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이 땅의 아픔.

史野 2007. 7. 16. 15:46

 

금요일 시바공원. 내 자리에 앉아 찍은 사진

 

 

가만히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이 땅을 떠나게 되면 우리 아파트나 그 어느 곳도 아닌 이 고즈넉한 작은 공원이 미치도록 그리울거라고..

 

마침 아무도 없었고 내린 비가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촉촉한 공원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참새들만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오늘은 일본의 휴일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커피마시며 신랑이랑 뉴스를 보다 아 어쩌면 밖이 이렇게 맑고 찬란하냐 어쩌냐 하며 감동하고 있었다.

 

정말 도시는 말끔히 씻긴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던 아침.

 

 

여행준비며 이런 저런 일로 컴앞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엄청 흔들리는 거다.

 

아파트 흔들리는 거야 한 두 번이 아닌데 이번엔 겁이 덜컥 날 정도로 계속 흔들리더라는 것. 우선 티비를 켜서 어디서 지진이 발생한 건지 확인을 하니 니가타현. 지난 번 우리가 갔던 온천부근이다.

 

내 아파트가 이렇게 오래 흔들릴 정도면 저 쪽의 피해는 어떨까 겁이 나던 아침

 

 

도쿄에 산 지 삼년하고도 벌써 구개월 자잘한 지진은 자주 만났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곧 아파트사무실에서도 방송을 한다. 지진이 발생했으니 집에서 가만히 계셔주고 불등을 조심해달라는 방송.

 

2005년 정확히 7월 23일 토요일 저녁에도 지진이 발생해서 아파트 에레베이터가 멈춘 적이 있었다. 그 날이 신랑생일 전야라 신랑이랑 들어가는 파티를 할려고 나는 저 프로필사진에 있는 장미하트를 주문해 놓은 상태.

 

혹 신랑눈에 띌까봐 프론트에 맡겨달라고 했는데 창피한 이야기지만 지진보다 당장 아 저 꽃을 가지러 걸어내려갔다 올라와야하는 걱정뿐..-_-

 

자체기술자들이 늘 상주하니까 에레베이터야 곧 복구가 되었다만 어쨌든 그랬다.

 

이번엔 곧 방송이 나왔는데 여기저기 안전점검을 다 했는데 문제없다고 이제 나오셔도 된다고..

 

지진때문에 이렇게 겁이나보긴 처음. 신랑이랑 지진속보 보는 동안도 쿵쾅거리던 가슴. 

 

예전 나혼자 음악회 갔을 때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놀랬다기 보다 역시 그냥 음악회가 중간에 멈춰 내가 듣고 싶은 곡을 못 들으면 어쩌나. 그냥 신랑이랑은 어디서 만나야 되나 그딴 걱정이나 했었는데..-_-

 

뉴스를 계속 틀어놓고 있는 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피해상황

 

 

저 뒷 배경 오른 쪽 벤치가 내가 늘 이야기하는 내 자리.

 

사람도 없고 물소리도 잔잔해서 이 곳 돌위에 다시 앉아 이 곳은 어찌 이리 아름답고 조용할 수 있는 지

 

다시 한 번 감탄했더랬는데...

 

 

오늘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하나 피워물다 든 생각.

 

정말 자연앞에 인간은 얼마나 속수무책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인간자체가 숙명적으로 불안한 존재라지만

 

그래도 이 시도때도 없는 지진의 불안은

 

어쩌면 이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집단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그런걸지도..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수천년을 흐르는 그 아픔을 숨기고 있기때문인지도...

 

 

그 사이 사위는 어두컴컴해지고

 

우울한 월요일이다

 

 

 

 

2007.07.16.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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