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마흔아홉

史野 2015. 2. 19. 23:25

한동안 계속 만나이만 쓰고 살았어서 한국나이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인간은 또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젠 한국나이가 다시 편해졌다.

그러니까 만으로 마흔일곱인 사야는 구정인 오늘 마흔아홉이 되었다.

처음 남편과 만났을 때 동갑인 줄 알았던 그 두살차이..ㅎㅎ


어찌보면 참 고단한 인생이다

생각해보면 열아홉이었을 때도 스물아홉이었을 때도 그리고 서른 아홉이었을 때도 사야에게 삶은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니까.


마흔아홉이 된 지금 친구가 놀랠만큼 여성성도 잃고 가진것도 없고 모든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다 갖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하다.

씽이가 사라졌다 돌아온 삼개월남짓의 시간은 사야의 근 오십평생에 단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평온한 날들이다.

요즘도 끊임없이 새끼들을 내보낸다만 간혹 일곱시간만에 돌아와도 예전처럼 애면글면하지않고 돌아오면 그리 감사할 수가 없다.


지난 번 뭉텅 잘라버린 머리가 길어져 난리가 아닌데도 그대로 마트에도 가고 마트말고는 나갈 일이 없으니 일주일 가까이 샤워는 커녕 세수도 안하고 있는 날도 많다.

전화통화도 안하고 사람들도 안만나고 나가지도 않고 그런데도 사야는 여전히 맛있는 게 먹고싶고 사는 게 좋다.


요즘 사야를 제일 괴롭히는(?) 놈, 모순이라고 이럴거면 왜 한국에 돌아왔냐고 묻던데 비행기타기싫어 돌아왔다니까..ㅎㅎ


사야처럼 피터지게 정상인으로 살기위해 발버둥쳐본 적이 있는 인간이 아니면 모른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매순간 신기루같으며 갖고싶고 이루고 싶어 난리인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을..

그리고 사야에게 지금 주어진 이 평화가 얼마나 간절히 갈망하던 것이었는 지를.

(이 이건 사야같은 사람에게 그렇다는 거고 허무주의를 지향하는 어떤 개똥철학도 아니고 무슨 무용담도 아니니 오해는 말길 바란다.^^)


물론 이렇게 마흔아홉이 될 줄은 몰랐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보다는 좀더 나은 모습, 그러니까 훨씬 더 깎고 다듬고 단련된 그런 모습일 줄 알았다. 아니 더 솔직히는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조금 더 세상을 폭 넓게 보고 덜 흥분하며 아무리 삶이 이러저리 엉키고 설킨 실타래라도 대충은 어디서부터 얼킨건지 아님 최소한 엉킨 실타래를 칼로 쳐내는 용기쯤은 갖는 나이일 줄 알았다.



이야기했듯이 유입어로 예전사야글을 읽곤하는 데 며칠전에는 사야가 남편이랑 아침에 나눈 대화가 나온 글을 읽었다

깨보니 남편이 출근을 안하고 여전히 옆에 누워있더라는 것. 왜냐고 물었더니 휴가를 냈다나. 그래 사야는 그럼 커피달라고, 하더라.

그리고 붙인 말이 아마 사야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어도 같은 반응이었을거란 글.

본인이 쓴 글인데도 너무 맞는 말이라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나서 처음으로 전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 남자는 왜 사야를 따라 한국에 오지 않은 걸까, 하는..

여태까지는 늘 그렇게 급작스레 뛰쳐나온 게 미안하기만 했는데 이제서라도 그 반대상황이 보여 참 다행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사야가 그렇게 그 남자를 따라다녔으면 그 남자도 한번쯤은 사야를 따라왔어야지..ㅎㅎ


그래 이렇게 사야는 마흔아홉이되었다.

그리고 사야는 이런 마흔아홉이 참 고맙다.

예전에는 가끔씩 위만 아팠는 데 이젠 장도 아프고 폐쪽도 아프고 난소쪽이 아플때도 있고 '이건 뭐니 이젠 온 몸에 전이된거니?' 혼자 속으로 이야기하고 웃는다만..ㅎㅎ



그 날 본 십년 전 사진이 너무 근사해 여기 옮겨놓을까 하다 참는다.

그땐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할 때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몸매영향도 참 많이 본 것 같다.

아 그러네 인생이 억울한 것만 많은 줄 알았는데 사야도 생각해보니 타고난 몸매로 득을 참 많이 본 것 같다..ㅎㅎ


우짜든둥

오늘부터 그 마흔아홉을 산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으니 잘 할 줄은 모르겠다만 사야는 함 잘해볼라구

서른 아홉일때는 그 때가 가장 탑일 줄 알았는데 뭐 마흔아홉, 이 나이도 멋질 수 있는 거 잖아?

안살아봐서 오십이란 건 상상이 안가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흔아홉이니까

뭔가를 결심하거나 약속하거나 할 수는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해도 말이다.


이제  시작인 사야의 마흔아홉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