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단상
모님 블로그에 갔다가 영어로 쓰여진 흥미로운 문장을 봤다.
슈바이처 박사가 한 말이라는 데.
Until he extends his circle of compassion to include all living things, man will not himself find peace.
아시다시피 사야가 얼마전 뱀과 개구리싸움에도 감정이입할 만큼이다보니 저 글이 갑자기 무진장 위로가 되더라는 거다.
그럼 사야도 곧 삶의 평화를 찾게 되는 걸까
무슨 뜻인 지는 알겠지만 영어야 사야에게 확 와닿는 언어가 아닌 관계로 원어는 뭐였을까 곱씹고 싶어 독일 야후로 들어가 독일어로 찾아보았다.
Bis der Mensch sein Mitgefuehl nicht auf alle Lebewesen ausgeweitert hat, wird er keinen Frieden finden.
같은 말인데도 영어랑 독일어의 느낌은 정말 다르고 독일어가 훨씬 간단하다.
번역을 전혀 못하는 사야가 그나마 대충 옮기자면
인간이 모든 생명체를 이해하지 않는 한 결코 평화는 없다, 는 말이다.
뭐 영어도 결국은 같은 내용이다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적이 아닌 사야는 저 글을 읽었을 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전원생활 오년에 거미의 밥줄까지 생각하게 된 고마운 인생.
여전히 모기나 파리는 죽도록 미워한다만 저 말대로라면 사야는 곧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좋았다.
근데 독일어 버전을 찾아 베껴놓고 몇 번 읽다보니 그 살아있는 것들( 생명체. Lebewesen)이란 게 꼭 인간을 배제한 건 아닐 거란 깨달음.
그러니까 읽자마자 오버해서 인간이 다른 생명들도 귀히 여기면 평화를 찾는다 뭐 그렇게 혼자 편하게 해석했더라는 거다.
무슨 말인 지는 알겠다만 어차피 해석이란 건 읽는 사람의 몫이고 슈바이처 박사가 뭔 생각으로 쓴 것도 대충은 알겠다만 사야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서 읽어보다 보니 그 살아있는 것들엔 인간도 포함되더라는 거다.
그 살아있는 것엔 인간 그러니까 사야 엄마를 포함해 이명박도 박근혜도 김기춘 등등 다 포함이 되더라.
박근혜까지는 용납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세상 어디에도 부모가 전쟁도 아닌데 전혀 다른 상황에서 둘 다 총맞아 죽고 그 나이까지 솔로인데다 남동생은 마약사범에 여동생이랑은 소송까지 걸렸으니 이보다 더 가엾고 파란만장한 인생이 어디있겠냐구.
만약 박근혜가 사야의 이웃이었으면 가여워서 (compassion) 맨날 아는 척하고 맛있는 것도 해다주고 그랬을 것 같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사야는 죽었다 깨어나도 귀찮아서 그건 안하지..ㅎㅎ
말하면 우습긴 하다만 사야를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어야 하는옆집 언니가 슬프게도 대통령이 되었더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
어느 연설에서 연관된 말인 지는 모르겠다만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리 지지고 볶다보면 다 죽게 될 거란 말인 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 결국은 삶에의 욕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속이 시끄럽고 평화를 찾을 수 없는 게 보통은 그 인간들을 설득시키거나 스스로가 설득당할 수 없기 때문.
내가 아는 이 상황들을 저들은 왜 모르나 답답하고 이해 안가기 때문.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교회에 안 빠지고 나가 그 사랑에 울부짖으면서도 절대 시어머니는 용서하지 못하는 가여운 한 신도처럼 말이다.
어쨌든 사야는 죽는 날까지 그게 보편적인 인간적 문제이건 그냥 개인적인 사야인생이건 평화를 찾는 다는 건 참 어렵겠다고 인정해버리기로 했다
용서받지 못할 그가 살아서 한 것만으로도 벌써 최소 천만의 가슴엔 피멍이 들었는 데 생명체 어쩌고 운운하며 평화를 논할 수 있겠냐구.
그러니까 이 삶에서 사유하는 한 사야에게 내면의 평화같은 건 없는 게 당연할 거다.
그러나 사야 역시 이 삶이 너무 피곤하고, 간절히 느끼고 싶다 그 생명체를 이해하면 생긴다는 그 평화를..
슈바이처박사가 그런 이야길 했다는 건 그는 그래도 그 평화를 느꼈다는 것이었을까.
아니 절절했던 그마저도 어쩌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를 알았었다는 말일지도..
어찌보면 사야는 오늘 문장하나 받아들고 화두처럼 하루를 오지게 쓰고있다만..ㅎㅎ
현실적으로는 네 가지 문제를 총체적으로 연관해 고민하고 있고
더 솔직하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본인의 한계와 바닥을 인정하고 또 인정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