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野 2015. 1. 25. 01:43

말했듯이 사람을 안 만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어제 아는 놈 하나 전화해서 가도되냐고 묻던데 그러니까 그냥 가도 되냐가 아니라 누나 혼자있고 싶다며 진짜 이번엔 가도 되는 거냐고 묻던데 사야가 무슨 대단한 인간도 아니고 그런 통화가 웃겼다.

그러니까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거니? ㅜㅜ


요즘 대한민국의 트렌드는 복고다

응사 응칠에 토토가까지..

단 하나도 공감할 수가 없어서 솔직히는 좀 당황스럽다.

거기에 끼고 싶은 데 뭘 알아야 면장이라도 할 거 아니냐 아니 향수라는 데 본 적도 없는 거에 뭔 향수냐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되지 않은 때에 독일에 가서 그나마 독일문화건 독일어건 제대로 건드려보기도 전에 독일을 떠나 떠돈 인생이다보니 사야에겐 지금 이 추억찾기가 참 낯설고 서럽다.


차라리 남편과 함께한 게 더 나았다.

여행이나 클래식음악회나 전시회같은 건 이런 시간여행이랑 별 상관이 없는 거니 말이다. 심지어 소설도 사야가 그들과 같은 세월을 사는 데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구석에 쳐박혀 아무 인간관계도 하고 있지는 않다만 그래도 사야가 하고 싶은 건 이 삶속에서의 사야를 이해하고 싶기도 한거니까

이미 대다수라는 건 없고 무리들의 집단 생각의 문제이긴 하다만 그 집단들의 공통분모를 만드는 것도 또한 대중문화인데 그 지나간 대중문화를 공감할 수 없는 위치나 보니 많이 안타깝고 외롭다고..


사야에게 응사는

너무 건방지게도 독일어는 당장 할 것 같아 신나던 때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주나 되는 이태리여행을 텐트만 가지고 하던,

 그 어마어마한 그림이나 조각들이나 아니 무엇보다 풍경을 물씬 보던 때였고 역시 돌아오니 어학시험에 붙어 독일대학에 들어갔을 때였고


응칠은

사야가 도저히 그 삶을 견뎌내지 못해 정신병원에도 입원했다 살아나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삶을 살아낼 때였다.

그래 어쩌면 현장학습으로 드레스덴도 가고 북이탈리아인 티롤도 가고 한게 그때인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근데 사야는 아니었다구

그대들이 겪어온 그 시간을 겪지 못했다구

공감할 수 없는 그 진한 감정들이 지금 떠도는 데 공감할 수 없으니 서럽다.


근데 그 서러움은 다른 곳에도 있더라

얘기했듯이 사야는 86학번인데 그리고 그 때는 이 땅에 있었는 데

그들과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없어 서러울 때도 있었다

물론 그들과는 지금도 사상을 공유하진 않는다만


박근혜가 대통령인 2015년 대한민국에

86한번이면서 그 두 그룹(일부러 안쓴다)에 속하지도 않았던 인간

그 시대를 떠나 출렁이는 파도같았을 그 시대를 함께 못해 아무것도 그 느낌을 공요할 수 없는 인간


남편이 이해하는 세상을 나름은 이해할려고 죽어라 노력했다

사람은 다 경험하는 걸로 느끼는 거니까

그게 그러니까 경험하는 걸로 느끼는 그게 당연히 노력으로는 잘 안되더라.


말이 너무 길어져 일부러 끊는다

사는 게 아니 자신을 이해하는 게 참  어렵다.

이십칠년을 너머 최소한 내 독일시댁에서만은 소외감을 느끼지 못했던 사야가

여기와서 이 구십년대의 추억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글게 참

안다고 느끼는 것마저도 사실은 그게 아닌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