신이던 짱가놈말이 이젠 더이상 부산의 그 놈의 모교에서 한양대도 들어올 수가 없어서 동문들이 없다는 거다. 친구딸내미도 서울교대를 들어가고 싶어하는 데 이젠 반에서 일등을 해도 서울교대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거다.

사야가 궁금한 건 그럼 도대체 한양대나 서울교대같은 곳은 누가 들어가고 서울대나 연고대같은 곳은 또 누가 들어가는 건지

지금은 전국구로 유명하지만 어느 사이트에서만 유명했던 서민교수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긴 정말 고등학교때 잘한 선택, 그러니까 서울대때문에 그 후 평생 어떤 다른 노력을 안해도 그 덕을 보고 사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젠 그마저도 약간 빛바랬고 그 중에서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기를 펴고 사는 세상이된 것 같다

최소 학벌이라는 걸로 기를 펼 수 있는 그러니까 개천에서 용도 나던 시절 중산층이라는 게 존재해서 어느 정도의 자부심이라도 갖고 살던 시절이 지나 오십프로가 아닌 이십프로정도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말이다.

예전에는 은행지점장이면 대통령(?) 안 부러울만큼의 지위였는 데 이제는 그저 은퇴를 두려워하는 가여운 월급쟁이로 전락한 이 나라.


그래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그 시절이 더 좋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으로 이렇게까지 가슴찡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건 그 시절엔 그래도 희망이란 게 있었기때문 아닐까

공부는 드럽게 안해도 머리좋고 집중력만 있어도 사야처럼 고득점을 받을 수 있고 그냥 평범한 대학을 나와도 어딘 가는 취직해서 요즘처럼 치맥도 먹어가며 집한칸은 편히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할 수 있었던 그 때

굳이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그냥 학교공부만으로도 그것도 고2정도에만 정신을 차려도 원하면 대학을 갈 수는 있었을 그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어쩌다 대한민국은 청소부를 뽑는데도 박사학위소지자도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된 걸까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저축해서 일억이라는 돈을 모으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허상을 쫓으며 의미없이 허덕일 뿐

일억에 살아야할 집에 오억에 살면서 오억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소비패턴이 변했고 그 오억이 사실 죽었다 깨어나도 만져보지  못할 돈이라는 사실을 잊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