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어느 친일파의 횡설수설

史野 2008. 11. 26. 22:25

우선 내 성향을 먼저 밝혀야겠다. 나는 2008년 현재 친일파다.

 

사년간의 일본생활은 나를 친일파로 만들었다. 친일파보다 좀 나은(최소한 내겐) 지일파라고 하고 싶지만 내 미천한 지식은 나를 아직 지일파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저 일본이라는 나라를, 일본의 문화를 좋아하고 그들의 저력을 인정하는 정도니 나는 친일파다.

 

역사교과서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역사의식을 문제삼으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출판된 지 근 삼년이 다 되어가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만 이제 정권이 바뀌니 아주 노골적으로 역사교과서를 문제삼고있다.

 

안그래도 그 문제로 마음이 많이 불편했었는데 어제 밤 피디수첩을 보고났더니 더 열불이 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입시정책 맨날 바뀌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모자라 전 정권들이 딱 하나 지정해놓은 교과서도 아니고 여섯개나(!) 되는 검정교과서를 바꾸라고 난리란다.

 

그들이 문제삼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세자책봉하는 문제까지 일일히 청나라의 간섭을 받다 을사조약이후 대한제국으로 거듭나고 또 한일합방을 거쳐 연합군에의해 분단된 나라에서 반쪽만 치른 선거로 세워진 대.한.민.국이라의 나라의 정통성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있단 말인가(진짜 몰라서 묻는거다)

 

그 대단한 대한민국은 아직 전시작전통수권도 없는 나라다. 아니 준대도 싫다는 나라다.

 

언급했듯이 나는 친일파고 독도가 목숨걸고 피를 흘려 지켜야하는 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적을 포기할 용의도 있던 말하자면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그래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세계에 우뚝 서길 심정적으로 바라긴 하지만 모든 댓가를 치르고 꼭 통일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독일이 동서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그들은 분단후에 우리처럼 동서간의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거다. 그 피맺힌 한이 풀릴까에 나는 부정적이고 북한체제의 그 긴시간을 통한 세뇌교육이 만든 남북한의 갭이 쉽게 좁혀지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여력이 있어 북한에 퍼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단 남한의 소외받는 자들에게, 이 땅에와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저 내가 속한 사회가 별 문제없이 돌아가길 바라는 아주 소시민적인 사람이란 말이 맞겠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시대에 살았다면 독립운동은 커녕 내 한몸 살기에 바빴을 그런 체제순응적인 인간이었을거다.

 

그래서 나는 당시의 친일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선택에 크게 울분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울분해하고 기가막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더라도 그 시대에 잘먹고 잘 살았던 인간들이 아무 문제없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부를 세습하고 살았던 그 후의 상황에있고 그게 우리가 말하는,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이다.

 

아픈 역사는 맞지만 그렇다고 감출 수 있는 역사도 아니지 않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지언정 일어났던 일들까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역사기술에 어찌 사관이 없을 수 있겠냐만 최소한 일어났던 일은 알고 있어야한다. 거기에 금칠을 하던 똥칠을 하던 그건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도 아니고 고등학교 교과서다. 도대체 일장기가 내려지고 태극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교과서에 기록한게 뭐가 문제가 되고 어디 감히 상공회의소 같은 곳에서 교과서 내용을 (교과서가 일간지 칼럼이냐?) 문제삼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일제식민지시절 어느 정도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의 의견에 찬성한다. 거기서 중요한 건 그게 일반 농민들의 피를 빨아 이루어졌고 그게 대한민국 혹은 제국 그것도 아니면 조선땅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일거다.  

 

식민지시대를 그리워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그것도 나중에 역사에 기록될 사실이다. 그들이 그때가 지금보다 좋았다면 그걸 그냥 기록하면 된다. 역사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기때문이다.

 

단지 일관성은 중요한데 김구가 테러리스트였다면 문익점은 도둑놈이라는 거다.

 

민족주의자도 아닌 내가 그 오랜 세월 국적을 바꾸지 않고 나름 설움을 감내하며 내 여권을 지켰던 건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걸 미리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하는 언어가 한국어이고 내가 한국의 토양에서 성장했기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리 독일국적을 획득했다하더라도 그 곳에선 이등국민밖에 될 수 없었던 처지. 그러니까 내가 위에 설레발을 쳐댄건, 가장 중요한 게 우리가 사람대접받고 살 수 있는 그 사회가 중요하단 그런 이야길 하기 위해서다.

 

사람대접을 받고 살기위해서 우리는 이 국가라는 테두리를 지켜나가야하고 그러기위해선 무엇보다 역사를 알아야한다.

 

박정희가 우리를 이렇게 살게했다고 믿고 존경하는 사람들도 그가 만주국 장교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하며 주어가 없는 누군가가 BBK를 설립했다는 것도 알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건 어차피 새발의 피다. 그 나머지를 알아가는 건 각자의 몫일 뿐이다. 교과서에 기록된 사실보다 기록되지 않은 사실이 더 많은 마당에 이렇게 정권이 바뀌었다고 구절구절 문제삼아 난리를 친다니 웃어야하는 건지 울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시 묻는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게 뭔데?

 

큰 대가 들어가는 게 웃긴 나라.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외치지만 세계에서 South Korea라고 불리는 나라.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그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나라, 빨갱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래 저래 마음이 복잡하다가 몇 일 전 읽고 싶었지만 도저히 해외에선 배송받아 볼 수 없었던 조정래의 한강이랑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 상황에 읽어야할 것 같은 강준만의 18권이나 되는 '한국현대사산책'을 샀다. 마침 둘 다 강력 세일이기도 했고 강준만은 자료수집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까.

(나도 한동안 잡아둬야할 뉴스를 수집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게 진짜 장난이 아니라 포기했던 경험이있다.)

 

친일파인데다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는 데 아무 반감이 없고 뉴라이트에게도 드럽게 관대한 나같은 인간까지 이렇게 자료를 찾아읽게 하는 그들의 의도는 뭘까.

 

왜 이 잘난 대한민국은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데도 좌편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며 그 당연한 사실을 방어하는 데 이다지 많은 소모를 해야하는 것이냐고??????

 

역사에 진실이란 건 없다. 단지 해석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제발 해석이야 누가 어떻게 하든 사실을 쓰는 것에까지 안티를 걸지 말길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자식도 없고 이 놈의 나라에 대해 내대로 끝나지만 이게 뭔 놈의 미련인 지는 몰라도 내가 살다가는 땅에 계속 사는 그 나랑 같은 말을 쓰고 사는 인간들이 언젠가 한번은 인간다운 존엄성을 가지고 할 말도 하고 국가나 종교 이념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살길 바란다

 

어쨌거나 이제 한강 겨우 2권째 읽고 있는데 그리고 시대는 바야흐로 사일구직후인데 어찌 2008년을 사는 내가 읽으며 이게 동시대일인 지 아닌 지 헷갈리는 건지.

 

참 뭐같은 세상이다.

 

 

 

 

 

2008.11.26. 장성에서...사야

 

 

 이와 관련 내가 읽은 것들중 몇 권 추천해본다..

 

 

서중석-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김동춘-근대의 그늘, 전쟁과 사회

 

정운현-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리영희-동굴속의 독백

 

정지환-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지동욱-정권을 움직인 한국 재벌의 어제와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