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우울한 날
사야의 생일이 아직 이십여일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언니들이 생일겸 오겠다고 시간을 맞춰놓았다며 그 날 괜찮냐고 묻는다. 물론 사야에겐 보험(?)이나 마찬가지인 고기공놈도 진작부터 생일즈음엔 여주에 오겠다고 하고..
사야가 늘 말하지만 생일이 좋은 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확인을 하는 날이기때문인 것 같다.
작년에도 생일은 아니었지만 하도 안 나타나는 사야를 본다고 작은형부 휴가기간을 맞춰 작은언니네 부부와 큰언니가 담양에 오겠다고 했었는데 말렸다.
남친집에 와서 묵겠다는 것도 아니고 숙소를 잡아 얼굴만 보자는데도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결과론 적으로는 말린 게 다행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난번에는 언니둘만 다녀갔지만 이번엔 올케언니도 함께 오기로 했단다. 집안행사에 아예 안가는 관계로 언니들도 칠개월 넘게만이지만 올케언니는 언제였는 지 기억도 나지 않고 정말 많이 보고싶다.
요즘은 누가 오는 것도 부담스러워 제발 참아달라고하기 일쑤인데 어제 밤 그 문자를 보니 어찌나 기분이 좋고 설레던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집청소도 하고 어쩌고 저쩌고 어제는 참 좋았는데 오늘은 기분이 확 가라앉는게 가슴이 많이 답답하다.
사람들을 거의 안만나고 사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이렇게 지속하고 있을 건지
얼마전에도 고기공놈이랑 통화하다 언니랑 비어플러스에서 술마셔본 게 도대체 언제인거냐고( 세상에 그러고보니 고기공놈 결혼하고 한번도 안갔으니 이년이 훌쩍 넘었다..ㅜㅜ) 어제 무소카놈도 누나 서울은 안오는거죠? 묻던데 담양에 있을 때와 달리 서울이 무슨 천리도 아닌데 스스로 택한 이 유폐된 생활
뭐 슬리퍼를 끌고갈 지란지교까진 아니어도 근처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곳이 사야의 천국인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전 마쿠스랑(기억하는 분 계시는 지 모르겠는데 전남편의 베프) 우연히 카톡을 했는데 걔도 묻더라 거기서 도대체 혼자 뭘하고 있는거냐고..
그래 물론 여전히 술없이 잠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야인생에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마음의 평화와 심지어 가끔은 무념무상 그저 창밖을 바라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경험도 한다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리고 이 우울함의 정체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게 사야가 통과하기에 넘 힘겹고 쉽지 않은 일이기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보고싶다.
한두번 당한게 아니고 실제로 그녀를 보게되면 그 표정과 말투와 독설 과장된 설움..정말 우주 최강 울트라캡짱인 캐릭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알면서, 그래서 그 무엇하나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도 말이다
얼마전 역시 우연히 보게된 그녀의 사진. 그 사진속의 그녀는 너무 늙어버렸을 뿐 느껴지는 분위기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 모습
원망의 마음이 없어서일까 그래도 그 모습이 왜그리 가슴저리고 아프던 지..
가장 가슴아픈 건 그녀를 그렇게 외롭게 늙어가게 방치하는 어떤 인간들도 역시 원망할 수 없다는 것.
사야를 포함 올케언니 그 두 아들들까지 모두 그녀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잉태되어 그녀의 자궁에서 구개월이 넘게 산 사야는 그들과 감정이 같을 수는 없다.
거기다 좋은 점이건 나쁜 점이건 다른 자식들보다도 더 많이 빼닮은 사야는 더 가슴이 아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가장 가슴아프게하며 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오래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그 이유일거다.
사야는 요즘 사람같지가 않아서 울지도 웃지도 슬프거나 괴롭거나 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그러면서도 우습게도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 안된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한다.
벌써 술이 취해서 뭔글을 쓰고 싶었는 지 잊었다
그냥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나마 자식을 낳아 기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존중받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한다
거기엔 물론 사야엄마도 포함된다.
이건 어쩌면 사그라드는 인생에대한 오마쥬 뭐 이런 감정인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삶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할 뿐 정답은 커녕 잘 살고 못 살았다의 기준이 아예 없는 거 아니던가
전에도 썼었지만 그리도 추앙받는 법정스님의 마지막이야말로 사야가 아는 최악이다.
뭘 다 놨다는 인간이 죽으면서까지 자기 책에 집착하느냐고..
오랫만에 긴 한탄을 한다
그게 어떤 식으로든 엄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이것도 일종의 욕망일거다
예전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만 그녀의 인생이 사야의 인생보다는 행복하다, 라고 마음이 바뀌었으니 사야가 그녀랑 하고 싶은 정리는 어쩌면 이생에서 마무리하고 싶은 그 인연의 끈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