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대견한 사야..ㅎㅎ

史野 2014. 11. 27. 22:23

면허따서 육개월 운전하고 다시 육년만에 하는 운전.

중고차이긴했어도 그땐 나름 쌩쌩했는데 이젠 십칠만을 바라보며 덜컹거리는 차를 끌고 씽이데리고 병원만 왔다갔다한 지 열흘.

왕복 삼십킬로가까이 되니 짧은 거리도 아닌데다 요즘 여긴 도로를 넓힌다고 공사중이고, 대형트럭이나 레미콘같은 것들도 많이 다녀 나가기 싫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만 치료는 받아야하니 정말 어쩔 수 없이 다녔다.

뭔가 필요한 게 있어도 치료만 끝나면 그냥 무조건 집에 가고 싶더라.


어제는 우유도 떨어지고 몇 가지 살 것도 있었던 지라 병원에 들렸다 큰 맘먹고 이마트에 갔는데 하필 휴점이다. 휴점이면 휴점이지 주차장은 왜 닫냐? 고개길인데 어찌어찌 차를 돌려 오다보니 기름도 넣어야할 것 같아 역시 육년만에 ㅎㅎ 주유소에 들려 기름도 넣었다.

주유소 아저씨 놀래시며 카라쓴 울 씽이가 언뜻볼 땐 모자쓴 어린아인 줄 아셨다시네..^^


그냥 집에 올까하다가 용기를 내어 복잡한 면소재지로 들어갔다.

예전에 담양에서 백하다가 사람을 칠뻔한 적이 있었던 지라 그런 곳은 딱 질색이다만 어쩌겠냐 적응해야지.

따라내리려는 씽이를 막다가 새끼손가락 제대로 차문에 찍혀주시고..ㅜㅜ 우짜든둥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무사히 장을 보고 나왔다.

이번엔 커피원두사기.

집에서 진짜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원두를 파는 곳이 있는데 결국 오늘 직접 차를 몰고가 사는 데 성공.


처음 운전할 때도 고속도로나 타고 내장산이나 넘었지 이렇게 차를 타고 이 볼일 저 볼일을 본건 사야에게 처음 있는 일이다.

차에서 짐내리고 집에까지 옮겨 오니 진이 다 빠진 기분.

그래 남들은 늘 하고 사는 일을 사야는 오십을 바라보며 이제야 하나씩 배워가고 있으면서 혼자 대견하다고 난리다..ㅎㅎ


씽이는 어제로 병원치료가 끝났다. 이렇게 기다리면 나을 것을 발가락 하나 절단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기다린 일주 병원다닌 삼주 너무 힘이 들었고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지만 새끼손가락 하나 피멍들고보니 마디하나 끊어지고 뼈가 훤히 드러난채 고통받았을 울 씽이 생각에 또 한번 눈물바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야가 혼자 이 네 놈들을 책임지겠다고 한 게 사실은 굉장히 무모한 결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모든 걸 떠나 대형견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이다. 사야가 보기에 반쪽이 되어온 놈의 몸무게가 거의 26킬로그램.

울 씽이는 말을 잘 듣는 놈인데도 워낙 힘이 좋은 녀석이다보니 사야혼자는 감당이 안되더라. 거기다 병원갈 때마다 같이 나가겠다고 난리치는 녀석들과의 싸움도 전쟁이 따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야는 여전히 아끼랑 호박이를 내보낸다.

오늘도 두시간넘게 만에 들어온 녀석들. 한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간이 쪼그라든다만 어쩌겠냐 인간이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 건지 아니 삶이란 무엇인 지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저 놈들에게는 또 뛰고 또 뛰고 냄새맡아가며 주변을 돌아다니는 그 게 삶의 행복인 것을..

인간세계랑 다름없이 바리처럼 아무리 문을 열어놓아도 견주없이는 나가지 않는 녀석도 있고 칠박팔일 그 아픈 고통을 견디고도 나가고 싶어 난리치는 씽이도 있고 혼자는 싫어도 둘이라면 얼씨구하며 온 산을 헤집고 다니지만 별일만 없다면 결국 또 집으로 돌아오는 놈들도 있고..

이젠 나아졌기에 돌아온 두 놈 가둬놓고 씽이도 풀었다.

겨우 십분만에 붕대도 헤쳐 돌아오긴 했다만 다시 상처를 싸매주며 좋았겠다 싶더라.


어쨌든 사야는 여전히 새끼들을 푸는 이 큰 간이 마음에 든다.

물론 위에도 썼듯이 풀고난 후 한시간이 넘어가면 그 큰 간이 쪼그라들어 콩알만해지며 늘 푼 걸 후회한다만 인생이나 견생이나 하고싶은 건 하고 살아야하는 거 아니겠냐고..


그래 이렇게 살 줄 몰랐다.

늘 똑같이 살게 될 까봐서 몇십년 삶까지 눈에 다 보여, 그게 겁나 도망나왔는데 고맙게도 참 파란만장하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젠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어찌보면 떠밀려지는 삶을 살고 있긴 하다만 그 떠밀려지는 삶속에서 나름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고맙다.


어제도 밀린 술잔을 설겆이 하다가 니가 한국에 가면 누가 니 술마시는 걸 컨트롤 하겠냐던 남편말이 떠올랐다.

그때 사야가 한 말은 지금은 혼자마시지만 한국가면 같이 마셔줄 사람이 있잖아,였는데 이런 여전히 혼자 마시고 있네.

그래 그나마 늘 끈이되었던 지인들..

어찌보면 환상같았던 사야가 한국으로 돌아오니 그게 부담스러웠던 그녀도 떠났고, 짱가놈은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박카스같은 존재로 사야를 이용했고, 관계라는 게 연속성이 필요한건 데 그게 없는 사야, 거기다 사야가 살았던 삶이 누구랑 공유하기엔 참 쉽지 않은 지라 한국에 돌아와서도 참 외롭고 힘들다만

그래도 사야는 여전히 한국에 와서 참 좋다.

장성에 갔던 것도 여주로 온 것도 중간에 서울로 갔거나 또 담양에 갔던 것도 사야에겐 사야가 천형처럼 지고가는 이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로와지고 이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그 노력이었으니 말이다.


피터지게 아픈 만큼 이해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가슴졸이다 나타난 새끼들때문에 기뻐하고 붕대는 풀어헤치고 나타났다만 소독하다보니 딱지가 생기고 있고 그렇게 또 사야의 하루가 간다.

아직까지는 아니다만 그래도 사야가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그 비슷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