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모기와 파리 그리고

史野 2015. 9. 3. 23:36

시골에 살면 가장 성가신 것들이 모기와 파리다

그 중 사야가 너무나 아니 미치도록 싫어하는 건 파리다


모기는 피를 빨아먹는 다는 목적도 확실하고 그래서 그 생존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지 않는다

목표를 잡으면 그 목적을 달성하느라 정신이 팔려 그게 생의 마지막 순간인 줄도 모른다


반면 파리는 도대체 왜 사는 지도 모르겠고 뭘 먹고 사는 지도 모르겠고 그저 사야를 귀찮게만 한다

거기다 모기처럼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므로 잡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 인간도 마찬가지다만 뭔가 집중하면 약점도 보이고 공격할 지점이 뭔지도 알 수 있다만 파리처럼 도대체 알 수 없는 존재는 그저 속수무책이다

열받게도 파리는 열마리를 파리채로 때리면 그러니까 잡았다고 생각하면 그 중 아홉마리는 또 기절했다 살아난다

그래서 가끔은 사야의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더 놀라운 건 혹 파리가 이 자연세계의 가장 아래인가 싶을만큼 상상도 못한 곳에서 새싹이 움트듯 생명이 움트더라


정말 그 장소가 너무 황당해서 인지하며 살지  못했던 미생물 혹은 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 그 곳에 생명이(?) 살고 있지 않은 건 아닌데

물론 균이라는 걸 생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냐 아니냐 뭐 그런 각도도 있겠다만 사야에겐 좀 충격적인 인지다


울 호박이는 다른 개놈이랑 달리 아무리 돌아다녀도 진드기가 붙는 일이 별로 없다

개들은 보통 인간들보다 체온이 높다던데 호박이가 워낙 추위를 타는 놈이라서 체온이 낮을 수도 있으니 그래서 진드기 없나 생각하고 살았다


근데 일주일전에 침대위에 까만 씨앗(?)들이 떨어져 있는 거다

자세히 보니 씨앗이 아니라 벌레들 엄밀히는 울 호박이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들

이야기했듯이 진드기도 잘 붙지않는 몸인데 우짜든둥 놀래서 보니 온 몸이 그 까만 기생충들

그 작은 몸에서 거의 사백마리를 잡았다 거기다 털도 짧은 대갈통에서 나온 것만 백마리


두 놈들을 쓰다듬으면서 매일 몸을 수색하는 관계로 엄청 충격적이었다

수색하면 호박이는 없고 바리가 몇 마리 붙어있는 적이 많았는 데 의외로 이번엔 바리 몸에는 없고 호박이 몸만 그렇더라

오일간을 잡고 잡고 또 잡고 어제인가 아무것도 없어서 끝났나 보다 했더니.

오늘 또 얼굴에서 세 마리가 잡혔다

그 얘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지만 호박이 살갗아래 알을 낳았나]다는 게 맞는 거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

고등학교때 물리랑 화학이랑을 선택과목으로 해서 공부한 이후엔 사야에게 과학이나 자연이라 그런 건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아쿠아리움에서 아메바같은 걸 볼 때, 그 움직임에 생명이 뭔가 삶은 뭔가를 생각해 본 적은 있다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생각까진 해 본 적이 없다


중3때인가 그때는 지금처럼 쓰레기분류가 없었을 때였음므로 사과껍질이 버려진 방안의 휴지통에서 벌레가 올라오는 걸 보고 놀랐던 적은 있다

그리고 그때 사야는 대견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이 탄생한다고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으로의 생각을 굳히기도 했다

근데 그게 보이지않는 미생물때문이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보다 깊게 혹은 총제적으로 생각해야하는 데 사야가 아는 이 삶은 혹은 자연은 너무 넓고 깊다

아니 엄밀히는 사야가 참 아는 폭이 적다


걸리버여행기가 생각나는 밤이다

크다는 것 안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 뭐 그런 한계는 어디까인 걸까

아니 사야는 그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과 존재들 드러내는 식물들이나 조류들과 또 낳고 아끼는 감정이 있는 동물들과 그것보다는 좀 낫다는 인간이란 존재로서 뭘 얼만큼 이 삶을 혹은 자연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니 갖는 판단력이나 가치관이나 그런 것도 과연  스스로 믿는 것처럼 어떤 판단, 그 자체도 미지수인, 그러니까 생각이란 것도 불안정한 그런 상황에서 또 사는 게 뭔지를 이야기하는 건 가능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