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진화(?)하는 사야

史野 2015. 2. 24. 02:42

그래 이게 진짜 진화였으면 좋겠는데 아니 진화하고 있는 중(!)이면 좋겠다.

사야가 삼일을 술없이 살았다.

술을 못마시면 손이 떨리는 중독자까지는 아니어도 술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심리적 중독자인 건 맞는데 그나마도 담금주 이런 거 아무 소용없는 취향적 중독자인 것도 맞는데 그 중독을 이기는 더 강력한 힘이 있더라.

혹시 아시나? 중독보다 무서운 귀챠니즘이라고...ㅎㅎ


이런 저런 세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요즘 밤낮이 바뀐 영향인가 술을 마시고도 밤을 새긴 마차가지였는 지 상상외로 무사한(?) 날들을 보냈다.

근데 사야는 술을 안마시니 생활이 더 엉망이 되더라. 이십사시간을 깨어있기도 하고 그러고 잠들었어도 세시간만에 깨고..

중요한 건 이러니 저러니해도 사야가 멀쩡하다는 거. 뭐 이런 기적같은 날들도 있니? ㅎㅎ

강조했듯이 아무도 모른다 그럴때 사야가 얼마나 고통스런 순간을 보냈는 지 말이다.


그런데말이다. 거꾸로 사야도 모른다. 박근혜의 고통이 얼마나 어마어마했고 지금의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는 지를, 왜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사야도 절대 알 수 없다. 그러니 당근 이해할 수도 없다.

그저 신에게 그녀가 아닌 사야로 태어나게 해주신 걸 감사할 뿐.^^;;


물론 사야는 대통이 아니니 대통이신 그 분의 그 특별함이 더 문제는 되겠다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누가 서로 대리해가며 이해해주는 게 아닌 보편적인 정서, 도덕성, 혹은 판단기준 아니 더 거창하게는 철학이 필요한건데 이 나라에는 그게 없더라는 것.

충분히 다를 수 있고 죽었다깨어나도 그 위치가 아니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림짐작으론 가늠할 수 있는 나름의 그 기준. 생각해보니 이 나라에는 그게 없더라. 아니 엄밀히는 오래전부터 없,었,더,라.


그게 왜그래야했는 지는 차차 공부하기로 하고 그걸 알고있는 척했던 사야도 사실은 모르면서 아니 이해할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않으면서 사야의 생각이 보편진리인양 꼭 이게 무슨 유관순누나의 삼일운동인양 떠들어대고 있었다는 거다.

쿨한척 후세에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거기서 거기고 그들은 우리랑 다르게 평가할 거란 이야기는 심상하게 하면서 역사도 어쩌면 일베나 사야같은 무리나 도찐개찐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는 걸 간과했다

아주 우습게 스스로를 디스하자면 사야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다.

신념이란게 꼭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 신념조차도 사실은 스스로의 신념이 아닌 자의건 타의건 만들어진 신념이라는 걸 사야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이래서 어쩌면 얇팍한 지식이나 경험은 독일지도 모르겠다. 선무당이 사람잡는 다던 가.

거기다 재수없는 사야는 몰라서 그랬던 그때가 부끄러울 지언정 반성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없다. 몰라서 그랬다니까.

물론 무지도 죄다만


이런다고 또 뭘 알았다는 건 아니니 어줍잖은 이해도 사양이다..ㅎㅎ

우짜든둥 사야는 가로등도 없는 이 곳에서 오늘 야간운전을 했고 결국은 그 원하던 포도주를 마시고 있고

그냥 사는 게 무슨 영화의 한장면같다..ㅎㅎ


이런 삶의 순간이 사야에게도 허락될 줄 몰랐다. 아니 몰랐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두려움없이 이런 외딴 곳에서 개 네마리랑 뒹굴다 이십분쯤 떨어진 곳에 가 혼자(!) 장을 보고 씩씩거리며 몇 번이나 짐을 나르고

그제야 난로에 불을 피우며 새깽이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는 삶

이런 쓰다보니 뭐 캐나다 어디 깊고깊은 산속이야기 같다만..ㅎㅎ


아 정말 이렇게만 시간이 좀 더 가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아주 엄밀히 들여다보면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대책없는 한 인간의 모습일 수는 있는 데

그게 일반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사야라서,

그저 고맙고 신기한 시간들

그러게 사야가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을 힙겹기는 하나 이제야 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